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by 김수빈


우리에게 아빠란,
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고 무지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엄마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아빠를 무시하고 하대했고
가족들이 아빠를 대할때면
늘 말에 가시가 있고, 날이 서있고,
아빠가 무얼하든 까칠하게
매우 공격적인 말들을 쏟아붓곤 했다.

그리고 상담을 하며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싸잡아
본인도 모르는 새,
우리도 모르게,
은연중 편을 만들어 버리고
아빠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물론 아빠라고 잘못이 없는건 아니지만
무능력, 무책임, 무지한 부분이
어느정도 있기에
결단코 결백하달 순 없지만
그러한 이유로
가족들에게,
심지어 서열상 부모의 아래에 있어야 하는
자식들에게 모자란 사람 취급 받으며
막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몰랐다.
엄마의 아빠를 향한 경멸과,
엄마의 아빠를 향한 막말이
내게 내면화되어
어느샌가부터 나도, 동생도
우린 아빠를 아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사 그것을 깨달은 나는
아빠에게 더이상 무시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아빠를 무시할라치면
오히려 방패막이가 되어
작작 하라고 그만 하라고
막아주기도 했다.

그런 내게 아빠는 늘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내가 방어가 되어주는것 때문에
느끼는 고마움은 아니라
언행은 무시와 천대를 일삼을지라도
그럼에도 아빠를 위해
희생하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에 그랬을거다.)


아빠에겐 종종 화가 나는 포인트들이 있긴하다.
가난한 집에서,
좁은 집안에서,
아빠는 6남매로 자라온 환경 탓인지,
그 옛날 복작대며 살았던
드라마 육남매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그러한 가정에서 살아서인지,
집안에서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전혀 없었다.
(생각해보면 집 외에서도 그러한듯하다.
사람 자체는 매우 착한데, 무지에서 오는 행동인것 같다.)


아직도 친정은 방 두칸짜리 조그마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방이 두칸이니 내가 친정에 갈때면
잘 곳이 없어 거실에 아이와 이불을 펴고 자곤 한다.

아빠는 거실에서 내가 자고 있든, 아이가 자고 있든,
벌컥벌컥 문을 열고 나와
거실과 바로 연결된 주방에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요란하게 과일을 깎아 먹고, 부시럭대며 과자를 먹곤 한다.

예전엔 심지어 아이와 내가 자고 있는데도
거실과 이어진 주방에 불을 켜버리고선
본인의 요기를 하고 있곤 했다.

몇번의 빡이 친 상황에서
아이가 깬다.
아빠땜에 잠을 못잔다.
이야기하며 불을 켜는 행동과 같은 몇몇 행동은 수정이 되었지만
강도가 약해졌을 뿐,
여전히 그러한 행동을 일삼고는 있다.

그리고 할머니댁에 가서 느낀게
이 모든게 가정환경탓이구나 하고 느꼈다.
아빠의 이러한 행동들을
할머니가 고대로 하고 계셨고
덕분에 잠도 못자고
새벽부터 깨나
개피곤을 느끼곤 했다.

엄마는 교대를 돌기에
수면이 정말 중요한 이슈다.
불면도 시달리고,
수면량이 많지 않아
늘 힘들어 하는데
그럼에도 아빠는 엄마가 자고 있든 말든
불을 켜고 시끄럽게 해댄다.

무지에서 오는 애티켓의 부재였다.


그럼에도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조심해달라 부탁했고
아빠는 그래도 나름 내 눈치를 보며
조심하려 노력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 사건이 터졌다.
아빠에게 화 한번 안내고 지낸지
3년이 지난것 같다.

오늘 낮, 아이는 나와 외출해서 어마어마한 간식들(불량한 과자들)을 많이 먹었다.
친정에 돌아와 엥간하면 간식을 안먹이고 싶었으나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바리바리 사서 들어왔다.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권유하길래
그래, 할아버지의 사랑이니까
하며 한개정도는 그냥 넘기려 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해치웠고
나는 잘 시간이 되어
아이 양치를 다 시키고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아빠가 불쑥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먹이겠다고 한다.
아이스크림 먹은지 30분 지났나?
안된다, 하나 먹었다.
라고 했지만
순간 간식을 제한하는 내가
굉장히 유난스러운 사람인양
뭐 한개가지고 그러냐며 핀잔을 보냈고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낮에 어마어마하게 간식을 먹은 상태였고
아이스크림 하나도 아빠를 봐서 참고 먹였건만.
아이스크림 먹은지 30분 지나
아이가 먹고 싶단 말을 한것도 아닌데
본인이 나서서 하나를 더 먹으라 강요한다.

간식을 너무 많이 먹기도 했고,
이미 양치를 다 하고 잘 준비를 끝내두었기에
안된다고 단호히 이야기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에게 자자고
안방(아빠방)에서 데리고 나오려는데

실실 웃으며 아빠가 나와 얘기한다.
내가 너 몰래 한입만 먹으랬는데
절대 안먹는닼ㅋㅋㅋㅋㅋ
라며 실실대며 말하는데 빡이 쳤다.

그딴 식으로 굴면 난 더이상 구미에 오지 않겠다고.

아빠는 뭣이 잘못된지 모른채
아니 안먹었어 안먹었어
라며 여전히 실실대며 내게 한입 몰래 먹으랬는데 블라블라를 얘기하고 있었고

화가난 나는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애가 먹고 안먹고가 중요한게 아니고
아빠의 태도가 문제라고.
그딴 짓거리 할거면 난 앞으로 구미 안온다고.
나 몰래 애한테 뭐 먹이고 그딴 식으로 구니까
구미 오기 싫다고 !!!

화를 쏟아부었다.
그딴 식, 그딴 짓거리
아빠에게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굉장히 무례한 말이었고
아빠를 하대하는 행동이었다.

아빠는 여전히 실실대며 아니 안먹었다고 알았다 알았다. 를 얘기했고
나는 행동을 하기 전에
사람이 좋아할 만한 행동인지
싫어할 만한 행동인지
생각이란걸 좀 하고 행동해
라고 정점을 찍었다.


팔땡이는 아빠에게 화내는 날 보고
눈이 땡그래져 놀랐고,
아빠는 실실대며 무마시켰지만
당황해서, 민망해서, 뻘쭘해서
실실대는것이 뻔히 보였다.

아빠에게 그리 쏟아내고 나니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말을 너무 심하게 한 것, 아빠를 무시하고 하대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상처받았을 아빠에 대한 걱정,
강하게 화를 내어 버린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쳤고
순간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20분 전의 일이다.


아빠는 여전히 아무일 없다는 듯
웃으며 대한다.
아빠라고 아무 감정이 없겠는가.

늘 가족들이 무시해도
허허실실 웃으며 무마시키곤 한다.
하지만 누가 본인을 무시하고 하대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상처받을대로 받겠지.
그리고 미안해 죽을것 같은 기분과
짜증이 동시에 휘몰아친다.


무지에서 오는 저런 기본적 애티켓조차 없는 아빠에게,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애티켓이라는걸 왜 지켜야는지, 굳이라던지, 그러한 생각을 가질 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러하다.
목소리 커서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낮춰달라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고,
특히 애티켓에 민감한 남편에게 지적받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조용히 하라는 둥...)

재미를 좇는 스타일의 아빠는
아이에게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이는 것이
어떠한 재미있는 요소였을지 모른다.
나 역시 재미를 좇는 성격땜에
내 재미를 위해 타인이 희생되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당황하고 민망하고 무안한 상황에서
허허실실대며 웃어 넘기는 것이
꼭 나를 닮아있다.

나도 남편과 싸울 만한 상황에서
실실대며 상황을 넘기기도 한다.
나름의 방어기제이기도 한것 같다.
덜 상처 받은 척,
난 괜찮은 척.


내게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모습들에
짜증을 느꼈다.

왜 저렇게 어리숙하고 미성숙한 행동들을 하는 거지?
그리고 그건 바로 내게 있는 모습들이었고,
나 역시 그러한 나를 종종 무식하게 바라볼 때가 있었다.

무식하게 애티켓 하나 못지키는 나
무식하게 재미만 좇는 나
무식하게 싸울만한 상황에서 실실대는 나
모자라보이는것 같기도,
미성숙해 보이기도,
어리숙해 보이기도 하는 행동들 말이다.


가장 화가 났던 이유는
양치를 하고 잘 준비를 끝내놓았다
했는데, 그럼에도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이려 했다는 것은
아이가 단걸먹고 양치도 없이 자게 된다는 것인데
아이 건강과 직결되는 부분들이라 화가 났다.

본인 치아도 엉망으로 관리해서
내가 4천이나 들여 치아를 다 해주었는데,
그러한 일을 겪고도 경각심이 없는가.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연달아 계속해서 먹다
건강에 이상이라도 오면 어쩌려고,
본인도 당뇨에 고지혈에 전단계라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면서
왜 아이까지 그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
건덕지를 계속 던지는가.

다시 한번 무책임한 모습에 화가 난것 같다.
그리고 무지한(내 기준에서 무식하고 모자라보이는) 아빠의 모습에도 화가 난 것 같다.

예전엔 아빠가 실제로 무식하고 무지하다 생각하고 하대했지만,
상담공부 후 아빠에게 전혀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나름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의 기저의 어떤 부분을
아빠가 자극해 버리자
그것이 강하게 폭발을 일으켜 버렸다.

난 과연 아빠의 그러한 모습이 싫은걸까.
여전히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걸까.
나 역시 그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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