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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Sep 22. 2023

가득 찬 컨테이너를 꿈꾸며

#13. G90을 타는 운전기사

제이는 영감의 담당기사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부업시작하며 건축사업이 위축 되지 않을까 걱정 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단골업체가 된 큰 업체도 몇몇 생겼고, 입소문을 타고 신규주문도 계속 들어왔다. 우리는 아파트에 사업자를 내고 거실 책상에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거래처가 많아지고 사업이 확장되다 보니 반품이나 샘플로 가지고 있던 자재의 양이 많아져 더 이상 집안이나 아파트 구석구석에 숨겨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즈음 이사도 하게 되어 이 물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을 하다가 이사 갈 곳 주변에 사무실을 몇 곳 알아보았다. 그런데 창고를 포함한 넓은 공간이 필요한 우리에게 반짝이는 새 사무실은 적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창고를 임대하여 자재들을 보관하기로 했다.


여러 창고를 알아보는 도중 김건모를 쏙 빼닮은 까만 피부와 아담한 체구의 컨테이너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분은 굉장히, 말이 많은 분이셨다. 어떻게 얘기가 흘러간 건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자기 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하셨다고 하며 도자기 얘기를 시작하셨다. 제이와 나는 창고를 계약하는 날 '도자기의 종류'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국사 시간에 고려청자, 조선백자에 대해 들어본 이후, 그렇게 긴 시간 도자기에 대해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박물관도 잘 가지 않는 우리에게 참으로 생경한 일이었다. 커피를 내어주시던 인자한 미소의 사모님은 사장님이 얘기를 시작하자 급히 자취를 감추셨다. 옆에서는 분명히 듣고 있지 않을 제이의 킥킥거리는 주파수가 잡혔지만 나는 모르는 척 참으로 열심히 듣고 호응했다. 이래 봬도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과 대화를 재미있게 이어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직감했다. 이분에게는 꼭 필요한 질문 외에는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수입용 컨테이너 창고의 계약을 마치고 화물차를 불러 물건을 옮겨 넣었다. 화물차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우리 둘은 컨테이너 앞에 섰다. 그리고 제이가 말했다.


"우리도 이 수입용 컨테이너 가득 물건을 수입해 오는 날이 올 거야."


이제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전에는 거대한 파도를 만나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던 배가 이제는 순풍을 만났는지, 아니면 우리의 항해술이 조금은 발전했는지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혼자였다면 거친 바람의 저항에 배의 핸들을 놓쳐버리고 그저 망망대해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배의 핸들을 놓치면 제이가 다시 잡아주고, 그가 놓치면 내가 다시 핸들을 잡으며 둘이 호흡을 맞춰 핸들을 영영 놓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불안으로 잠을 잘 수도, 그래서 꿈조차 꿀 수 없던 시기를 지나 하늘인지, 검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고 꿈을 꾼다. 지금처럼 제이와 함께라면 나는 그곳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두 명의 똘똘한 선원도 있다. 이 두 명의 선원은 정말 잘 자라고 있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되길, 그래서 나는 나의 앞길 만을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면 이 두 명의 선원은 남을 위한 어른, 좋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창고를 마련하고 우리는 이사를 갔다. 우연인지 우리가 당첨된 집은 실패와 함께 우리가 떠나온 집과 호수가 같았다. 나는 처음 몇 년 동안, 쫓기듯 떠나 온 그 집에 그렇게도 돌아가고 싶어 했다. 현실이 비현실로 느껴졌고 그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 같은 부질 없는 생각들로 잠을 몰아내었다. 내가 집착하던 그때는 멀리 달아나더니 긴 시간이 흘러 생각도 흐릿해진 지금 나는 다시 그  앞에 서 있다. 그런데 이 또한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잔금과 대출의 문제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출의 여러 절차와 빠뜻하고도 긴박하게 잔금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사무소에서 '입주증'을 받아 들었다. 입주증을 받기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 '작은 쪽지'를 받아 들고 나서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날씨였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렸고 눈이 뜨거웠다.


제이는 곧 운전기사 계약을 마치고 사업에 매진할 것이다. 우리는 그 전력의 때를 위해 몇 년간 서로를 많이 보지 못하고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갔다. 분명 이 모든 시간은 우리에게 필요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여유 부리지 않고 성실히 살아간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좀 더 담담해졌고,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법을 배웠다. 살을 에일 듯한 추위가 와도 서로를 보듬어 줄 누군가가 있다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새싹이 돋아난다는 불변의 진리도 새삼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은 견디기만 해도 맞이할 수 있는 축복이다. 무엇 하나 성취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나는 이제 대단한 무언가가 되려 하기보다 견디는 것에 초첨을 뒀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조금은 쉬워진다. 이기기보다 견디는 것은 훨씬 수월하지 않은가. 다소 수동적이게 보일 수 있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렇기에 견디기만 해도 승률을 올릴 수 있다. 주의 할 것은 너무 열심히 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골인지점에 집착해 처음부터 속도를 내다보면 뜻 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페이스와 순위라든지 외부 상황에 실망해 되려 쉽게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저 나에게 집중하고 다리가 조금 삐걱거리면 걷듯 달리기도 하며 자신과 대화하듯 달려나가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지속하다보면 주위의 사람이 확실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레 전력의 때가 오고 후에는 승자가 되어 있을 가능성도 다.


이런 맥락으로 나는 단거리 달리기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장거리 마라톤에는 약간의 자신이 있다. 적절히 체력을 안배하고 호흡을 조절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은 순간의 폭발하는 순발력과 스피드를 요하는 단거리 달리기보다 나에게는 그나마 해볼 만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거리 달리기는 재능의 요소가 더 필요한 단거리 달리기보다 훈련을 통한다면 얼마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종류의 일은 있을 것이다.


제이를 처음 만났을 때 제이는 나에게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이렇게 선하고 계산 없이 남에게 그저 잘해주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비현실적인 명랑만화의 주인공적인 면모가 있었다. 그렇다고 제이가 부유한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심장에는 나와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확고부동한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것은 폭력적인 아버지, 결과로 이어진 부모님의 이혼, 그로 인해 집에 가기가 두려워 학교가 좋았던 소녀에게, 세상에는 나쁜 일만 가득할 것만 같았던 소녀에게, 말 그대로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이 '믿음직한 남자' 곁에서 라면 나는 한 번도 가지지 못한 '매일 가고 싶은 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결혼해서도 여전히 제이의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관찰했다. 심지어 삶을 바꿀만한 커다란 실패가 우리 삶에 찾아왔을 때도 과연 그의 그 '무언가'는 바뀔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그는 바뀌었다.

순수하고 희망에 찬 빛나는 청년의 어깨는 여러 가지 책임의 짐들을 메고, 다소 그을리고 잔근육이 있는 단단한 어깨로, 청년의 눈부시게 화사한 얼굴은 충혈된 눈과 얇은 주름이 뒤섞인 아버지의 얼굴로. 그러나 그 '무언가'는 바뀌지 않고 역시 그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팔의 뼈가 부러지는 상황 속에서도, 남은 돈 마저 모두 잃고 가족을 처가로 떠나보낼 때에도, 수면이라는 것을 잊은 채 3개의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 순간도 그 '무언가'를 잃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니 제이를 허풍에 찬 남자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매일같이 자신은 잘 될 것이라고,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은 잘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희망대로 포기하지 않고 잘 될 것을 준비하고 성실하게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 제이의 허세인지 모르는 호언장담은 처절한 실천이 뒤따르고 있기에 나는 그의 숭고한 허세에 더 이상 허풍이라든지 쓸데없는 소리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는 그 말을 이루기 위해 지독히도 끈질기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천이 따르는 헛소리는 더 이상 헛소리가 아니다. 


나는 '나를 믿어주지 못했던 수많은 날의 나'에게 사과했다. 나마저 나를 믿어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믿어주겠는가. 내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나를 무조건 믿어주는 제1의 후원자이자 팬이 되겠다. 마치 나의 아이가 잘 될 것이라고 매일 응원하듯, 나 자신에게도 매일 나를 응원할 것이다.


제이의 '자신의 대한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 먼저 웃음을 건네고, 선을 행하게 했다. 약간의 실수나 일이 풀리지 않음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작은 실패든, 큰 실패든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나,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자신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임을 믿었고, 실패를 만나면 이기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믿었기에.


제이의 이 믿음들은 나에게로 옮겨져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작용하고 큰 효과를 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있었고,  '내가 좋은 엄마'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르게 양육하고, '내가 좋은 친구'라는 믿음을 가지고 친구를 진실하게 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글도 끝낼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써 내려갔고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왔다. 이 글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제 자리에 맞게 자리했는지 모르겠다.

삶은 이어지고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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