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행복’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매해 ‘행복지수’라는 것을 조사하여 발표한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아, 행복은 ‘만족’과 관련이 깊구나.
7년 연속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핀란드. 그들이 행복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핀란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만족’에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괜찮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행복지수가 낮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정도면 부족해, 더 좋은 상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족’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만족' 또한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타고난 운동선수, 예술가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노력하여 탑클래스에 들어간 위인들도 많지 않은가.
나 역시 순전한 '노력파'에 속하므로 연습하는 것에 익숙하다. 모든 것들을 연습을 통해 이루었다. 그렇다면 만족이라는 것은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 만족이라는 것은 감정이므로 운동처럼 직접적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나의 방식은 이렇다.
머릿속으로 감사한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사한 것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정도의 삶도 나쁘지 않다, 감사하다, 고 되뇐다. 집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이 정도의 집이 있으니까 감사해, 이 정도의 가정을 이루었으니 괜찮아.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연습한다.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드는데 ‘연습’이라고 하면 조금 더 쉽게 느껴진다. 장거리 수영을 연습하듯,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점차 늘려간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습을 하는 동안에는 그것이 완벽한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은 것처럼 기쁨이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내 마음에 들어와도 상관없다.
행복을 연습하는 것, 즉 내 삶에 감사한 것을 떠올려 그 안에 들어가는 것 자체로 마음속 우울은 중립으로 옮겨가고 그날의 연습이 잘 되었다면 실제로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든다.
나는 올해 들어 부쩍 우울함이 찾아왔다. 감사한 것들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마취주사를 맞은 듯 무감각하다. 만족을 연습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울이 나를 잠식할 수 있기에 억지로라도 만족을 연습한다. 헬스장에 가고 싶지 않지만 막상 가서 운동을 하면 어김없이 좋아지는 기분,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더 감사에 집중하고 그 속에 완전히 들어간다. 감사한 것들에 둘러쌓여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기쁜 일을 할까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웃음은 줄어들고 행복 호르몬도 줄어든다. 오늘도 나는 호르몬에 맞서 감사한 것들을 찾고 이 정도면 좋다,라는 연습을 계속한다.
만족과 감사가 있은 삶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이것을 잊지 않고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글로 적어본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여 희미한 감사와 만족의 감정들이 적으면서 구체적이고 확실해진다. 심장이 두근 거린다.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작은 것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그리고 몇 줄 적어본 글도 꽤 멋지다. 내가 조금 더 근사하게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 참 멋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