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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Sep 01. 2023

그가 없는 날에

#06. G90을 타는 운전기사

이런 제이의 부재는 얼마간 나를 힘들게 했다. 남편이 거의 없음에서 오는 불편함과 힘듬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것이 나 혼자는 해결할 수 없는 외부인과 연결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것은 이미 오래전 내려놓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모임, 친구모임 등 어떠한 모임의 형태든 가지 못한다고 말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진 것은 여전히 곤란한 일이었다. 그럴  제이가 N잡으로 운전을 하고 있어, 라든지 그런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으므로 만남의 때마다 나는 창의성을 발휘해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찾아야 했다. 실제 이렇게 해서 정기적으로 모였던 모임들이 깨지기도 하면서 나는 점점 위축이 되었다.


얼마간의 생기 없는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나는 쌍둥이들을 정말 친구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쌍둥이들이 생후 100일이 되고부터 삶의 가세라고 해야 할까. 경제적 상황이 나빠졌고 그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삶의 고립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은 우리 넷 만의 시간이었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리적으로는 나와 쌍둥이 셋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제이가 최전선에서 전투를 열심히 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그를 엄호하면서 내가 지켜야 할 두 생명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이 전투의 불안함이 티 없는 두 생명체에게 전달되지 않게 하려고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덕분에 해가 져도 몸의 세포들은 이완되지 않고 정신의 긴장 또한 유지되어 불면의 시간들을 가지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이 고립과 분투의 시간들을 나는 쌍둥이들과 외롭지 않게 제법 잘 채워나갔다. 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살았노라고 얘기하지만 돌아보니 아이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육아라는 힘든 육체노동에 빠져(나에게 쌍둥이 육아는 육체노동이었다) 더 큰 삶의 문제를 잊게 해 주었고 엄마로서 느끼는 자식이 주는 기쁨도 맛보게 해 주었다. 조금 더 자라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는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자식은 삶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자식으로 인해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자식으로 인해 해낼 수밖에 없는 일 또한 많은 듯하다.      


다시 돌아와서, 제이의 부재가 잦은 날에도 나에게는 두 명의 근사한 아들이 있으니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할 이 시간들을 소중히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제이의 부재를 생각하며 아빠와 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아이들의 필요를 찾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의 에너지를 분출해 주기 위해서, 경험과 추억이라는 것을 만들어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박물관, 도서관, 수영장, 운동장이나 공원, 등산 등 대부분 활동량 많은 남자아이들에 맞춰 다소의 체력이 필요한 곳들이다. 다행스레 나에게는 체력과 승부욕이라는 남자아이들에 적합한 에너지가 있으니 아직까지 그런 일들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제 제이가 없어도 자연스레 셋의 주말 일정을 짜고 날씨가 좋으면 두 아이를 데리고 트렁크에 돗자리와 여러 종류의 공들, 아이들의 잡동사니(장난감 총, 군인 모자 등)를 집어넣고 운전대를 잡는다. 생존수영이 최악이라는 아이들에게 판을 사서 호흡법, 기초 발차기 등 수영도 알려주고, 축구선수가 꿈인 시즌(아이들 꿈의 변화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에는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함께 태양 아래에 섰다. 가벼운 등산코스도 도전하여 등산보다는 역시 파전이라는 인생의 진리도 알려주었다.


그러는 사이, 물에 코도 박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제 함께 잠수하여 물속에서 손하트 날리기를 좋아하고 손흥민, 네이마르, 메시를 외치며 아빠와 함께 유럽리그에 열광하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느 사내아이들이 되어갔다.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에너지 넘치는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일상을 지내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음을 찾아보는 것.  


화창한 주말, 혹은 대부분 집으로 귀가하여 휴식을 취하는 늦은 밤, 제이의 영감이 술에 취해있을 동안에 차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그를 생각한다. 그럴 때면 나는 더욱 일상의 성실함을 찾으려 노력했다. 아이들과 함께 숙제를 하고 학업 준비를 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제이가 쉼 없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여유라는 것은 결코 허락되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아빠가 저녁에도 주말에도 일하고 있는데 우리가 티브이나 보며 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모두 각자의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성실히 하다 보면 서로를 더욱 많이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렇기에 나는 제이와 만날 날을 기대한다. 해가 저물어 가는 주말의 늦은 오후가 속히 오길, 제이와 만날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린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장거리연애를 하는 느낌으로.


주로 저녁 늦게 오고 새벽같이 나가는 그의 존재를 쌓여가는 그의 빨래더미로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빨래로 증명이라도 하듯 통돌이 세탁기 위에 자신의 빨래를 가지런히 눕혀 놓고 간다.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지 않고 항상 가지런히 눕혀놓은 그런 모습이다. 가지런히 누워있는 티와 바지, 그러면 나는 더 정성스레 빨래를 돌려 다림질까지 해 주고 싶다. 빨래는 우리 둘의 어떤 수신호와 같은 느낌이다. 열심히 일했노라, 잘 살아있구나, 이 부분은 깨끗하게 한 번의 손이 더 갈 필요가 있겠군, 다림질이 필요한 옷이군,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반듯하게 접힌 옷을 펼쳐 입을 때 그의 마음이 이 가지런한 옷처럼 주름 없이 상쾌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살고 있지만 같이 살지 않는 듯, 그렇게 스치듯 살아가다 드디어 식탁에 마주 앉아 얘기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일들을 몰아서 얘기한다. 아이들이 그새 얼마나 성장했는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얼마나 깊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등 제이에게 낱낱이 알려준다. 그럴 때마다 피곤한 제이의 얼굴에 깊은 기쁨과 안도가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바로 그 얼굴을 보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힘이 들겠지만 삶은 바로 가고 있어, 당신의 시간은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순풍을 만난 쾌속선처럼 가야 할 그 그곳으로 순항하고 있어. 성실하고 믿음직한 선장과 그를 믿고 가는 실행력 좋은 1등 항해사가 있기에.    


등산을 가서 2호는 하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찍을 만한 것은 도저히 없어 보였는데 나름 예술가인 2호의 눈에는 예쁜 하늘이 보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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