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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Sep 01. 2023

G90에 건축자재를 싣고

#07. G90을 타는 운전기사

오늘밤에 이 자재를 현장에 가져다주어야 한다. 화물차를 부르기는 너무 아까운 분량과 거리이다. 3M가량의 늘씬한 키를 자랑하는 이 길고 날카로운 철제물질은 내일 오전 당장 필요하다는 주문에 의해 오늘밤 현장으로 이동되어야 한다. 큰 업체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주문이지만 우리는 거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다. 제이는 회식까지 있어 밤 10시쯤 집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으로 이 길쭉한 물체를 고급승용차에 어떻게 싣을까 고민하고 있다. 


제이와 나에게는 중고로 구입한 두 대의 차가 있었으나 두 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수명을 다했다. 내가 끌고 다녔던 초기 하이브리드 아반떼는 주행도중 몇 번이고 길에 그대로 멈추어 서서 당연한 귀가를 감사의 귀가로 바꾸기도 했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뒷 좌석에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운전을 하던 나는 식은땀과 함께 심장이 거의 멎을 뻔했다. 차가 사망하기 직전 즈음에는 그 고물 차를 탈 생각만 하면 공포증이 일어나 머리칼이 설 지경이었다. 차의 사망을 직감한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기도를 하고 차에 타는 경건함까지 가지게 되었다. 

제이가 타고 다니던 역시나 초기 하이브리드 소나타는 조금 더 과감하게 마지막을 맞았다. 명절에 고향에 가는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현대식 차에서는 녹이 슬어버린 오래된 중장비에서나 날법한 커다랗고 둔탁한 소리가 연신 쾅쾅~ 소리를 내며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고속도로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 옆의 차에도 다 들릴 것 같았다. 과연 우리는 고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그전에 영화 속 장면처럼 이대로 폭발하는 건 아닐까?, 가는 내내 나는 머릿속으로 여러 편의 스펙터클한 영화를 찍었지만 제이는 뭐 큰 문제 아닐 거라고, 도착해서 살펴보자고 태연하게 응답했다. 고향집에 도착해서 동네의 정비 아저씨께서 살펴보시더니 이 차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 고쳐서 타고 갈 정도가 아니다, 당장 처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살아서 온 것이 기적이라는 것. 


나는 사람들이 갑작스레, 그것도 너무 쉽게 죽어나가는 소식을 주변에서 혹은 뉴스를 통해 들을 때마다 사람이 죽는 것이 너무도 쉽고, 그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런 죽음을 피해나가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종종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와 제이의 아버지가 한 달 차를 두고 돌아가시는 것을 경험하고는 더욱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볼 때 꼭 비상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평소에 갈고닦은 달리기 실력을 이용해 신속하게 탈출하는 상상을 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특별히 같이 간 사람이 있다면 머릿속으로 손을 꼭 잡고 내가 본 그 비상구의 경로대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탈출에 성공하는 긴박한 상상을 더하곤 한다. 재난영화를 많이 본 탓도 있겠다.


어찌 됐건 우리의 목숨을 위협했던 두 대의 중고차가 같이 시기에 사망하는 바람에 우리는 잠시 경차를 렌트해서 사용했다. 이 키다리 철제물건은 도저히 들어가지 않는 귀여운 사이즈의 차였다. 그렇기에 미안하지만 그 멋들어진 차를 잠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떻게 싣을까 생각을 마친 제이는 목장갑과 함께 빨래더미에서 여러 장의 쭈글 어진 수건을 집어 들었다. 이를 보고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제이의 몸이 무거워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는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우리 같이 갈까?,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으며 데이트하듯 다녀오자, 나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보고자 목소리를 밝게 하며 동행을 제안했다. 제이는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에 단번에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 분위기 전환에는 먹는 것만큼 단순하고도 빠른 것이 없다. 아이들을 서둘러 재우고 동행하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날카로운 양 쪽 끝을 목장갑으로 모자 씌우듯 곱게 씌워주고 트렁크 부분과 뒷자리를 연결해 주는 통로를 열었다. 그러면 이 기다란 물체는 트렁크에서 출발하여 뒷자리를 통과하여 앞의 보조석으로 뻗어질 수 있다. 보조석 앞부분의 대시보드 앞까지 뻗어 놓고 아래에 수건을 깔아 대시보드를 보호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앞 유리창까지 닿아 날카로운 흉터를 남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 옆으로 보조석에 앉은 나의 얼굴이 닿을 듯 아슬아슬하다. 

차 안은 제이와 나, 그 사이를 이 차가운 철제 물질이 가로지르면 기이한 모습이다. 철제물질을 나의 왼쪽 뺨 옆에 두고 나는 유리창 아래를 주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속도변화와 방향전환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 상태 그대로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주의를 기울여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제이의 피곤함을 조금은 쫓아내기를 바라며. 

자정을 넘어선 시간, 도시는 어둠뿐 익숙한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헤드라이트만이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마치 내가 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처럼. 


일급비밀이지만 이 잘생긴 고급 차를 이용해 자재를 꽤나 날랐다. 그러나 결코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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