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

by 김수빈

나는 종종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의심하곤 했다.
사람들을 나보다 못한, 낮은 위치에 두려 하고, 그들 위에 서려는 욕구가 있었다.
물론 진짜 성격장애들은 본인이 성격장애일지 의심조차 않는다.

예전엔 내가 인정욕이 있는지 몰랐다.
나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 할 말 다하고, 내 하고 싶은 행동 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타인의 눈에 비춰지는 내 모습은 딱히 중요치 않다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자기성찰을 해가며 느낀다.
나는 인정욕이 상당했다.
우월감이 상당했다.

SNS를 열심히 활동한 것에도 이러한 인정욕이 작용했던것 같다.
엄마표 놀이를 열심히 올리고,
육아서적을 읽고는 열심히 리뷰를 쓰곤 했다.
아이에게 매일 새로운 국과 반찬을 차려내며 인스타에 올리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 산 책들과, 아이를 위해 간 여행을 열심히 기록하곤 했다.

당시엔 그저 외향적인 나니까,
나를 드러내길 좋아하는 나니까,
그러한 특성에 열심히 SNS를 하는거라 생각했다.

물론 일부는 맞다.
나는 좋은 것만 내비추지 않는다.
내게 있어 부정적 사건도, 부정적 감정도 SNS에 내비추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엄마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노력하는 엄마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날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엄마들에게 그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위안을 삼기도 했던것 같다.

상담공부를 하며 완전히 사라졌지만,
나는 꽤나 허세부리길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명품을 사면 자랑해야 했고,
집을 사면 자랑해야 했다.
내 집값이 치솟으면 은근히 알려야 했고,
내 새끼가 한글을 스스로 떼었을땐 대놓고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팩트인데 뭐?
라고 하기엔 자랑이 과했다.
하지 않아도 될 자랑을 하다보니
스스로도 허세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얼마나 자랑할게 없었으면,
얼마나 내게 자신이 없었으면,
나는 나의 사소한 하나하나를
SNS에 올리며 자랑했어야 했을까.

타인들이 날보며 자신은 이만큼 못해주어
못난 엄마라 자책할때면,
자신은 남편에게 매끼니 새밥상을 못차려낸다 한탄할때면,
집값이 오른 날 보며 부러워할때면
나는 우월감을 느끼고,
그들보다 높은 위치에라도 있는 양
우쭐해지곤 했다.

반대로 타인이 나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으면
나는 배가 아팠다.
나보다 더 비싼 집에 살면 배가 아팠고,
나보다 더 좋은 가방을 들면 배가 아팠다.
내 새끼보다 네 새끼가 더 빠르면 배가 아팠다.

그랬다. 나는 인정욕이 상당했다.


나는 누군가가 내게 가르치려 드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래서 시댁이 불편했던것 같다.

내 육아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시댁이 불편했다.
아이가 아프면 매실액을 먹여라, 꿀물을 타줘라, 입원을 해라
일일히 참견하는 시댁이 탐탁찮았다.
네네 하면 될 것을 꼭
"병원에서 매실액 함부로 먹이지 말라는데요."
"봐서 결정할게요."
라며 시댁의 요구에 쉬이 응한적이 없었다.

시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지인들이 내 아이가 예민하다 할때에도
"아닌데? 안예민한데?"
인정하지 못했고
내 아이가 아플때 내 스케쥴에 쫓아다니다 힘들어 면역이 떨어져 아픈거 같다는 지인들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 맞는 말들이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늘 시댁에 전화해 "요즘 살모넬라균이 유행이래요. 계란 조심하세요.식초에 세척해서 드세요." 라고 말했다.
나였다면 또 쉽게 수긍하지 않고 그런거 다 따지면 뭘 먹고 사니 어쩌니 하고 있을텐데 어머님은 바로 수용하셨다.
"그래? 식초에 세척해서 먹어야 겠다 그래. 마트용 계란으로 사먹을까?"

타인들의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요즘 난 깜짝 놀라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타인의 말에 수긍하고 수용하고 인정하는구나.

왜 나는 쉽게 타인의 말을 인정하지 못하고 수긍하지 못하는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타인의 우위에 있고 싶어했던것 같다.

타인을 통제해야 하고,
내 맘대로 상황을 조종해야 하고,
타인의 우위에서,
타인이 내게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공부를 하며 나의 오만함을 자각하게 되면서
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함을 깨닫고,
또 인간은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깨닫고서야
우월감을 추구하려는 욕심과
인정받기 위한 허세가 사라지고 있다.

요즘도 나는 SNS를 활발히 하고 있다.
종종 인정욕이 섞여 있을 때도 있다.
여전히 타인들의 관심이 좋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과도한 인정욕은 사라진것 같다.
타인들과 수다를 떨때면 더이상 집값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더이상 좋은 엄마 코스프레를 하지 않는다.
더이상 그러하지 못한 그들에게 박탈감을 느낄 만한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

더이상 허세부리지 않고 자만하지 않는다.

내면을 꽉 채우고 나니
더이상 인정욕도, 물욕도, 우월감 추구도 중요치않게 되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니 조금씩 그러한 욕구들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물론 아직 백프로 벗어난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내면을 채워가면서 그만큼 더 성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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