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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Sep 20. 2023

척척박사 운전기사, 그가 유일하게 몰랐던 것

#11. G90을 타는 운전기사 

기사대기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식사를 하는 식당에서나 대기실에서나 기사들은 모이면 구조조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실적이 좋지 않은 반도체 분야에서 대규모 축소작업이 시작되었다. 고위 임원을 제외하고는 전담기사도 대폭 줄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상무이사 이하 급의 전담기사들은 모두 해체시키고 필요에 따라 업무기사를 쓰라는 것. 전담기사가 없어진다는 것은 회식과 주말 골프 등 임원들의 개인 복지를 대폭 줄이겠다는 뜻으로 회사 전체적으로 올해는 성과급이 없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시카고는 이미 그만둘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제이도 자신이 담당하는 임원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정해진다. 제이의 영감은 그 기준선의 경계선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임원들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며 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옆에 앉은 시카고에 이어 일명 ‘척척박사 기사’ 형님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세상에 모르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만가지에 대해 알고 있다. 소문으로 듣던 임원들의 성격을 비롯해 운전기사 수행에 관한 팁은 물론이거니와 각 골프장의 특징, 운전기사에게 중요한 골프장 옆 맛집까지. 그래서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 척척박사 기사를 호출한다. 


"형님, **지역의 **식당 아세요? 우리 영감이 그곳에서 회식을 하는데 제가 어디서 식사를 하면 될까요?"


"거기 임원들이 가끔 가는 곳인데, 분위기가 좋아서 임원들이 회식하면 꽤 오래 있어. 그러니까 너는 영감을 내려주고 우선 오른쪽으로 가. 가다 보면 큰 골목이 보일 거야. 그 골목 안에 맛집들이 줄지어 있는데 초입에서 50보쯤 걷다 보면 **고기. 거기로 가서 저녁을 먹으면 돼. 거기 **이 메인 메뉴인데, 딴 거 보지 말고 그거 먹고, 자리도 1인석이 많아서 천천히 식사하고 시간 때우기도 좋아." 


운전기사들에게 주변 맛집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기다림이 업(業)이라 할 수 있는 운전기사들에게 '맛있는 식사'란 그 기다림의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경감시켜 준다. 

어찌 됐건 기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근처 맛집뿐만 아니라 회사 동향에 대해서도 빠삭한 그는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는지 입을 열었다. 


“우리 영감은 이번에 괜찮을 거 같아. 전담 운전기사도 그대로 유지될 거야." 


그러나 그의 영감은 상무이사급으로 이번 정리의 대상에 딱 포함된다. 그의 말에 제이와 시카고를 비롯하여 동료들은 속으로 ‘그럴 리가’,라고 생각했으나 그가 너무 확신에 차 있기에 ‘그럴 수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 후 운명의 날이다. 


안타깝게도 척척박사 형님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많은 수의 전담기사들이 업무기사로 전환되었고, 재계약을 기대하고 있던 기사들은 더 이상 연장되지 않고 그대로 잘려 나갔다. 시카고도 전담기사에서 업무기사로 전환되었다. 자존심이 센 그는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업무기사 따윈 하지 않겠다고 제 발로 나갔다. 


제이 역시 업무기사로 가게 되었으나 그는 불평 없이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애초에 사이드 잡으로 하는 것이기에 제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든지 크게 게이치 않았다. 다만 낮에 여기저기 필요에 따라 불려 다니니 본업인 건자재 일에 지장이 가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이가 업무기사로 배정되자 불편한 심기를 보이는 것은 제이의 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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