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디김 Aug 30. 2023

투잡도 부족해 N잡의 일상

#04. G90을 타는 운전기사

제이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우선 본업은 건축자재유통업이다. 우리의 건축자재 일은 나름 순항하고 있다.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이 한 가지 업으로 4 가족이 먹고 살기에는 많이 넉넉하진 않으나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미숙했던 날들의 사업실패로 인한 빚이 꽤 많이 쌓여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양의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벌이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고, 적당한 것을 실천하고 있다. 우선 메인인 건축자재 일을 주축으로 주로 제이가 영업을 하고 나는 영업 외의 서류 작업과 사무업무를 본다. 이때도 저녁에는 알바로 배달이나 대리운전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준형이 제이에게 대기업 운전기사 일을 소개해준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전담운전기사는 운전을 해주고 쉬는 시간이 중간중간 있으니 그 중간중간을 이용해, 또 자유로운 나를 이용해 건축자재 일을 하면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니 수입이 2배가 될 수 있겠다. 우리는 바로 착수했다. 이 시스템은 비수기인 겨울과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의 건축자재 일의 수요가 적을 때를 알맞게 방어해 주었다. 


대신 건축업계의 성수기와 골프시즌인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면 제이는 매우 바빠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동료 운전기사들은 휴게실에서 안마의자에 앉아있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제이는 사람이 없는 구석을 찾아들어간다. 그곳에서 운전을 하는 도중에 걸려온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금세 나가 미니 벽돌 같은 급속 충전기를 들고 다녔다. 주로 밝을 때 하는 건자재 일과 운전기사 일 외에 밤의 업무가 따로 있다. 대리기사도 종종 하고 있고, 어두울 때 하는 사업 아이템이 하나 더 있기는 한데 그것은 또 차차 얘기하도록 하겠다.


어찌 됐건 지금 낮과 밤, 주말에 모두 하는 일이 있고, 이 이들을 어딘가에서 한번 꼬이게 되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그렇기에 제이와 나는 어느 영화 속의 환상의 콤비가 그 유쾌한 합을 자랑하며 악당을 물리쳐 나가듯, 또는 11명의 선수가 각자의 포지션의 성실성을 지키며 자신의 모든 수분을 그라운드에 쏟아내면서 간절한 한 골을 터트려 내듯 최상의 팀플레이가 필요했다. 그렇게 잘 맞추어진 우리의 밥벌이와 가정일의 톱니바퀴가 엇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절제와 주의가 요구된다. 가령 주말이나 휴일에 남들처럼 가족이 여가를 즐기거나 저녁에 남편이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들이 일상이 되어도 불평을 내놓아 부정적인 기운이 우리를 감싸지 않도록, 그런 부재들에 초연함이 필요하다. 남들 놀 때 놀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만족과 평화, 나름의 기쁨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일도 처음에는 어렵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어느 정도 지속하면 어렵지 않아 지고 리듬감마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리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건강문제였다. 제이는 피로가 점점 누적되어 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몸에 심긴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 03화 의외로 걷는 문제인 대리기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