민주주의라는 여행 가방

민주고에서 민주주의 여행을 하다

by 이 문

꿈은 이루어진다


교사를 꿈꿨던 해는 1987년 중학교 3학년 때다. 사실 '교사를 꿈꿨다'라는 말은 솔직하지 않은 표현이다. '교사도 꽤 괜찮은 걸' 정도가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교사를 꿈꿨다는 과장된 표현은 사실 내 잘못이라기보다는 질문하는 사람들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올 2월에 만난 민주고 교장 선생님의 질문이 "언제 교사를 꿈꾸셨나요?"인데 그 질문에 "1987년쯤 교사가 꽤 괜찮은 직업이라 생각했어요."라고는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여하튼, 교사가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1987년이다. 사춘기의 열병을 앓던 시절이었다. 억압적 학교 분위기가 열병을 더 끓게 하였는지, 지랄 같은 사춘기 때문에 더 강하게 억압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1987년 민주화가 기지개를 막 기지개 켜는 그 해 학교 교실의 기억은 깡패 같은 친구에게 돈을 뺏기는 기억, 잘못도 없는 데 단체 기합을 받느라 책상에 올라가 무릎이 아팠던 기억, 선생님 지시에 따라 친구와 서로 뺨을 때렸던 비극과 야수성으로 가득 찬 기억이었다.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평생 학교를 저주하고 내 상처의 모든 것을 학교로 돌렸을지 모르겠다. 그것이 유약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이니 말이다. 선생님의 이름은 이국종 선생님이었다. 이국종 선생님은 걸핏하면 수업을 빠지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 선생님은 열병을 잘 안고 사는 법을 이야기해주었다. 내 안의 어린 나와 화해하라 하셨다.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지자 이국종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 너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친구들에게 뭐든 가르쳐주는 것 좋아해요. 물건 사용방법이든 길 찾는 법이든 말이에요."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는데, 이국종 선생님은 허투루 듣지 않았다. 이국종 선생님은 아침 자습 시간에 자신 대신에 동료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였다. 제안에 따라 누군가를 처음 가르쳤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아마도 그때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국종 선생님은 꽤 잘 가르친다고 칭찬을 했고 내 어깨는 으쓱해졌다. 가르치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삶을 만져주는 교사가 멋있어 보였다. 교사가 꽤 괜찮은 직업이라 생각되었다.


그 후 삶은 독자들이 예상한 대로다. 그 후 사범대를 가고 교사 자격증을 얻게 되었다. 그 사이 학교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 같은 억압은 많이 사라졌다. 체벌은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학생인권이 선언되었다. 하지만, 먼저 교사가 된 여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는 여전히 답답한 곳이기도 했다. 한 친구는 권위주의의 망령이 음습하게 지배하는 곳이 학교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상처가 되살아났다. 그런 학교라면 가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교사 구직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소개글을 읽게 되었다.


민주주의 학교 : 모든 민주주의의 시험장인 학교입니다. 학급은 민주주의를 모델로 각 선생님이 자율적으로 운영합니다. 민주주의를 배우고 민주적으로 학급을 운영하고 싶은 선생님들을 기다립니다.


주저함 없이 학교에 지원을 했다. 민주주의 학교는 교원의 월급이 많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처럼 비용이 많이 들어 교사 월급을 많이 줄 형편은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인기 있는 학교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원을 했다. 그것이 1987년 기억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아니면 민주주의를 잘 배울 수 있다는 호기심 때문인지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데모스 교실

합격 후 첫 날 아침 일찍 민주고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교장 선생님은 학급 운영을 하기 전에 다른 학급의 운영방식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였다. 좋은 제안이었다. 초임교사로서 당장에 학급 운영을 하는 것보다는 다른 학급의 운영 방식을 배운다면 더 좋은 학급 운영이 되겠다. 싶었다.


첫 번째로 소개받은 교실은 데모스(Demos)였다. 이 학교의 교실들은 1반, 2반, 3반처럼 번호로 불리지 않는다고 했다. 번호라는 것도 평등을 목적으로 하지만 규율과 노예의 평등을 의미한다고 이 반의 담임선생님은 이야기하였다. 그러므로 각 반은 각 반의 특색에 맞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 이름을 통해 그 반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데모스는 그리스어로 ‘민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이름은 누가 지은 것입니까?”


하루에 둘러볼 교실이 많으므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좋은 질문입니다. 이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 하는 것부터 우리 반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학생 하나하나가 합리적 판단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급의 규정, 학급의 운영, 학급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다툼의 해결도 다 같이 결정합니다. 우리는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일치합니다.”


“이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에 대한 답은 없으신데요?”


“아, 미안해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요. 우리는 ‘아고라’라는 특별 교실에 다 같이 모여 이름을 결정했습니다. 다른 중요한 학급 안건도 마찬가지고요. 이름을 결정하는 데는 만장일치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결과를 확정하기 전에 지식이 필요하므로 충분한 토의와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학급 이름 정할 때도 ‘데모스’와 ‘데모크라시’가 격돌했는데요, 데모크라시라는 이름을 주장한 학생은 데모스가 민중이고 크라시가 지배니까 민중의 지배라는 뜻으로 ‘데모크라시’로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다수 학생들이 이름이 너무 길어 학급 이름으로 간결하지 않다고 해서 ‘데모스’로 정하게 된 거죠.”


그의 목소리는 자랑에 가득 차 들떠 있었다.


“매우 인상 깊은 결정입니다. 다수가 동의해서 결정한 것이므로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지 않겠네요.”


“그렇죠.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고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참, 마침 지금 ‘아고라’에서 회의가 있으니 같이 가봅시다.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아고라 교실을 향해 가는 길에, 교실에 남아 있는 몇 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몇 명은 10명의 여자아이와 2명의 다문화 학생이었다. 학급의 절반은 되는 것 같았다. ‘아고라’ 교실에 도착하니 막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체육대회 때 학급의 단체복을 어떤 옷으로 하느냐의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한 학생이 군복 콘셉트로 하면 멋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다른 학생이 군복은 시민을 상징하지 않는다며 반대를 했다. 군복보다는 한복 양식으로 맞추면 어떻겠느냐는 주장을 했다. 또 어떤 학생은 유아복 양식으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차분하게 교환되고 선생님은 미소를 띠며 이를 지켜봤다. 결국 한복 양식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순간, 군복을 주장했던 한 학생이 한복 양식을 주장했던 학생은 어머니가 한복집을 하니까 본인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했다. 유아복을 주장한 학생도 ‘어쩐지, 한복 가격이 비쌀 때 알아봤다’며 거들었다. 갑자기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다. 한복을 주장한 학생은 민주주의의 반역자라며 학급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선생님은 당황하며 잠시 회의를 중단하였다. 나의 팔을 확 잡아채며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자고 이야기하며 밖으로 데려 나왔다.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니 내 돈 내고 사는 옷을 왜 다수결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


이런 일이 자주 있느냐고 데모스 반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선생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습니다. 이익에 관련된 것은 이렇게 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어떻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렇게 혼란 속에서 싹트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혼란 속에서 학급 구성원이 다 떠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학급도 구경해야 했기에 짧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아까 교실에 학생들이 남아있던데요?”


“아, 그 학생들이요. 그 학생들은 민주주의 경험을 나누기에는 좀 부족한 학생들이에요. 시민이라 불리기에는 판단력이 미흡하죠. 그런 학생들까지 참여시키면 학급은 엉망이 되고 말아요”



중세의 복도


'아고라'의 회의가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배우러 온 것이므로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음 교실로 향했다. 다음 교실은 리바이어던 교실이었다. 리바이어던 교실까지 길고 긴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 오른쪽을 창이 나 있었는데 통창이 아니고 벽의 맨 위쪽에 드문드문 직사각형의 스테인드 글라스였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빛이 들어오는데 신비한 느낌도 들었지만 답답하기도 했다. 빛이 닿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학생들이 거대한 피라미드 놀이를 하고 있었다. 맨 아래쪽을 받치고 있는 학생들은 상당히 힘들어 보였지만 맨 위의 학생은 여유 있게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위험한 놀이인데 무섭지 않니?"


"생각보다 안전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꽤 오랫동안 해오던 거라 안정적이에요."


"맨 위는 돌아가면서 올라가는 거야?"


"아니요. 올라가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요.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는 거죠."


"이 학교가 민주주의 학교인데 취지에 맞지 않은 것 같은데?"


"빌어먹을 민주주의 학교. 다 헛소리예요. 민주주의는 어떤 존재의 의미도 부여하지 못해요."


단호하고 거친 목소리에 민망해져 이야기를 마치고 걸음을 빨리 옮겼다. 복도의 맨 끝 오른쪽 기둥에 복도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중세의 복도'




리바이어던 교실

두 번째 교실의 이름은 ‘리바이어던’이었다. 교실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학생들 대부분 약하고 평범해 보였다. 낯선 인물을 경계심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담임 선생님인 김 선생님은 반대였다. 강인하고 유쾌하고 명철해 보였다.


“이 교실의 이름은 왜 리바이어던인가요?”


“리바이어던은 욥기라는 성경 속의 상상의 괴물입니다. 절대적인 힘을 상징하죠. 우리 학급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설명해 드리죠."


김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원래, 이 반에의 학급 리더는 엄석대라는 친구였어요. 친구들은 엄석대를 무척이나 무서워했었죠. 아이들은 계란이나 과일 등을 엄석대에게 바쳐야 했고, 엄석대는 친구들을 협박해 성적 조작으로 전교 1등을 했었죠. 전에 계시던 최 선생님은 이를 알고도 내버려 두었어요. 엄석대보다 힘이 좀 약한 애들은 엄석대에게 상납하고 또 다른 친구를 괴롭혔고 힘이 많이 약한 친구들은 학교 생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였던 거죠."


"괴롭힘을 당하는 데도 왜 학생들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글쎄요. 엄석대가 왕처럼 굴었는데요. 또래보다 체격이 좋기도 했고 친구들을 협박하는 능력이 뛰어나 다들 겁을 먹은 것 같아요. 가끔 교활하게 잘해주기도 하고요."


"그때 선생님이 부임하신 거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엄석대를 내몰았습니다. 엄석대를 실제로 지지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더 힘이 세고 지혜로운 제가 유리했던 거죠. 저는 민주고의 담임이어서 앞으로 학급 운영이 어떻게 되면 좋을지 학생들에게 물어보았어요. 너희들이 어떤 식으로 학급을 운영할지 결정해보라고 했어요. 며칠 후에 반장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선생님, 저희가 오래 겪어보니까요, 만약 저희들끼리 학급을 운영하면 또 엄석대와 같은 나쁜 친구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학급 운영을 전적으로 맡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회장과 아이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제군들, 내가 여러분의 동의에 의해 학급을 운영하는 것을 수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여러분이 동의하면 모든 학급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나에게 부여되고 다시 회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김 선생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몇몇 친구는 술렁 걸렸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엄한 담임으로 학생들을 다스리고 있고 학생들은 안전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참, 왜 이름을 리바이어던 반으로 지었는지 궁금해하셨죠? 리바이어던이 절대적인 지배를 상징하잖아요. 지혜로운 선생님에 의한 절대적 지배가 리바이던과 의미 상통하는 것 같아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네, 학생들이 선생님을 좀 무서워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교실은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네요. 선생님 학생 한 명과 인터뷰를 해 볼 수 있을까요? 학생들 의견도 직접 듣고 싶습니다.”


김 선생님은 잠시 주저했지만 이내 대답했다.


“ 네 좋습니다. 한병태라는 친구와 이야기해보세요. 전학생 출신이라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줄 있을 거예요”


병태는 눈의 깊은 창백한 흰 손을 가진 학생이었다. 깊은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 낼 수 없었다.


“안녕, 한병태 학생, 한병태 학생 보기에는 데모스 반과 리바이어던 반 중 어떤 반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데모스 반이 자신들의 의사를 자신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 반에서 겪어본 바로는 학생들 다수가 꼭 좋은 방향으로 무엇을 결정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이 학급 와서 엄석대의 전횡을 폭로하고 저항도 해봤거든요. 그런데 다들 비겁하고 약하더라고요. 마치 정글 세계에서 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 강력한 지도자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돼요.”


“‘스컹크나 여우로부터부터 받을지도 모를 해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심하면서도,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에는 만족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혹 여러분한테 김 선생님은 사자는 아닌가요?”


병태는 침착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병태의 그 하얀 손이 조용히 떨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병태는 큰 호흡으로 숨을 쉬고 이야기했다.


“그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선생님이 변덕스러운 면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는 선생님 취향대로 해야 하는 것도 많아요. 예를 들어 국민 체조라는 것을 건강을 이유로 매일 아침에 하게 하는 데 저희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전날 집에서 농사 돕느라 몸이 힘든데 꼭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에 불편한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석대 때 생각하면서 지금이 평화롭고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별 수 있겠어요. 이게 최선인 것 같아요.”


‘본인의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없는 학급이 민주 학교의 학급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으나 돌아보아야 할 학교가 아직 남아있기에 병태의 하얀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했다.


“병태군. 민주주의는 너 같은 힘없지만 정의롭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 모르겠어요. 현재가 과거보다 낫다고 계속 현재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병태의 손은 창백한 색과 달리 따뜻했다.



자유 교실


짧은 복도를 지나 다음 학급에 도착했다. 자유 교실이었다. 자유 학급의 담임선생님은 무척이나 자유로와 보였다. 다른 반 선생님과 달리 간편한 티셔츠에 멋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긴장감이 풀렸다. 학급을 눈으로 돌아보니 학생들도 비슷했다. 펑크 파마를 한 학생, 반바지를 입고 앉아 있는 학생, 화장을 한 학생, 어깨에 라디오를 얹고 음악을 듣고 있는 학생, 바닥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는 학생 등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마치 자유 만국박람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선생님은 대답을 하지 않고 갑자기 문으로 다가가 두드렸다. 문에서는 “똑똑” 소리가 났다.


“자 제가 방금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방금 노크하시지 않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제 이름은 바로 ‘로크’입니다.


“에이 재미없어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예의를 차리지 않고 이야기해주어도 받아줄 것만 같았다.


“허허허, 괜찮아요. 재미없어도. 그래도 이름 외우는 데는 도움이 되잖아요. 그리고 재미없다고 지금은 생각하시겠지만 집에 돌아가시면서 제 이름 떠올리며 웃고 있는 선생님이 곧 미워질 거예요. 허허”


“네, 선생님. 일단 편해서 좋습니다. 학급 이름이 자유인 이유는 학급의 가장 큰 가치가 자유이기 때문인가요?”


“네 맞습니다. 학생이나 저의 복장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는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고 개성을 존중합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 지금까지 어떤 교실들을 둘러보셨어요?”


“ 두 군데를 둘러보았는데요. 하나는 데모스 교실이고 하나는 리바이어던 교실입니다”


로크 선생님은 팔짱을 끼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두 교실의 민주주의는 어떤 것 같던가요?”


편한 분위기에 취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데모스 교실은 모든 학생들이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결정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공동체의 운명을 지혜롭게 잘 결정할 수 있는지 수준이 의심되었어요. 리바이어던 교실은 영웅적이고 지혜로운 선생님에 의해 합리적으로 교실이 잘 운영되고 안전한 느낌이었어요. 반면, 선생님이 학생들의 각각의 요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선생님이 고집이 세지고 덜 지혜로워지면 데모스 교실만도 못하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데모스에서는 누가 잘못 생각하면 반대할 수 있는데, 영웅 교실은 아예 그런 권리가 없더라고요.”


“핵심을 아주 잘 이해하시는 것 같네요.”


그리고는 갑자기 조용히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대며 말했다.


“여기 학생들 모두는 사실 두 학급에 있다가 온 학생들입니다.”


“그런데, 왜 귀에 대고 이야기하시죠?”


“중요한 이야기는 비밀스럽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하하”


“왜 학생들이 새로 학급을 구성하게 된 것인가요?”


“학생들이 처음에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을 해도 안전만 가지고 만족했어요. 그러다가 인생의 중요한 것 하나를 점차 깨닫게 된 거죠. 그게 뭐냐면 내 인생의 행복은 ‘내가 사는 것이고, 나로 사는 것이다’라는 것이에요. 즉,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두 학급 모두 그런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학급들을 나와서 새로운 학급을 구성하고 새로운 규칙을 세워 학급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새로운 규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요?”


“이 학급은 개인의 자유 보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단 같은 거예요. 우리가 시원하기 위해 선풍기나 에어컨이 필요한 것처럼 민주주의도 하나의 도구로서 필요한거죠. 민주주의 학교는 지금보다는 나중에 졸업하고 살 큰 공동체를 위해 미리 민주주의 삶을 살아보는 실험장 같은 건데요.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은 학급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잖아요. 그렇다면 민주주의도 거기에 맞춰 규칙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 살아갈 세상을 위해 학급의 운영 원리를 구성해보았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평등한 개인이 자유롭게 사는 것입니다.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합니다. 특정 사람에게 정치적 결정을 맡기면 순식간에 이것이 무너지니까요. 하지만 이런 정치적 결정을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한다는 것은 공간적으로 불가능하고 효율적이지도 않아요. 또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죠. 그래서 선거를 통해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그 대표자들이 국가를 운영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 학급도 이를 적용합니다. 우리 학급 학생이 현재 100명인데 이 중 10명의 학생들을 대표자로 뽑아서 학급을 운영하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물어보았다.


“그 10명이 영웅 학급처럼 권력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나요?. 10명의 절대권력이 불의하게 취한 이익의 합보다 차라리 1명이 불의하게 이익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것이 아닐까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힘을 좀 분산시켰습니다. 학급운영 집행부, 학급 규칙 제정부, 학급 심판부를 만들어 서로 견제하도록 해놓았습니다. 그 세 조직이 서로 눈치를 보고 견제를 하면 나머지 학생들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세조 직이 작당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운영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네, 그래서 이 조직 위에 일명 학급 헌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요. 이 학급 헌법은 모든 학생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권위 있는 고치기 힘든 법이죠. 이 법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넣어 두었어요.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세 권력 기관에 맡기지만 참고서 문제집 같은 것의 소유권과 내 도시락에 대한 권리, 내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자유 등 지극히 개인적 권리는 10명에게 양도하지 않는다.’ ‘권력자들이 우리가 최초에 한 계약과 다른 학급 운영을 하면 나머지 학생들은 저항할 수 있다.’ 같은 것이에요.”


“다른 두 학급에 비해 많이 고민하고 운영방침을 만든 것 같네요.”


“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많은 경우를 생각하고 정교하게 제도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자애로우시고 편해서 그러는 데 말씀하시는 와중에 드는 의문 두 가지만 이야기해봐도 될까요?”


“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의견이 다르고 그 의견을 서로 나눈다는 것은 좋은 거잖아요. 건전한 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상호 토의를 통해 발 전하는 거니까요”


“네, 그럼 말씀드려볼게요. 첫째로, 제가 아는 루소 선생님은 영국인들은 투표할 때만 국민이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상태로 돌아간다고 말을 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수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는 것이라고 할 때 대표자들을 뽑아 학급을 운영하게 한다면 결국 나머지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과 큰 관련 없이 학급이 운영될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평등한 개인이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누구는 타고나게 지혜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학교는 그렇다고 하더라고 현실에서는 빈부격차에 따라 정치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교육 수준의 차이 같은 것이 발생할 텐데요. 결국 다수의 합의가 아니고 경제적 상위 계급의 이익이 더 반영되는 것이니 좋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로크 선생님은 아랫입술을 윗 이로 지그시 누르며 침묵을 지키다 대답을 했다.


“일리 있는 이야기예요. 제 친구 J.S. 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도 저처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고요.”


파티 교실


로크 선생님과의 어색한 마지막 대화를 급히 마치고 향한 곳은 오늘의 마지막 교실인 파티 교실이었다. 처음에는 즐거운 party를 생각했으나, 담임선생님 말로는 모임, 정당이라는 의미의 파티라고 이야기하였다. 파티에서 즐거운 춤을 추며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해보려고 했는데 좀 아쉬웠다. 이 반의 학생들을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 학생들은 그룹별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티셔츠는 ‘공화’, ‘민주’, ‘자유’, ‘노동’이라고 쓰인 티셔츠였다. 큰 글씨를 쓴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각 그룹의 지도자들인 것 같았다. 한 편 그림으로만 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룹의 학생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 권총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 망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 약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더 자세히 관찰해보니 아무런 티셔츠를 입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도 몇 명 보이긴 했다.


“왜 반이 이렇게 그룹으로 나뉘어 있습니까?”


담임선생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반은 원래 자유 교실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반이었어요. 그런데 자유 교실의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따로 교장선생님 허락을 맡고 따로 반을 만들었어요”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자유 교실의 운영 원리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잖아요. 다수의 학생들이 대표자를 뽑아 학급을 운영하게 한다. 대표자들이 독재를 못하도록 권력을 나눈다. 학급 헌법을 두어 그것을 절대 규정으로 지키게 한다. 그래서 학급 학생들이 맘껏 자유를 누리게 하자. 그런데, 그렇게 운영이 된다고 해서 다수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학급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물론 선거를 통해 본인들이 원하는 대표자들로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선거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막상 뽑으려고 하면 그 학생이 그 학생인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학급 운영을 바꾸셨나요?”


“마트에서 친환경 농산물 코너, 지역 농산물 코너 이렇게 나누고 거기에서 농산물을 고르면 선택이 쉽잖아요. 마찬가지로 대표자 한 명 한 명의 됨됨이를 유권자가 파악하기는 너무 어려우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표자들을 묶어 하나의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에서 자유를 더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자를 묶어 ‘자유’ 당, 기존 사회적 가치를 더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자들을 묶어 ‘보수’ 당. 이런 식으로 묶었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대표자들을 선택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로 묶여 있는 당이 대표자들의 다수당이 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다수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훨씬 쉬워지는 거죠”


“아, 그런 장점이 있겠군요. 그런데 글자 없이 그림만 있는 학생 그룹들을 무엇인가요?”


“네, 그 학생들을 우리는 이익집단 또는 시민사회 그룹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정당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만 가지고 다수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학생들의 취향이나 욕구는 더 다양하잖아요. 짜장과 짬뽕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사회에서 사회가 짜장, 짬뽕, 탕수육, 라조기, 깐풍기 등을 골라야 하는 사회로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정당은 몇 개 없으니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다수 학생들 스스로 결합하여 그룹을 만들어 요구들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정당 그룹 학생들이 무시하고 그랬는데, 이 시민사회 그룹을 무시하고 계속 집권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 여론 형성에도 이런 그룹의 영향이 크니까 지금은 서로서로 협조를 잘하면서 아주 모범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점이 많은 운영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그만큼 학생들이 성숙해야 서로 싸우지 않고 조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 켠에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권리는 어떻게 챙겨지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은 나중에 교장 선생님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들어 학급 시계를 보니 벌써 3시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이야기해주셔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제 꿈이 좋은 민주주의 교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4개의 교실을 돌아보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고, 고려할 것이 많아 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교장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며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아야겠어요.”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


“잘 둘러보셨어요? 궁금하신 것은 없고요?”


교장 선생님이 묻는다.


“네, 환대해주셔서 잘 둘러보았습니다. 각 교실마다 운영하는 방식이 다르더군요. 민주주의가 각각 필요한 것을 넣으려고 하는 여행용 가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겠어요. 교장선생님께서 각 교실이 민주주의의 모델들을 상징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해드려야죠. 벌써 입이 근질근질하네요. 눈치채셨나 모르겠지만 복도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각 교실이 다른 시대에 운영되었던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거죠.”


“아, 그렇군요. 그러면 복도에 피라미드 형태 놀이를 하는 친구들은 중세 유럽을 상징하는 것이겠네요.”


“네, 정확합니다. 중세 유럽은 개인보다는 전체를 강조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선택을 전제로 하는 데 중세 유럽은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이후 교장선생님은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므로 이를 대화체로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다. 교장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를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보자.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나는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방식이다.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방식에 시민 전체가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만약 다수 시민이 대표자를 선출해서 그 대표자들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간접민주주의 혹은 대의제라 부른다. 나머지 하나는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이다. 민주주의의 목적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우리는 이를 보호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계발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관점이 있다. 계발 민주주의는 국가 공동체 활동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함으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부여받고 정치적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 관점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된다. 이 두 가지에 따라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모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데모스 교실’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모델로 한다. 그리스는 산악이 험한 지형으로 대규모 국가가 발전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이곳에서 폴리스라 불리는 도시 단위의 국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국가가 그 유명한 아테네다. 처음에 참주 혹은 독재자에 의해 운영되던 도시는 점차 인구가 증가하게 되고 중소 농업을 하는 사람들의 권리 요구로 이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게 된다. 노예는 권리를 주장할 경제적 힘이 없으나 중소 농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경제적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맘껏 누리다 죽는 것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발전 속에서 자신의 삶의 보람을 찾았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아테네의 사람들은 정치적 동물이었다. 왜냐하면 정치에 참여해야만 자신의 삶의 의미가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사람들이 모두 자유를 갈망하듯 고대 아테네의 구성원들은 정치를 갈망했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했다. 정치는 아고라라는 광장에서 다 같이 모여 의사 결정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 모임을 우리는 민회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라 일이라는 것이 모여서 결정하기만 하면 안 되고 누군가는 이 일을 추진해야만 한다. 체육대회를 하기로 결정했으면 체육대회를 누군가는 집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회에서 선출한 평의회와 위원회 등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집행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을 선출하는 방식은 번갈아가면서 하거나, 추첨 등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시민은 평생에 한 번 이상 공직에서 일하면서 정치적 자아를 실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는 직접 민주주의며 계발 민주주의의 모델이 된다. 그리고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하고 우리 공동체의 운명을 우리 모두가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매우 이상적인 민주주의 모델이 된다.


유명한 정치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무조건 좋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초창기의 크리스천이라는 단어가 ‘예수쟁이’라는 경멸의 뜻으로 사용된 것과 비슷하다. 이들이 보기에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서 방향을 잘 모르는 선원들이 목적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선원들이 무지하고, 충동적일 수 있는 것처럼 시민들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또 주변 국가들이 국가의 규모가 커지며 효율적 통치 수단을 가지고 군사력을 확대할 때 그리스 민주주의는 이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군 사령권이 바뀐다면 전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효율적이고 유능한 행정은 전문가의 지속적 활동이 필요한데 그리스 민주주의는 이런 면에서 취약했다. 현대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근본적 취약함을 안고 있었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일치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성인 남성 시민에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인구 절반인 여성, 그리고 수많은 노예, 그리고 외국인들은 정치적 권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결국 고대 그리스는 주변 강대국에 밀리게 되어 로마의 지배로 들어가게 된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중세 유럽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화산재에 묻힌 폼페이 도시처럼 묻혀버리고 말았다.


‘리바이어던 교실’은 근대 사회계약론에 근거한 민주주의 모델이다. 이를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홉스이다. 홉스는 영국의 섬마을에서 태어났는데 해적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해적이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너무 일찍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홉스는 작고 병약하게 태어났는데 그래서 그의 평생 관심은 안전과 건강이었다는 말이 있다. 홉스는 청교도 혁명을 겪으며 왕이 사형당하고 크롬웰이라는 민중 지도자가 폭압적을 영국을 다스리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는 이런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통해 그의 독특한 민주주의 이론을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통해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다. 즉, 우리가 무인도 같은 곳에 던져지고 우리를 통제할 경찰도 법원도 없다면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로 서로서로 싸우고 죽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홉스는 사람들은 모여 자신의 안전을 보호받기 위해 일종의 사회적 계약을 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 계약을 통해 사람들의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한 사람에게 양도하는 데 이 사람을 리바이어던이라는 무시무시한 성경의 괴물로 비유했다. 사람들이 왜 무시무시한 한 사람에게 굳이 우리의 권리를 양도할까? 그것은 자연 상태의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불완전한데 계약 이후에도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더 나은 존재에게 내어 맡기고 거기에서 안전과 평화를 얻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민중에게 내어 맡기는 것이 크롬웰 같은 무자비한 사람들의 지배를 가져오고 그렇게 되느니 자비로운 왕에게 내어 맡기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의 주장은 보호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유 교실'은 대의 민주주의를 모델로 하는 교실이다. 홉스의 성악설은 인간성의 단면만을 보여준다. 인간은 이기적이거나 충동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또 인간이 그렇다면 왕도 인간이 아니겠는가? 로크는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와 안전을 보호받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고 보았다. 여우를 피하기 위해 사자굴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로크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자연 상태는 불완전한 상태로 외적의 침입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빼앗길 수도 있고 자연적 권리를 잘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 자신들의 자유와 안전을 보호받을 국가를 만들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와 안전을 보호해 줄 사람이 한 사람이면 독재자가 될 것이라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나라를 운영할 대표자를 뽑는다. 그리고 그 대표자는 계약의 목적인 자유와 안전, 평등, 여타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가를 운영하게 된다. 여기는 우리는 조심스럽게 고고학에 사용하는 붓을 들고 화산재를 털어내며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파헤쳐 볼 수 있다. 기왕이면 다 함께 나라를 운영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미 시대는 역사의 긴 복도 멀리 있다.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충동을 이기고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소수의 애국심이 있고 합리적인 사람을 대표로 뽑고 그들에게 우리의 권리를 이양하고 그들이 다스리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이런 로크의 주장은 민주주의를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보호 민주주의의 모습이며 진정한 근대적 의미의 대의제의 시발점이다. 이후 몽테스키외를 통해 권력이 나뉘고, 시스템에 의해 비인격적이 되고, 서로 견제를 해야 절대 권력의 등장 없이 시민의 자유를 잘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더해진다. 헌법을 통해 기본권이 보장되고 정부 권력의 휘둘러지는 방법이 이야기되고 모든 권력을 그 밑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해진다. 이들에게 대의제는 큰 규모의 국가를 통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직접 민주의의 대안이 아니고 가장 효과적인 민주주의 제도였다.


로크에서부터 벤담과 밀, 그리고 그의 아들 J.S. 밀, 20세기에는 하이에크에 이르기까지 이들 주장의 핵심 중 하나는 소유권으로 대표되는 자유권은 사회계약을 통해서도 빼앗길 수 없는 권리라는 것이다.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계약이 자유를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키운 사과나무의 열매는 사회계약을 맺든 사회계약 이전이든 언제나 내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 자유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특별히 소유의 자유가 중요하다. 용돈을 타서 쓰는 자녀는 자신이 돈을 벌어 쓰는 자녀보다 부모에 대해 더 자유롭게 말하기 힘들다. 각각의 사람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려면 국가가 개인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간섭하면 안 된다. 국가가 개인의 소유권을 간섭할 수 있다면 정치적 의사를 맘껏 표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적 자유는 민주주의를 침해할 수도 있다. 소유의 자유는 소유의 차별을 가져온다. 소유의 차별은 정치권력을 획득할 가능성의 차별을 가져온다.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정치 활동에 뛰어들 수 있지만 입에 풀을 붙이고 사는 사람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들다. ‘자유 교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시민이어야 가능한 운영원리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자는, 여자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이 되기까지 오랜 투쟁이 필요했고 지금도 투쟁 중이다.


‘파티 교실’의 운영은 현대 민주주의, 특히 미국 민주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생필품을 사려고 마트에 간다고 해보자. 마트에 ‘00 코너’ 같은 정보가 없다. 혹은 각각의 상품에 상품을 소개하는 깨알 같은 글씨가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원하는 물건을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겉보기에 좋은 물건을 살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당은 정치적 소비시장에서 이런 수고를 덜어준다. 정당은 동일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다. 마치 생선을 고를 때 ‘신선 코너’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대표자가 되기를 원하는 개개인의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정당을 믿고 그 사람을 고른다. 정당은 의회정치에서 비효율성을 제거한다. 정당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중요한 의제를 설정하고 협의를 하고 합의를 한다. 개개인의 국회의원들이 이합집산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정당정치 또한 일반 시민의 의사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다시 마트의 비유로 돌아가 보자. 과거 마트에서 과일을 살 때 고르면 되는 것이 많지 않았다. 딸기, 수박, 참외, 사과, 배, 귤, 포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골라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포도만 해도 칠레산 포도, 백포도, 흑포도 등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사회도 변하였다.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가 다양화되면서 몇 개의 정당이 시민의 뜻을 파악해 정치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하였다. 같은 뜻을 가진 시민들이 이익집단이나 시민단체를 만들어 정당이나 행정부와 접촉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한다. 시민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들을 확산시키려고 노력한다. 갑자기 민주주의의 파트너들이 많아진다. 우리는 이를 다원주의 모델이라 부른다. 다원주의 모델은 처음에 무지하고 욕심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균형 있는 민주주의의 멋진 모델로 인식이 된다. 하지만 이 모델은 풍요로운 미국, 처음부터 민주 주로 시작한 나라로서 미국의 모델이다. 가장 좋은 모델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심이다. 또한 이 모델은 이 집단에 속하지 못한 시민들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다. 노조에도 가입되어 있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는 의회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각 집단마다 목소리가 같은 것도 아니다. 하이톤이 있다. 정치자금을 많이 댈 수 있는 ‘전미 총기협회’의 목소리는 다른 단체의 목소리보다 훨씬 반영되기 쉽다. 이 모델은 그런 면에서 보호를 목표로 하는 대의제의 다름이 아니다.


일본 가고시마현 사꾸라지마섬의 화산이 2021년 4월 21일 분화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백두산도 언젠가 기지개를 켜고 화산을 쏟아낼 수 있다는 말들이 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이상은 어떠한가? 18세기 이후 민주주의는 선출된 대표를 통해 집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데 참여하는 시민들의 권리정 도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20세기와 지금에까지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한 선출, 대의제 정도로 굳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민주주의의 의미를 물어보자. 우리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화산을 품고 있다. 그것이 419로,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6월 항쟁으로, 그리로 촛불 시위로 분출했었다. 그때 우리가 생각했던 민주주의는 우리가 국가의 주인이며 우리가 정치의 주인이며, 우리의 삶과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루소가 이야기하는 ‘일반 의지’를 체험하게 된다. ‘결코 군주를 믿어서는 안 되며, 인민이 정부활동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 쓰는 편지


늦은 밤이다. 오늘 경험했던 교실과 교사가 되고자 했던 1987년을 떠올려보며 앞으로 교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답을 얻고자 하였지만 답이 너무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학생들이 행복한 학급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된다.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특별히 미숙한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학급은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각자는 각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할 것이고 이때 가장 큰 피해자들은 다수의 학생들이고 특별히 소수의 힘없는 학생들일 것이다.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한 사람의 능숙한 지도자에 의해 학급이 운영된다면 학급은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그 안에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각자의 욕구가 있고 꿈이 있는데 그것을 능숙한 지도자가 어떻게 다 파악하고 실현할까? 그리고 그 능숙한 지도자가 결국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지도자가 될 때 학급의 고통은 얼마나 심할 것인가? 학생들 중 대표자를 뽑아 학급을 운영하면 어떨까? 학급의 남녀평등을 이루겠다는 학급 회장 후보가 떡볶이를 맘껏 먹게 해 주겠다는 회장 후보를 제치고 항상 이길 수 있을까? 생기부에 ‘리더십 있음’이라는 기록을 위해, 뽑히기 위해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후보들을 우리는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다수 학생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는 필수다. 실패는 경험이고 경험은 더 나은 선택을 가져온다. 미숙하다는 것은 배제의 이유가 아니고 참여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가장 작은 학급의 일(예를 들어 자리를 앉는 순서를 정하는 일)부터 좀 더 큰 일(예를 들어 학급 소풍을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면 훨씬 큰 일(학교 규칙을 정하는 일, 동료 학생의 징계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는 일, 학교 예산의 우선순위에 참여하는 일) 같은 것을 하면서 경험하고 배운다. 학생들은 의사가 결정되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을 파악하게 된다. 학교는 민주주의의 실험장이며, 교육장이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풀뿌리다.


하지만 단순한 참여만 가지고 판단하기 복잡한 고도의 문제들을 해결할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늘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면서 읽은 ‘숙의 민주주의’라는 책이 도움이 된다. 숙의 민주주의는 등장한 지 20여 년 밖에 안된 모델이다. 숙의는 깊게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시민은 깊게 생각해보고 정치제도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준다. 예를 들어 표본 추출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은다. 그리고 이들 앞에서 긴급한 공적 관심사에 대해 전문가들 간, 전문가와의 토의를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한 후 그 결과를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숙의민주주의는 단순한 토론이 아니고 숙의의 과정을 통해 주어진 쟁점의 핵심 갈등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각각의 주장들에 숨어있는 집단적 개인적 이기심과 욕망을 드러나게 해 준다. 사람들은 숙의를 통해 좀 더 이성적이고, 공공의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을 할 수 있다.


상벌점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 이를 도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상벌점을 정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난맥상을 아주 잘 보여준다. 상벌점을 기준을 학생 전체의 다수결에 맡긴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외투를 입고 있다. 하지만 상벌점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가장 나쁜 사례는 교장선생님 혹은 생활부장이 정하는 경우다. 이는 민주주의와 무관하다. 두 번째는 학생 대의원이 정하는 경우다. 대의제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견 민주적이다. 하지만 대의원이 학생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에 모범생(?)이 너무 많다. 학교 규칙을 정하는 데 있어 이들의 가치관이 강하게 표현될 가능성이 크다. 대의원이 정한 기준을 공개토론을 하면 어떨까? 복불복이다. 논의가 건전하게 이끌어질 수도 있지만 선동하는 학생들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은 한 곳에 모여 한두 시간에 불과한 토론을 통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공공선을 위해 어떤 것이 최선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만약 다수 학생들 중에서 표본을 추출해 일주일 정도 숙의의 과정을 거치고 그 결과를 발표한다면 더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정해지고 정당성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민주주의 모델이 가장 좋은 모델일까? 그늘이 없는 나무가 없듯이 단점이 없는 제도는 없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타인의 노예가 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의 삶이 선택되기를 원하지 않고 다수가 공동체를 사랑하며 공공선 안에서 자신의 삶이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학급은 필요조건이 아니고 충분조건이다. 혼자 고민하지 말자. 민주주의는 민중의 지혜를 통해 발전했다. 좋은 민주주의 학급을 만드는 것은 나의 과제이지만 동료 학생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소통하고 존중한다면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자야겠다. 내일 뜨는 내일의 해를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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