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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Oct 26. 2024

상냥한 아가씨처럼

2. 내면과의 대화

혼자서만 산다면 화를 내는 빈도는 극히 줄어들 것이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화를 낼 만한 사람이 가족 수만큼 늘어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릴 적에는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작은 것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어서 결국  싸움으로 변한다. 지는 것은 극히 싫어하기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에서건 이기려 한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인지하였음에도 지지 않으려 그대로 밀고 나간다. 그리고 몰래 혼자 후회한다. 되돌리려 해도 상처는 이미 생겼고 흔적이 남는다.

      

나이가 들고, 삶이 주는 겸손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화를 내면 나만 손해라는 점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에서건 화를 내지 말자. 어릴 적과는 반대로 ‘화를 내는 순간, 지는 것’ 이라는 원칙이 생겼다. 이것 역시 이기기를 좋아하는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을 알았으면 어떠했을까,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에게 화를 내는 순간 지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화내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의 뇌 때문이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른이 되기 전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에서 연유한다.


뇌에서 제일 나중에 발전하는 영역은 맨 앞쪽에 위치한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이성적 사고를 관장하는 영역으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영역이다. 십대 아이들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 이성적인 영역은 상대적으로 다른 뇌 영역과 느리게 소통한다. 이때 편도체가 주도권을 잡게 되는데 편도체는 감정적 행동을 주관하는 영역으로 혈기 왕성하고 감정적인 십대들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크는 동안 그들의 전전두엽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을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아이들의 행동에 한결같이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경우 최대한 화를 내지 않고 키워보려 노력하는데 그 중에서도 말투를 주의하려 노력한다. 같은 일에 대해 말투만 조금 바꿔도 아이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명령조로 얘기하면 반항심이 일어나는지 불평을 늘어놓는다.

반면 나는 천사다, 하는 자기최면을 건 후


“민준이는 이것을 충분히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다른 공부는 안 해도 되니까 오늘은 이것만 해보자.”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해본다.  


“엄마가 상냥하게 말해주니까 그렇게 할게.”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다. 상냥하게 말하는 것. ‘상냥하다’는 말은 잘 쓰지 않는 표현으로 살짝 낯간지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사전 속 의미는 ‘성질이 싹싹하고 부드럽다’인데 우리 아이들은 꼭 동화 속에 나올법한 ‘상냥한 아가씨’ 의 그 단어를 사용한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꼭 상냥하게 행동해야 할 것 같아서 더 상냥하도록 주의한다.

      

어찌 됐건 나는 ‘상냥한 아가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화를 반드시 내야 할 상황에는 낼 것이다. 그런데 이제 화낼 기운조차 없다. 화를 내고 나면 내가 더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화’를 냄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소리를 크게 내고 화내는 것에 집중하려면 많은 체력적 에너지가 필요하고 감정적으로도 부정적 에너지를 크게 사용한다. 나는 예전에 극심한 화를 낼 상황에 처해 화를 내다가 손 끝과 발끝이 차가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으로 화를 과도하게 내면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을 깨달았다.


화를 내다 갑자기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사람이 이해가 된다. 화를 내는 것은 분명히 뭔가 통하지 않게 한다. 그렇다면 소위 ‘화병’을 앓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화가 병으로 발전할 만큼 온몸과 신체를 장악했을 터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화는 화를 부른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탄력을 받아 작은 일에도 화를 더 쉽게 내게 된다. 화를 내는 것에 온몸의 세포가 익숙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화가 많은 사람 주위에는 가지 않는 것이 이롭다. 어떠한 일이든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평생의 화의 대상인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남편과는 신혼 초에는 화를 내어 싸우기도 했지만 보다 더 큰 문제 앞에 둘만 서게 되니 화를 내어 싸우는 것은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작은 문제는 큰 문제 앞에 묻히기 마련이다. 남편과 덜 싸우는 것도, 쌍둥이 육아의 어려움이 심하지 않았던 것도 그보다 큰 삶의 문제가 가져다준 이로움이다. 그 안에서 가족은 서로를 보듬어 주고 불쌍히 여기는 안쓰러움의 존재가 되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화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것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은 ‘화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심각한 일에도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상냥한 아가씨처럼 살아갈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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