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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26. 2021

32살에 갱년기우울증이라니!

상담사의 권유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된 어느날부터 우울증은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한 후 부터 극심해진 우울증에 매일이 괴로운 나날이었다.


무기력한 채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나면 5시간정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었음에도 집안일도 뒷전,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는 등 아무런 의욕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무의욕, 무기력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사람을 만나 우울함을 달래려는 시도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사람을 만나도 즐거운지 몰랐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이면 오히려 우울증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동안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멍한 상태로 하루가 다 지나는 허무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고 '설마 내가 일이 하고 싶은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어렴풋한 인식이 있었지만 여전히 이 감정의 원인과 해답을 찾지는 못하던 상태였다.



상담사에게 당시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자 의외의 답변을 듣게 되었다.

32살의 나이에 '갱년기우울증'이 찾아왔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갱년기는 아니었으므로 갱년기우울증이라 진단할 수는 없었지만 갱년기우울증의 양상과 매우 비슷한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했다.


32살에 갱년기 우울증이라니!

나 스스로에게 정말 가지가지한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부터 삶이 텅 비어버린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갱년기에 자녀들을 출가시킨 어르신들이 흔히 겪는 빈둥지증후군, 즉 갱년기우울증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우울이었다.




모든 인간은 성취욕을 가지고 살아가며, 성취욕의 충족으로 자신의 자아 역시 충족시킨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성취욕을 이룰만한 것이 없었다.

처녀시절엔 회사업무, 쇼핑, 여행, 영어레벨업, 하다못해 주말에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면서라도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육아가 시작된 후 엄마로서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달려왔고 운동, 쇼핑, 사람만나는 일 등 소비적인 성취는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소비적인 성취가 아니라 생산적인 성취를 느끼고 싶은 상태였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엄마로서 생산적인 성취를 느낀다는 것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어렸고, 기관에 다녔지만 일찍 하원했기에 여전히 부모의 손이 필요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기관에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양가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생산적인 성취욕을 채우겠다고 무턱대고 취업을 할 수도 없었기에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소비적인 성취일지라도 조금씩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무의욕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어떠한 생각이 스치면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하 말고 그냥 가볍게 툭 한번 해보라는 권유와 함께 한두번 해보고 괜찮으면 쭉 더 해보는거고, 별로면 거기서 끝내 버리면 되는 거라던 상담사.


당시 나는 자존감이 낮았던 상태였기에 나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어차피 한두번 해보고 작심삼일로 끝나버리겠지. 나는 의지박약이잖아. 뭘 꾸준히 해본적도 없잖아.' 라는 나에 대한 불신으로 무언가를 선뜻 나서서 하질 못했다.

상담사는 이 우울감을 외면하기 보다는 더 깊이있게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성장의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남겼고 그것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면 되는걸 왜 굳이 끝장을 보는 것에 집착하며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상담 후 내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머리터지는 고민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의외의 결론이 나왔다.

대학교에 진학하여 심리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황당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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