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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Aug 28. 2023

의외로 걷는 문제인 대리기사

#03. G90을 타는 운전기사

이제 오토바이를 처분해야겠다, 제이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오토바이는 기동성 면에서는 배달에 최적화된 운송수단이지만 혹독한 겨울의 찬바람과 폭우를 만나게 되면 그를 보내는 나는 걱정을 넘어 우울의 경지에 이르기에 처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오토바이를 처분하기 전에 제이는 미리 다른 일을 생각해 두었다. 대리운전이다. 대리운전도 요즘에는 앱으로 관리를 하여서 콜을 잡거나 정산면에서 꽤나 편리하다. 제이는 이미 배달을 하며 이런 종류의 앱 사용은 익숙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달리는 와중에 동선을 파악하며 콜 버튼을 누르는 오토바이배달에 비해 얼마나 안전한가.


제이는 종종 나와 데이트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쿠팡 잇츠를 활용했다. 쿠팡 잇츠는 원하는 배달 건만 잡으면 되므로 여러 배달 건을 동시에 잡아 분초가 시급한 오토바이보다 훨씬 느긋한 배달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동차로 '누군가'와 함께 할 수도 있다. 그 '누군가'인 '나'와 드라이브를 가장한 알바를 하는 동안 다양한 종류의 음식물의 향기가 코 속으로 들어온다. 차 안은 따뜻한 음식의 온기와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들로 끊임없이 새롭게 채워진다. 


이제는 음식들이 아니라 사람이다. 새벽부터 영감을 태우거나 밤늦게 술에 취한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으로 옮겨주는 목적물이 바뀐 것.     


이번에는 외롭지 않게 '대리기사 메이트'도 있다. 제이를 수행기사와 대리운전의 세계로 안내해 준 준형과는 누가 더 피곤하게 사는가를 겨룰 정도로 가장으로서 밤과 낮, 주말과 휴일의 경계 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에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아 금세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대리운전은 기본적으로 차주의 차로 운전을 해주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새로운 콜을 잡아 돌아오는 구조다. 그런데 목적지가 외딴곳으로 대리운전의 수요가 많지 않은 곳이면 좀 더 콜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이 또한 배달 오토바이와 마찬가지로 추위와 비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날씨는 누군가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므로 날씨가 어쨌든 간에 걸어야 한다. 제이는 중앙아시아의 어느 유목민을 떠올린다. 차를 탈 때는 지척이었던 거리가 끝도 없는 몽골의 평원처럼 느껴졌다. 콜이라는 목초지를 발견할 때까지 걸어야 하는 것이다.

덕분에 초반에는 살도 많이 빠졌다. 단점은 과도하게 걸은 탓에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녹초가 되어 다음날 일어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더구나 새벽출근을 해야 했기에 알람을 듣지 못하고 허겁지겁 일어나는 날에는 세수도 양치도, ‘세면’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야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문명인으로서 이래서는 아니 될 말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이는 2인 1조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 팀플레이는 한 명이 차를 가지고 뒤따라 가서 끝나면 바로 픽업을 하는 방식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은 둘로 나뉘어 수입은 적어진다. 하지만 피곤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외로움도 덜하여 몽골의 평야 따윈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생각지 못한 재미를 얻게 되기도 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뜨거운 전우애와 같은 것도 생겨난다. 안 하던 짓도 하게 된다.  혼자 있을 때는 먹는 행위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차’라는 아지트이자 작전지휘소 같은 것이 생기자 제이와 준혁은 컵라면이나 귤, 빵과 같은 간식을 챙겨 먹을 수 있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다.


한 번은 저녁을 먹지 못하고 만났기에 첫 번째 콜을 끝내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기로 하였다. 편의점에 들어가 그들은 사이좋게 사리곰탕면을 골랐다. 취향마저 비슷한 것을 보고 흐뭇해하며 물을 붓고 곧이어 맛볼 뽀얀 국물의 환상의 MSG맛을 기대하며 소소한 행복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그 찰나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이 콜’이 떴다. 매력적인 콜이란 거리에 비해 콜비가 비싼 콜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똥콜’도 있는데 똥콜이란 당연히 거리에 비해 금액이 너무 낮은 콜이다. 지금 매력적인 콜이 떴고 이것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 이미 사리곰탕면에 물을 부어 면은 뚜껑 아래서 먹기 좋게 부풀고 있지만 그들은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됐다. 돈을 벌러 나왔으면 본업에 충실해야 하는 법, 그렇다고 사리곰탕면도 포기할 수 없다. 


콜을 잡자마자 준혁은 쏜 화살처럼 운전대를 향해 튕겨져 나갔다. 제이는 양손에 뜨거운 물이 담긴 컵라면을 들고 상체는 고정시킨 채로 빠른 발로 가속도를 냈다. 사리곰탕면을 든 한 마리의 우아한 백조가 되어 그들만의 작전 지휘소로 돌아왔다. 이어 보조석 바닥에 깨지기 쉬운 유리 다루듯 사리곰탕면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커피를 담는 캐리어 같은 고정 장치는 따로 없었기에 그저 뽀얀 국물이 넘치지 않기를 바라며 수평하게 놓을 뿐 다른 방도는 없었다. 


제이는 균열이 가는 아이스로드 위를 운행하는 자동차를 운전하듯 아주 조심스레 액셀을 밟았다. 뜨거운 물의 일렁임이 결코 컵라면의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그것이 오늘 제이의 가장 큰 과업이다. 식은땀 나는 사리곰탕 수행을 마치니 많은 사람을 태워봤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긴장하며 운전을 하게 한 존재는 없다고 제이는 생각했다. 사리곰탕면이 비범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번의 콜을 뛰고 맛볼 줄 알았던 사리곰탕면은 매력적인 콜이 연이어 3번이나 터진 덕에 훨씬 뒤에나 맛볼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매력 터지는 날이다.


긴 시간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준형과 마주했다. 준형은 신줏단지 모시듯 안전하게 모셔온 사리곰탕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둘의 머릿속을 내내 지배했던 그 비범한 컵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역시나 용기를 넘칠 정도로 퉁퉁 불어있는 면은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쳐나올 기세였다. 지금껏 이토록 과감하게 불은면은 처음 보았다. 배가 고팠던 그들은 고민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퉁퉁 불은면과 식을 데로 식은 국물의 라면 맛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無) 맛에 가까웠다. 그러나 용기의 경계까지 가득 차 있던 면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웃음을 멈출 수 없었기에 웃음이라는 맛있는 반찬을 얻었다 생각했다.


궁상맞은 일도 누군가와 함께 하니 추억이 되는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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