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아트와 살림, 그리고 청바지 단추
1. 살림과의 대화
나는 손이 그리 예쁜 편이 아니다. 초등학생때부터 한결같이 작은 고사리손에다(어른이 되면 예뻐질 줄 알았다) 신생아처럼 주름도 많다. 그런 탓인지 손금도 엄청나게 복잡하다. 손바닥을 펴보면 작고 미세한 선이 엄청나게 많다. 어떤 사람은 내 손금을 봐주겠다고 손을 펼쳐보라고 하더니 뭐가 이렇게 많냐고 눈을 한번 꿈뻑하고는 손금 보기를 포기했다.(그러고 보니 나의 변화무쌍한 삶은 벌써 손금에서 시작된 것인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손금을 가진 주름 많은 손. 그런데 거기다 이제 손톱까지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손톱도 얇아지고 힘이 없어진다. 그 위의 생기없이 거칠거칠해진 손의 피부까지 합세하면 아, 완벽하다. 완벽하게 못생긴 손이 되었다.
바로 신발을 신고 네일샵으로 간다. 그동안에는 돈 낭비라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손의 형편상’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네일아트의 유지기간은 2주, 길면 3주이다. 여러 가지 화려한 네일아트가 있고 화려한 만큼 금액도 비싸다. 화려함이 첨가되기 전 가장 기본적이고 저렴한 젤 네일아트 비용은 35,000원 정도. 나는 가장 저렴하고 평범한 네일아트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려고 한다. 저렴한 가격도 좋지만 너무 화려한 것은 나의 본질상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네일아트로 정돈되고 도톰해져 힘과 생기가 느껴지는 손톱을 바라보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누군가를 만날 마음과 몸의 준비가 된 듯하다. 더 나아가 좀처럼 하지 않는, 먼저 만나자는 약속도 잡을까 하는 마음까지 생긴다.(보통 생각에서 그치지만)
보기 좋고 예쁜지만 이면에는 역시 단점도 있다. 네일아트를 위해서는 손톱이 조금 긴 상태에서 해야 예쁜데 손톱이 길어지니 불편한 점이 여럿 생겨난다.
우선 청바지의 단추를 잠그기가 힘이 든다. 청바지처럼 억센 소재로 만들어진 바지의 단추는 일반 면바지보다 손톱의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힘 있게 단추를 단추 구멍에 끼워 넣어야 하는 것. 네일아트로 길어진 손톱 때문에 손톱 끝으로 힘을 주기 어렵다. 부자연스럽게 손가락 끝의 바닥면에 힘을 실어 조심스레 버튼을 끼워 넣는다. 촌각을 다투는 급한 용무일 경우(이보다 급한 일이 또 있을까?), 청바지 단추에 정성을 들일 시간이나 여유는 없다. 그저 성가신 일이 되어버릴 뿐이다.
또한 설거지를 할 때도 길어진 손톱은 역시 불편하다. 그릇과 부딪쳐 불필요한 소리를 내고 거칠게 부딪치는 날에는 네일아트가 벗겨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불편한 점은 분리수거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페트병에 비닐라벨을 떼어내거나 멸균 팩에 플라스틱 입구를 떼어낼 때가 특히 어렵다. 손톱 끝에 힘을 주기도 어렵고, 자칫하다가는 네일이 손상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분리수거에 꼼꼼한 편인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나는 네일아트를 가끔씩 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아 뭔가 덧입혀진 손톱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여러모로 불편을 주지만 예뻐지는 것은(그것이 손톱일지라도),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불편함을 감소하고 다시 예쁜 손톱을 바라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예뻐지게 만드는 것(시술을 제외하고는)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지만 손톱만은 돈만 들인다면 20대의 손톱이나 그 이상의 노화된 손톱이나 어느 정도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위의 손을 이루는 피부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미용비’로 분류되는 이러한 네일아트 비용을 생활비에서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대출금과 각종의 공과금, 아이들 학원비 등을 제하고 나면 네일샵은 일 년에 한 번도 가기 어렵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분류자체가 ‘미용비’이므로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나는 ‘미용비’ 분류에서 가장 필수적인이라 할 수 있는 미용실을 제외하고는 거의 돈을 쓰지 않는 편이다.(물론 돈이 남아돈다면 얼마든지 ‘미용비’ 항목을 늘릴 의향이 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런 쪽에 관심이 없는 편인 나에게도 기분이 울적할 때는 손톱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로서도 ‘여자’라는 속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예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활력과 건강이 넘치는 젊은 여자에게 네일아트의 주목적은 아름다움과 개성의 표현 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점점 자신과 비슷한 키가 되어 가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여자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조금 더 확장된다. 딸과 비슷한 키의 손주를 가진 더 나이를 먹은 여자들이 목주름을 감추기 위해 우아한 스카프를 두르는 것처럼, 그녀의 남편이 탈모를 감추기 위해 멋들어진 모자를 쓰는 것처럼, 생기 없이 갈라지는 손톱을 가리기 위한 용도가 추가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수시로 찾아오는 우울감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때론 손톱을 들어 올려 하기 싫은 집안일을 남편에게 슬쩍 넘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