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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써니 Jan 03. 2024

그거 태몽 아닌가?

내 아들 태몽을 우리 반 학생이 꿀 수도 있나???


오래전 일이다.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 학생이 한 명 전학을 왔다.

이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권고전학을 온 학생이었다.

교무실로 여학생 한 명이 들어오는데 급하게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 티가 확연하다.

원래는 노란색이었을까, 빨간색이었을까?

집에서 급하게 염색한 티가 나는 머리는 마치 폭탄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이 알록달록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2대 8 가르마로 최대한 가지런히 빗어 넘겨,

그 당시 유행하던 일명 "깻잎머리"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워낙 강렬해서

복장이 어떠했는지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직 그 폭탄 맞은 "깻잎머리" 헤어스타일의 머리만이 동동 떠 있는 듯한 이미지로 기억이 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그 여학생이 왠지 싫지 않았다.

보통 권고전학을 받아 온 학생을 맞게 되는 담임교사들은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이전 학교에서 어떤 식으로든 부적응 상황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깻잎머리" 소녀가 졸업까지 무난하게 갈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확신이 들었다.

그녀와 첫날 나눈 대화는 대충 이러했던 것 같다.

"꼭 졸업하자. 약속!"


여러 선생님들의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그 "깻잎머리" 여학생은 친구도 잘 사귀고

별 탈 없이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말괄량이 여학생으로 장난기도 많고 활달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 조례시간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깻잎머리" 소녀가 허겁지겁 나에게 달려 나오면서,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이 어제 제 꿈에 나타났는데요,

글쎄, 황금 개구리가 나타나서 선생님 발 뒤꿈치를 꽉 물어서

선생님이 울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엥? 

뭐라고?

???????"


워낙 평상시에 장난도 많이 치고,

실없는 소리도 자주 하고 해서

오늘도 아침부터 또 장난질이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며 교실을 나왔다.

그런데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녀가 말한 내용이 장난으로 지어낸 이야기치고는

너무 구체적이고 또 일반적이지 않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하니

그건 태몽이라는 것이다.

'가만있어보자....  

어?

잉?

아!!!'


며칠 뒤 산부인과 검진을 했고 결과는 임신 5주 차였다.

그때 낳은 아들이 현재 25살이다.


그 "깻잎머리" 여학생은 즐겁고 무탈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러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선배님이 되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해, 나의 출산에 우리 반 학생들의 지분이 꽤 많다.

태몽은 "깻잎머리" 여학생이 꿔 주었고,

(막상 가족이나 일가친척 누구도 태몽을 꾼 사람은 없다.

나도 태몽을 꾼 기억이 없다.)

태교 하라며 클래식 음악을 녹음해 준 학생도 있고,

딸이면 '김희선' 닮고, 아들이면 '류시원'을 닮으라는 의미에서

그들의 사진을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만들어 준 학생도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랑을 그들에게서 받았고,

그래서 너무나 행복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때의 내가 빛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에 함께 했던

그 모든 아이들.

이제는 모두 어른이 되었겠지만,

그들의 삶에도 누군가 있어서, 

외롭지 않고

어둡지 않게 밝게 빛나는 삶 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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