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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Oct 25. 2024

단톡 공포증과 옛날 사람

2. 내면과의 대화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의 단톡방을 나왔다.


많은 단톡방 중 가볍게 나갈 수 있는 단톡방도 있고, 관계가 가까워 그냥 나가기 쉽지 않은 단톡방도 있다. 어느 단톡방은 적절한 타이밍을 잡느라 나오기까지 2년이 넘게 걸린 곳도 있다.


매일 여러 개의 단톡방에서는 무수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 때쯤 울리는 카톡 알림, 이제 무음으로 처리해 두었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내용들을 확인하는 때도 있다. 물론 나에게 직접 하는 얘기도 없고, 관심사도 먼 얘기들이다. 그런데 그냥 넘길 내용들을 또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 (농담도 열심히 생각해 보는 타입..) 그럴 때마다 '내가 여기에 왜 있을까' 잠시 생각하고, 달아나 버린 잠을 다시 청해 보기도 한다.


차라리 50명이 넘는 단톡방은 그나마 낫다. 그런데 10명 내외의 그것도 친한 사람끼리 톡을 주고받던 곳에서 나오기란 쉽지 않다.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나로서도 작은 단톡방을 나오기 위해서는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내가 '카톡의 시대'에 살면서 카톡으로 연결된 이런 관계망을 다른 사람보다 힘들어하는 점이 어떤 성격의 결함 때문은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인간관계론', '심리학' 관련 책들과 유튜브의 각종 영상들을 찾아보며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대인기피증은 아닌지, 나를 연구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도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톡방을 나왔다.

단톡방을 나오고 불안한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곧 평화가 찾아왔다. 꽉 끼는 옷을 입어 갈비뼈가 답답한 느낌이었다면 이제 헐렁한 옷을 입고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카톡 알림, 카톡방을 들어다 봐도 읽어야 할 것들이 사라지니 일에 몰두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계획했던 일과가 밀리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쓸데없이 남의 일을 생각하는 일이 줄어드니 스트레스도 줄었다.  

     

이제는 어떤 목적으로 단톡방이 생기더라도 그 목적이 달성된 것 같으면 가차 없이 방을 나와서 단톡방을 정리한다.      



이러한 '단톡 공포증'은  평소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안 쓰는 물건은 보관하는 것보다는 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안 입는 옷을 옷장에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나에게는 고문과 다름없다. 사용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은 버리거나 정리를 하여 그 공간을 비워둔다. 그 공간을 비워둠으로 그 옆에 있는 것들이 더욱 잘 보이고, 언제 어떠한 것이라도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여유를 둔다. 이왕이면 그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으면 더없이 좋다.       


쉽게 만들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단톡방.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서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다. 안 궁금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는 적절한 응답을 고민해야 하는 고달픔에서 헤어나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한 마디 말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로 전달되는 것은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단톡방은 대화의 속도가 빠르므로 그로 인해 경솔한 말을 한 것은 아닌지 곱씹게 된다. 무심한 문자 너머로 그 사람의 표정이 떠오르지 않아 답을 쓸 때도 한 템포 느리게 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톡은 이미 저 멀리 대기권 밖으로 올라갔고 다들 스피드 게임의 달인들은 아닌지, 속사포 대화들은 벌써 다른 화제로 전환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전화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약속을 많이 잡는 편은 아니나 꼭 하고 싶은 말은 톡보다는 전화가 좋고, 전화보다는 만남이 낫다. 만날 대상과 미리 시간을 맞추고 적절한 의상을 입고 적절한 장소를 택하여 그곳에 가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요즘, 여전히 이전의 소통방법을 좋아하는 나는 생각보다 옛날 사람인가 보다.   


때론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카톡처럼 문자를 보고 그에 적절한 말을 머릿속에서 생각하여 나름 정제되어 나오는 말보다 더 진정성 있는 응답이 나오곤 한다. 상대방의 표정과 분위기, 에너지가 반영되어 나오는 응답이므로 뭔가 다를 수도.   

 

나는 요즘 다소 조용해진 카톡방 때문인지 한결 평화롭고 기분이 가볍다. 수동적으로 쌓여있는 카톡들을 확인하지 않고 그 시간에 능동적으로 내가 보고 싶은 페이지를 열어 볼 수 있어 좋고, 계획대로 일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제시간에 잘 수 있어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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