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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an 18. 2023

[군대 독후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에 관해서

예전부터 궁금했다. 국가 간의 국력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인종, 문화의 고유한 차이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고, 나라의 통치자가 가난을 극복하고 국가와 국민을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무지 가설) 있으며, 훈련소에서 읽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는 경제력이나 문명 발전 수준의 차이는 지리나 기후 등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 뭐가 정답에 가까운지 고민하다가, 김지윤의 지식 플레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21세기에 들어 저 3가지 가설을 반박하고, 국가의 번영에 있어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Why Nations Fail> 리뷰 영상을 봤다. 보고 나서 흥미가 생겨 무조건 읽어봐야겠다 싶어 곧장 인터넷 서점을 통해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주문하고 보니 500쪽은 족히 넘어 보이는 분량에 읽기를 시작하기가 망설여져 미뤄오다가 휴가 나가기 일주일 전에, 남는 시간 동안 다 읽어봐야겠다 결심하고 8일 동안 꾸준히 읽어 완독했다.


개인적으로 김지윤의 지식플레이에 있는 영상을 보면 이 책을 보기 전에 이해를 깔고 가기 쉬울 거라고 생각해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동영상 링크


책의 본론은 간단하다.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착취적인 제도에서 벗어나 포용적인 제도를 갖춰야 한다. 포용적인 제도는 사유재산이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강력한 중앙 정부에 의해 확고히 보장되고, 법체계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rule of law),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포용적 제도가 효과적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잘 살기 위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그 안에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분기점이 될 법한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거나(산업혁명 당시 잉글랜드), 그 과정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나가게 된다(호주, 미국 등).


반면에, 착취적인 제도는 착취적이고 절대주의적인 정치제도에 의해 창조적 파괴를 수반할 만한 혁신을 억압하고, 정치권력을 찬탈할 때의 메리트가 커 권력 투쟁 인한 내전, 부정부패 등의 온갖 정치적 불안에 시달린다. 그뿐만 아니라 소말리아와 같이 중앙 정부의 통제가 부재한 경우에는 인센티브를 보장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사회 질서조차 유지하지 못해 혼란스러워진 사회 분위기 자체가 국민들을 착취하는 주체가 된다. 착취적인 제도 하에서 신기술과 혁신, 창조적 파괴는 억압받기 마련이고, 이런 것들이 산업 혁명, 디지털화 같은 중요한 분기점을 지날 때마다 다른 국가와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근래 엄청난 세계 불평등의 원인인 산업 기술 및 생산 기반의 불공정한 분배로 귀결된다.


이 책의 주제를 제일 잘 담아내는 도시인 노갈레스의 사진. 장벽을 경계로 미국과 멕시코가 나뉘고, 그렇게 같은 도시 안에서 완전히 다른 삶의 형태가 목격된다.


이 책은 국가가 성공하기 위해 포용적인 제도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차이가 생기는 결정적 분기점까지 발생한 제도적 부동(다른 면이 모두 같다고 하더라도, 제도적인 면에서 점점 멀어지는 현상)에는 우발성이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결국 포용적 제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관계없이, 포용적 제도로의 전환점(프랑스혁명, 명예혁명 등)은 그 목적과 전혀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우발성을 수반한다. 학자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결국 어느 정도는 운빨이라는 거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우발성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포용적 제도의 우월성에서 비롯되어 자칫 생길 수 있는 유럽의 아프리카에 대한 우월의식의 가능성을 원천에 차단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포용적 제도든 착취적 제도든 그 안에서 상호작용함으로써 각자 선순환과 악순환을 이어나가고, 그 안에서 체제는 더 확고해진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되고, 국가 간 차이는 계속해서 벌어진다. 어떻게든 그 악순환을 끊어내야만 국가가 제한적인 발전을 넘어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계기도 어느 정도 우발성에 기인한다. 어느 정도 운도 있어야 하지만, 그 계기를 활용할 만한 최소한의 역량 역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게 말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책에서 여러 흥미로운 사례가 나오는데, 그중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북한(특히 북한은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할 가장 효과적인 사례로 활용된다)에 눈길이 갔다. 여전히 착취적인 절대주의적 정치제도를 가진 중국이 고속성장을 통해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현상에 대해, 저자는 마오쩌둥의 죽음이라는 결정적 분기점을 통해 덩샤오핑이 집권한 이후 문호를 개방하고 시장 경제를 활성화하는 등 포용적 경제제도를 일부분 정착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착취적 정치제도 하에 권력의 재분배를 야기할 창조적 파괴가 억압받을 가능성이 높은 중국은 시간이 갈수록 여러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실패할 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북한의 사례를 다루면서 공산주의 국가들의 실패의 원인은 20세기 절대주의가 된 공산주의에 의거한 착취적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라고 지적한다.


600쪽 넘는 분량의 책을 읽는 건 생각했던 대로 어려운 일이었다. 노트 정리를 최대한 간결하게 하려고 해도 책 내용이 워낙 방대해 노트 5장을 빼곡히 채울 정도였는데, 다양한 사례들 중 단 하나도 기록할 가치가 없는 게 없어서 결국 디테일한 부분까지 기록하게 돼서 나중에 요점을 정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책의 전반적인 주제를 이해하기에는 한 번만 읽어도 부족하지 않지만, 그 안에 나오는 여러 사례에 대한 분석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2번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읽어도 관점이 넓어지지만, 여러 번 읽어야 관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비교적 포용적인 제도를 도입한 걸로 평가받는 한국에서 여전히 착취적인 성격을 띠는 제도와 문화에는 뭐가 있을까. 군대는 조직으로서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 중 뭐에 더 가까운가. 과연 군대는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인센티브를 충분히 부여하고, 적절한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의 이론이 비단 국가뿐만 아니라 인적자원과 한정적인 수단을 활용해야 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조직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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