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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Sep 20. 2023

제이와 그의 브로맨스?

#12. G90을 타는 운전기사

업무기사로 확정이 나기 전부터 제이의 영감은 이 불편한 변화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제이는 영감의 첫 전담수행기사였다. 전에는 회사 차는 제공되었지만 스스로 운전을 해서 다녀야 했고 술 약속이 있으면 대리운전기사를 불러야 했다. 공장장으로 진급 후 제이를 만나고 저녁약속이며 주말의 골프약속 등 언제나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는 제이다.


제이는 기본적으로 '웃는 상'으로 자신에게 대놓고 화내지 않는 한 365일 온화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 나와 대치 중인 와중에도 웃는 상 덕분에 화를 낸 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웃는 얼굴에 차마 화를 낼 수 없어 대부분의 분쟁의 불씨는 김 빠진 콜라처럼 싱겁게 꺼지고 말았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파이터 본능을 가지고 투사로 지내왔는데 그를 만나고 성격이 점점 둥글둥글해지더니 투사 본능도 어느새 사라진 듯하다. 가시 돋친 사람 옆에는 사방에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하기 마련이고 웃는 사람 옆에는 웃음이 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웃는 상'을 하고 주말 운전수행에도 한 번도 빠져 본 적 없는 제이를 영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쏙 들어했다. 이제는 제이에게 가벼운 농담도 건네고 서로의 미세한 몸의 변화도 알아챈다. 제이가 주말에 쉬지 못하고 연이은 운전으로 피곤한 듯하면 그는 "잠깐 쉬었다 가죠." 하며 차를 세우게 한다. 그리고 제이가 잠이 깨도록 시간을 주며 밖에서 담배를 한대 태운다. 대체로 둘의 사이는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다. 그저 제이는 움직임 없이 백미러로 오른쪽 뒤를, 그는 제이의 오른쪽 어깨너머로 왼쪽 앞을, 그 분위기가 여전한지를 감지할 뿐이다.   


영감은 제이의 생일, 아이들의 생일, 나의 생일, 결혼기념일까지 비서를 통해 살뜰히 챙겨줬다. 그 덕분에 내 돈 내며 사 먹을 일 없는 소고기를 매우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맛집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가끔 제이를 위해 음식을 포장해서 주기도 하고, 주말 골프에 고급 과일 상자나 선물을 받게 되면 그대로 제이에게 건네주었다. 주로 비즈니스로 골프를 치기에 선물이 종종 들어온다. 주변 기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영감이 운전기사를 이렇게 챙기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모두 받아 챙기는 임원도 많았다.


한 예로 간편식에 목숨 건 임원이 있었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출입증을 찍으면 회사의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샌드위치나 샐러드, 빵, 음료 등 간편식을 타서 집에 가져갈 수도 있다. 점심 식사의 경우 오후 3시까지 제공된다.

짠돌이라 정평이 난 K임원은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가 다 되어 회사로 돌아오는 길이다. 시간을 확인한 임원은 초조해하며 운전기사에게 어서 식당으로 차를 대라고 급하게 다그친다. 시간은 2시 58분을 가리켰고 K임원은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제거하러 가는 사람처럼 촉각을 다투며 급하게 뛰쳐나간다. 그리고 시간 내에 폭탄을 제거했다. 본인만 쏙 내려 간편식을 타는 데 성공한 것이다. 주차를 하느라 시간을 놓친 운전기사는 속으로 혀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역시 있는 놈들이 더해...'


매우, 다양한 종류의 사람 가운데 제이의 영감은 자신의 위치에 맞는 품위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다. 시트콤에 나올 번한 폭탄제거의 상황도 전혀 없다. 가끔 기사들끼리 저런 에피소드를 나누면 제이는 입을 꾹 다문다. 제이의 영감과의 꽁냥꽁냥은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


처음에 제이가 고급 과일 상자 등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니 영감은 한 마디로 정리했다.


“받으세요. 그리고 이제부터 고맙다고 절대 하지 마세요.”


영감이 선물을 받으면 제이가 그대로 받아 트렁크에 넣는다. 영감의 집에 도착하면 그는 자신만 내려 그대로 집으로 들어간다. 무엇을 주었다고 생생을 내는 법도 없고 자신의 감정대로 사람을 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제이와 새벽을 열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주말을 함께 하는 그가 좋은 사람이기에 감사하다. 그렇기에 가족과의 시간을 많이도 뺏어가는 그 이지만 험담을 한 적은 없다. 오히려 '배울 것이 많은 인생의 선배이구나.' 란 생각을 하였다.


그런 그였기에 갑자기 제이가 없어질 수 도 있다고 하니, 그로서는 큰 일이었다. 업무기사로 확정되기 하루 전 제이를 불렀다. 그리고 비서와 자신의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제이와 같이 식사를 했다. 자신과 일을 하다 다른 곳에 가게 되었으니 송별의 의미를 담은 자리이다. 그러나 제이는 같이 한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모두 동원해 식사를 할 필요가 있나?' 이런 종류의 표정을 읽었다. 그에 게이치 않고 영감은 업무기사로 가게 되어 너무 안타깝다는 얘기를 계속했다. 회사의 방침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너무 아쉽다고, 그리고는 오히려 업무기사가 된 제이를 자신이 할 수 있는 데로 연속으로 예약하고 싶다고, 그래도 되겠냐?, 고 물었다. 업무기사가 되었으니 전처럼 낮이나 밤이나 주말이나 계속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약을 미리 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감은 업무기사가 된 제이를 일주일에 2번에서 3번은 불렀다.       


반은 영감의 전담기사인 듯 그렇게 2달이 지난 후, 영감이 제이의 회사 대표와 골프를 친 후, 제이는 다시 영감의 전담기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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