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워!
내가 근무하던 학교 옆에는 민가가 두 채 있다. 그중 한 집은 말 그대로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이다. 푸른 잔디 위에 빨간 벽돌집이 멋지게 지어져 있다. 주인이 상주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집 관리는 잘 되어 있다.
그 집 앞에는 족보를 알 수 없는 누렁이 한 마리가 묶여 있는데 집주인은 도통 밥이나 물을 잘 챙겨주는 것 같지 않다. 이 누렁이의 이름은 행복이다. 고3 여학생 두 명이 (고3 여학생이 전교에서 딱 두 명뿐이다.) 행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시간만 나면 들여다보고 대화도 나누고 가끔은 줄을 풀어서 산책도 시켜준다. 행복이의 밥은 국어 선생님이 학교 식당에서 잔반을 챙겨서 가져다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교사들이 주말에는 다 각자의 집으로 가기 때문에 행복이의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 주말에는 행복이가 물도 밥도 없이 굶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학교 아래에 있는 시장에서 20킬로그램짜리 개 사료를 사서 쟁여두고 행복이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가끔 교직원 회식에서 삼겹살을 먹을 때면 따로 고기를 챙겨 두었다가 행복이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삼겹살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금요일 오후에 집에 가기 전에는 행복이의 물과 밥을 그릇에 가득 부어 놓았다.
행복이는 정말 사교적이었다. 우리가 다가가면 꼬리가 안 보일 정도로 흔들며 반겨주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발라당 누워서 배를 보여주곤 했다. 나는 행복이의 밥을 챙겨 주었지만 행복이는 가족과 떨어져서 무언가 늘 외로움을 느끼는 나에게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행복했다.
그런데 항상 줄에 묶여 있는 행복이가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남는 힘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찌나 힘이 센지 목줄을 끊고 학교를 배회하는 날이 많아졌다. 행복이는 공격성향은 없었지만 교장실까지 버젓이 들어가서 활보하는 통에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더 튼튼한 목줄로 교체해서 이 정도면 어떻게 못해 보겠지 했다. 하지만 천하장사 행복이는 이쯤이야 하면서 다시 탈출에 성공했다. 얼마나 갑갑해서 저럴까 싶어서 고3 여학생들이 가끔 데리고 산책도 나서고, 교감선생님이 저녁에 동네 산책도 시켜주곤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행복이가 학교 복도며 관사 주변을 활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이가 목줄을 끊는 것으로 청년의 혈기를 발산하고 있던 중에 새로운 녀석이 나타났다.
그날도 사료를 주러 쉬는 시간에 잠깐 행복이에게 갔다. 그런데 새로운 개집 하나가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번에는 백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하얀 강아지가 행복이 목줄보다 더 두꺼운 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시골의 강아지는 도시의 애견과는 다르다 해도 이 가는 목에 성견 목줄이 웬 말인가? 심지어 그 어린 강아지 앞에 놓인 밥그릇에는 성견 사료가 얄밉게 놓여 있었다. 화가 났다. 혼자 분개하며 씩씩대고 있다가 점심시간에 동료 교사들에게 이 얘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같이 분개해 주길 내심 기대했나 보다. 물론 동료들은 나의 얘기에 함께 공분했다. 그러던 중 몇몇 선생님에게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내가 자꾸 사료를 챙겨주니 주인이 개 한 마리를 더 얹어 준 것 아니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강아지 사료 챙기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이가 다시 예전처럼 배고픔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행복이의 사료를 챙기는 것은 단지 행복이를 위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었다. 그래, 뭐 그렇다면 앞으로도 쭉 잘 챙겨 보아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이번에는 고2 여학생들이 이 백구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희망이는 내게로 왔다. 나는 아직 어린 희망이를 위해 밥을 끓여서 물만 거두어 먹이기도 하고, 분유를 사러 하나로 마트에 가기도 하고, 어찌어찌 시간은 갔다. 희망이의 성장 속도는 말 그래도 폭풍성장이었다. 다리가 길고 늘씬한 것이 희망이는 너무나 멋지게 잘 자랐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외모만 그럴싸한 것이 행복이처럼 눈치가 빠르지도 않고 붙임성이나 사교성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저 먹을 것을 보면 겅중겅중 뛰는 것이 전부였다. 좀 실망이었다. 하긴 행복이는 성격은 좋은데 외모가 좀 빠진다. 뭐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이와 희망이의 견주가 아니니 뭐 천년만년 같이 지낼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그냥 같이 있는 동안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잘 지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그런데 그들과의 이별은 너무나 허무하게 찾아왔다.
먼저 행복이. 그날도 회식은 삼겹살이었다. 나는 고기를 일부는 정성껏 익히고 일부는 날 것으로 남겼다. 행복이와 희망이에게 줄 생각으로 한달음에 학교로 달려갔다. 저녁 해가 다 지고 난 뒤라 어둑어둑해져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 행복이는 평소와 달랐다. 씹을 새도 없이 삼켜서 먹어치우는 희망이와 달리 웬일인지 행복이는 끙끙대기만 할 뿐 고기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꼬리만 연신 흔들 뿐이었다. 뭔가 불편해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기에는 주변이 너무 어두웠다. 날이 밝으면 다시 와봐야지 하고 관사로 들어갔다.
다음날은 금요일이었는데 하루 종일 강아지들에게 가 볼 짬이 나지 않았다. 너무 분주한 나머지 그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사료를 챙겨주지 못하고 온 것이 뒤늦게 생각났고 일요일 오후에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강아지들에게 줄 요량으로 천하장사 소시지도 샀다. 우리 강아지들이 얼마나 나를 반길까 하는 마음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강아지들에게 갔다. 그런데 행복이가 있던 자리가 너무 깨끗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행복이도 행복이 집도 없었다. 저 위에 분명 희망이는 겅중겅중 뛰고 있는데 말이다.
다음날 학생들에게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최근에 마을 개들에게 전염병이 돌아서 동네 개들 여러 마리가 토사광란 끝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중에 행복이가 있었다. 그날 행복이는 아파서 고기를 먹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행복이가 아픈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괴로워했다.
혼자 남은 희망이 와 잘 지내다가도 문득 행복이가 참 보고 싶었다. 시간은 흘러 이듬해 여름방학이 왔다. 교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사님에게 희망이의 사료 배급을 신신당부하고 집으로 왔다. 하지만 희망이가 보고 싶어서 방학 중에 교동으로 한 번 갔다. 희망이는 여전히 겅중겅중 뛰며 삼복더위에도 잘 지내고 있었다. 시원한 물과 사료를 주고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희망이를 본 마지막이었다. 개학을 하고 왔더니 이제 희망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2 쌍둥이 여학생들의 증언은 행복이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차마 글로 담지 못하겠다. 복날에 동네 사람들이 데려가서... 그것으로 끝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나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었다. 그래, 나는 견주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그리고 너무 허무하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내가 좀 더 현명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렇게 두 아이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교동에서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평화롭고 심지어 한가롭게까지 보이지만 자세히 안을 살펴보면 정말 치열했다. 나는 열악한 환경과 싸웠고, 외로움에 떨었으며, 끝없는 업무와 씨름했고, 내 인생의 무게에 짓눌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행복이와 희망이는 나를 웃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해 주었으며,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참 그립다. 행복이와 희망이.
* 안타깝게도 성견이 된 롱다리의 희망이 사진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