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간판과 ‘집중력’의 상관관계
2. 내면과의 대화
나는 꽤 꼼꼼한 편이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치밀한 관찰력과 봉준호 감독에 비견할 만한 디테일 장인다운 면모가 있다. 그런데 모든 것에 세밀한 관찰력이 발동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곁에 두고도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것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가령 자주 지나는 길에서 보이는 어떤 가게의 간판이 바뀌었거나 원래 그 자리에 있는 가게를 일 년이 지나서 알아채는 식이다. 그러고 나서, 저기에 저런 가게가 있었단 말이야? 하는 식이다. 눈썰미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이렇게 허당 짓을 할 때면 어떤 게 나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러한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두 가지 모습들은 나의 다른 행동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나는 단톡방을 겁에 질려할 정도로 싫어하고 글이 주가 되는 블로그 외에 인스타나 다른 SNS도 거의 하지 않는다. 시선을 한 순간에 사로잡는 그런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관심을 빼앗는다. 유행은 빠르게 지나가고 곧 새로운 유행으로 대체된다. 정보는 넘쳐나고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느리게 살기가 참 힘들다.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지기가 쉽지 않다.
나는 몇 해 전부터 단톡방도 정리를 하고 내가 집중해야 할 것들을 정하고 그것에 나의 집중을 다하고 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보다 나에게 의미가 큰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마치 내가 태양열이나 풍력에너지처럼 무한정으로 사용이 가능한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에너지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었다. 아껴 쓰지 않는다면 고갈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곧 몸에 이상이 온다. 나이를 한 두 살 더 먹어가니 더욱 그런 것을 느낀다. 내가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내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무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저것 다 아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고 확실히 아는 것. 사람이나 물건이나 마찬가지이다.
<정리하는 뇌>에서 대니얼 J. 레비틴은 ‘주의력’은 우리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 중 어떤 측면에 대처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수백만 개의 뉴런이 쉬지 않고 환경을 감시하면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을 골라낸다. 이 뉴런들이 ‘주의 필터’를 구성한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동안 옆을 지나간 풍경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고, 내가 간판이 바뀐 것을 일 년이 지난 후에야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주의필터는 밀려드는 정보에 의해 쉽게 압도된다. 그로 인해 우리의 뇌는 매일, 매 순간 바쁘고 우리의 마음도 바쁘다. 주의력은 한계가 있는 자원이다. 우리가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은 그 개수가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위주로 주위력을 집중한다. 자연스레 주위력이 약한 부분이 생겨나고 아예 무지한 부분도 생겨난다.
이런 무지한 부분이 생겨나는 것은 나에게는 잘 살고 있다는 긍정의 신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