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향한 원망

by 김수빈


부모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왔다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아동기에 대해 물어보면 늘 '불행' 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육아를 하기 전까진 그저 가슴에 묻은체 그러한 상처들을 꺼내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모로인한 상처를 끌어안고 살던 나는 출산을 하게 되었고, 육아를 하며 나 또한 부모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부모로서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받은 육아의 대물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아이에게 미친듯이 화도 났다가, 어느 날은 아이가 너무나 미웠다.
아이라는 존재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내가,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그린 완벽하게 좋은 부모의 모습과 전혀 동떨어진 나의 부모로서의 못난 모습, 내가 아무리 이악물고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나의 밑바닥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부모를 향해 원망을 토로하며 탓하고 있었다.

출산전엔 그저 꽁꽁 묻어두고 내비추지 않았던 부모를 향한 원망이, 아이를 키우면서 겉잡을 수 없이 분출되어 그들을 탓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낸 어느 날은 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내가 엄마한테 보고 배운게 이것뿐인데, 뭘 어떻게 더 아이한테 잘하란 말인데!!!!" 라며 울분을 엄마에게 쏟아붓기도 했고, 아빠에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빠라 아빠로서 자격도 없다." 라는 말을 대놓고 하며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

부모를 탓하는 이러한 행동이 영유아를 키우는 초보 부모들에게서 많이들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육아서적에는 프로이트가 초기 아동기를 강조하며 부모의 역할을 중요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고, 존 볼비는 애착이론을 제시하며 이 역시 부모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고 있었다. 그 뿐이랴, 많은 심리이론에서는 부모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었고, 육아서적을 목숨걸고 읽던 나는 부모로서 형편없는 날 용납하지 못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형편없던 내 부모의 자격을 운운하며 탓을 하곤 했다.

그래도 할 말은 있었다.
형편없는 육아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미친듯 육아서적을 읽고, 또 가정보육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영상노출을 일절 하지 않고 등등 나름 완벽한 육아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발육아를 하는 부모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한심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자격을 운운하며 "아무한테나 부모 자격을 주면 안된다니까, 부모도 자격시험을 봐서 아이를 낳도록 해야 해" 라는 망언을 쏟아붓곤 했다.

육아를 잘 해내기 위해 책 한번 읽지 않는 엄마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아이 아빠로서 육아서 한권 읽지 않는 내 남편조차도 이해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에게 영상이 안좋은걸 빤히 알면서도 영상을 노출하는 그들이, 아이에게 건강하지 않은 달고 자극적인 간식들이 좋지않음에도 제공하는 그들이, 애착이 중요한데 일찍이부터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분리를 하는 그들이 이해가 안갔고 모두 본인들 편하기 위해 아이는 뒷전인 한심하고 자격없는 엄마라 느껴졌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만, 난 그래도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나는 나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담을 하며, 공부를 하며, 또 아이를 키우며, 점점 커가는 아이와 함께 아이의 연령에 맞춰 나 역시 커가면서 나는 자연스레 부모의 탓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뭔데, 감히, 성급하게, 또 어줍짢게 내 부모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그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들 역시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육아를 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든, 그것이 어떠한 상황을 만들든 당시 그들이 했을 선택은 최선의 것이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도 나름의 아픔이 있는 피해자들이었다.
그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육아방식을 그대로 대물림할 수 밖에 없는, 내가 받아본 것이 그러한 것이니 그것을 또 그대로 대물림 해서 물려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부모와 내 아이의 관계를 지켜보며 느껴간다.
내 부모 역시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을 내게 표현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방식의,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양만큼의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부모에게 정서적 지지를 원했다.
첫생리를 시작한지 몇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마침 명절이라 온 식구들이 모였고, 거기서 생리가 터져버린 나는 거기서 여자로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뿐이라 엄마에게 생리가 터졌으니 함께 가달라 요청했지만, 엄마는 바쁜 일정에 치여 나를 매우 귀찮아하며 분리되어 있는 주방(옛날 집이었어서 마당에 주방이 분리되어 지어져 있는 구조였다.)에 가서 알아서 갈아입으라며 내게 짜증섞인 말만을 내비쳤다.

당시 내 나이 13살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생리라는 것이 익숙치 않은 상황에서 나는 주방으로 가 누가 올까 맘졸이며 팬티를 갈아입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할머니를 마주쳤고, 아이고! 벌써 시작했냐! 라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때 엄마가 내 감정을 읽어주고, 함께 동행해서 망이라도 봐주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사소한 것들에 엄마에게 섭섭함이 쌓이고 쌓여,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생각해본 엄마는, 첫생리때 내 첫생리 날짜가 각인된 금반지를 선물하고 생리파티를 마련해주고, 많은 축하를 보내주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고마움보다는 부끄러움 뿐이었다.

그랬다.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엄마가 원하는 시기에, 엄마가 원하는 양만큼 표현했다.
정작 사랑을 받는 내가 필요한 때, 내가 원하는 방식과 양의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생리축하파티보다 불안한 상황에서 함께 동행해 팬티갈아입는 것을 지켜봐주는 것이 더 필요했다.
그렇다보니 엄마는 엄마의 나름대로 사랑을 주었지만, 정작 받는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부모가 나의 아이와 함께 하는 모습을 바라볼때면 나는 종종 내 아이에게 어린 시절 내가 투영되어, 아이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과 원하는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또 내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엇갈리는 것을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며 그들 역시 나를 사랑했음을, 하지만 그 방법이 서툴렀음을 깨닫게 되었다.

불행한 아동기를 겪으며 사랑을 못받으며 자랐다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동기 시절 불행했던 기억들에만 포커스 맞추어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때문인지 좋았던 기억은 모두 퇴색되어 잊고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의 관계글 지켜보며 다시금 나도 잊고 있던 그들과의 따뜻한 추억이, 그들이 주고자 했던 사랑이 떠오르곤 한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내게 사랑을 전달하고 표현했던 적은 많이 있었다.
앞서 말한 생리파티나, 내가 아플때면 밤새워 나를 간호하기도, 내가 다리를 다쳐온날 세상이 무너지듯 힘들어하던 엄마, 성장통때문에 힘들어할때면 밤새 내 다리를 주무르던 아빠...

억울하고, 화나고, 섭섭한 기억도 많았지만 그 기억 이면에 그들이 내게 보여준 사랑 역시 있었음을 나는 이제야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 역시 삶에 치여 여유가 없었음을.
섭섭함이 전혀 없진 않지만,
섭섭함과 함께 그 또한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얻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서툴렀던 그들의 사랑의 방식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 역시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이제서야 느낀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음을,
세상에 부모에게 상처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음을,

나 역시 아이에게 매일 상처주고 또 후회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를 탓하고, 부모로서 자격을 운운하고 있었다.
감히, 부모님을 판단하고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예전엔 무지함도 범죄라 생각했다.
부모로서 무지함이 자식들에게 굉장한 상처를 남기고 그러한 무책임함은 부모의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내가 섣불리 판단했던 모든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들 역시 그들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또 전하고 있음을.

예전 글에서 나는 이제 부모님을 용서하기로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한단계 더 성숙해진 내가 말한다.
감히 그들을 판단했음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당신들이 날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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