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초반에는 우리 가족 문제점만 보이더니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보이는 가족의 애정
음..
이번에 친정을 다녀오며 느낀건
상황이 참 서로를 정서적 교류가 없게끔 만들고 있다는 점.
집이나, 각자의 회사에서의 스케쥴과 같은 물리적인 상황때문에 우리 가족은 각자가 정서적 교류를 나눌만한 여력이 없었다.
교대근무하는 엄마와,
회사와 취미생활을 병행하는 아빠와 동생,
그리고 셋의 취미가 너무나 상이함
(엄마는 등산, 아빠는 테니스와 자전거, 동생은 바이크)
셋의 생활 패턴이 너무나 상이해버려 정서적 교류를 나눌만한 공동의 시간을 갖기가 매우 힘듦.
공동의 시간이 생기더라도 각자가 추구하는 쉼의 방향이 또 너무나 상이함
엄마는 드라마, 아빠는 축구, 동생은 게임
집에서 각자의 취미나 휴식이 우선.
우리집 특성상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각자 사생활을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는 편이라 각자의 자율성이 매우 높은 편.
대신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편이라 자칫하면 냉담한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음.
예를 들면 서로의 식사는 각자가 해결하는 편.
평생을 일을 해온 엄마라 엄마에게 식사준비나 설거지가 몰빵되어 있지 않고, 식사시간이 겹치질 않아 각자 배달을 해먹든, 집에 있는 밑반찬으로 해결하든, 라면을 끓여 먹든 각자 알아서 먹음.
가족행사가 있어도 누구 하나 빠지겠다고 하면 쿨하게 ㅇㅋ 하고 네 갈길 가라. 신경 안쓰는 편.
그리고 내가 친정을 방문할때면 딸때문이라도 엄마, 아빠는 휴가를 맞춰 쓰고, 같이 외식을 하든, 할머니네를 방문하든, 팔땡이를 위해 놀이할 만한 곳을 찾게 되는데 그러한 이슈들로 (어쩔 수 없더라도) 정서적 교류가 생기는 편인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이슈들로 끌려나온 엄빠는 막상 상황이 만들어지자 나와, 팔땡이와, 그리고 그 둘도 나름 정서적 교류가 활발해졌고, 특히 아빠와 팔땡이와의 정서적 교류가 꽤나 많았다.
나는 아빠를 안좋게만 봐왔다.
사는 내내,
엄마의 영향이 컸겠지만 어쨋든 아빠는 좋은 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인줄 알고 컸는데 팔땡이를 대하는 아빨 보면서 울 아빠 참 좋은 사람이네? 하는 자각타임을 점점 가지게 된다.
음.. 어쩌면 엄마보다 아빠가 나랑 더 잘 놀아줬던것 같기도 하고...
귀찮아 안나가고 싶어하는 아빠에게 예전같았으면 그러던지~ 하고 그냥 팔땡이와 둘이 나가 놀았을텐데, 이상하게 아빠를 끌고 나가고 싶었고 아빠와 팔땡이와 나 셋이서 영화관, 서점, 오락실, 물놀이터 많은 곳을 다니게 됐다.
아빠 역시 노래하는걸 좋아해서 마이크 한번 잡으면 절대 안놓는 사람인데, 팔땡이가 계속해서 부를 수 있도록 배려하고 내가 부르라고 해도 아빠는 한사코 거절하며 팔땡이 노래에 손뼉치고 반응했다.
서점에 가서도 책고르는데 한참인 팔땡이를 묵묵히 쫓아다니며 기다려주고,
영화관에 가서도 아이위주의 에니메이션을 보느라 재미없을텐데도 꾸벅꾸벅 졸며 끝까지 함께 봐주고, (애초에 에니메이션인데도 함께 보러 가주겠다는 얘기에 놀람)
물놀이터에서는 팔땡이 눈높이에 맞춰 너무나 잘 놀아주는 바람에 아이는 나보다 할아버지를 훨씬 더 많이 찾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아빠의 좋은 모습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이면 나랑 동생을 데리고 집 뒷편 초등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놀이기구들을 타고, 잠자리도 같이 잡고, 뛰어 놀던 아빠.
오토바이 뒷편에 날 태우고 신나게 달리던 아빠.
날이 추웠던 어느날,
아빠가 예쁜 주황색 털삔을 사들고 왔는데 아빠한테 선물을 자주 받을 수 있던게 아닌지라 엄마가 사준 삔들은 여기저기 발에 치이게 방치해놓고는 아빠가 사준 그 삔은 고이고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아끼던 나.
눈오는 아침이면 나와 동생을 깨워 데리고 나가서는 신나게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썰매도 끌어주던 아빠.
내가 심하게 다리를 다쳤던 어느 날,
회사에서 만사 제치고 달려와 엄청 걱정하던 아빠.
키가 컸던 나는 성장통으로 새벽마다 고생을 했고, 그때마다 자다깨어 달려나와 밤새 내 다리를 주무르며 짜증 한번 없이 나를 돌보던 아빠.
(아이를 키워보니 자다 깨서 아이를 케어한다는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종종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던 아빠에게 어린 나는 엄지척을 날렸고, 그런 날 보며 행복해하던 아빠.
동물원이며, 놀이공원이며,
날 데리고 참 많이도 돌아다니던 아빠.
아빠도 분명 우릴 사랑했고 아꼈고 함께 해주었는데,
엄마가 없는 저녁이면 아빠품에서 불안을 진정시키곤 했는데,
아빠를 비난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좋았던 기억은 감쪽같이 잊고 그 말에 세뇌되어 엄마가 바라보는 색안경을, 내가 그대로 쓰고서 아빠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었다.
아빠의 팔땡이를 향한 꾸밈없는 애정에
잊었던 그 기억들이 정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떠올라 버렸고,
난 다시 한번 속상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울컥해버린다.
팔땡이와 놀아주는 아빠는, 팔땡이에게서 어린 시절 수빈이를 보고 있을까.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를 보는 나는, 팔땡이에게서 어린 시절 나를 보곤 한다.
그리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내가 아빠와 어떤 방해도, 판단도, 시선도 없이 순수하게 아빠의 애정을 받으며 놀고 있는 나를 제 3자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으로,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듯 아이와 아빠의 놀이를 지켜보곤 한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나는 알수없는 수많은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마치 아빠와 나의 30년의 세월이 그냥 날아가버린 듯한 허무한 느낌.
손으로 잡고 싶지만, 구름처럼, 연기처럼 허무하게 살아져 버리는 느낌.
그리고 아빠는 그 세월들을,
본인을 계속해서 비난하고 무시해온 나를,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죄책.
아빠가 얼마나 상처받아왔을까에 대한 속상함.
내깟게 뭐라고 지금껏 아빠를 감히 판단해 왔을까.
실수할 수 있었을텐데.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아빠도 인간이기에,
잘 몰라서 실수할 수 있었을텐데,
감히 아빠를, 내 부모를 판단해왔다.
나 역시 실수를 반복하고,
아이에게 상처주면서.
아빠, 미안해.
차마 앞에서 말할 용기도 없어
혼자 끄적여보는 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