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레슨에서 클라리넷까지
나는 겨울이 싫다.
류머티즘에는 겨울바람과 영하의 기온은 통증을 배가시키고, 또 일조량과 나의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비례해서 우울감이 급상승한다. (^^;)
그래서 해마다 겨울에는 제주로 피신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무슨 오기가 출동을 했는지 오히려 양평에서 겨울을 즐기고 싶었다. 즐기지는 못해도 정면으로 맞서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겨울은 나에게 아무 도전장도 내밀지 않았는데 나 혼자 이런다.
양평에서 혹독한 겨울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첼로 배우기를 시작했다.
지난 12월 초에 처음 학원에 등록해서 활긋기부터 시작했다.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해서 쑥스럽지만 이렇게 폼을 잡아 보았다.
레슨이 한 달 정도 끝날 즈음, 선생님이 첼로를 구입할 것을 권유하셨다. 무사히 양평에서 겨울을 보낼 요량으로 첼로레슨을 시작했기 때문에, 첼로 구입 시점이 너무 빨리 온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조금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레슨이 두 달째에 이르렀을 때 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첼로를 구입했다.
막상 나의 첼로가 생기자 마음속으로 무척 신이 났다.
그동안 겨울 한 철, 잘 보내자고 시작한 첼로레슨이 너무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었다.
나는 30대에 클라리넷을 배운 적이 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대학 병원을 다녀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휴직을 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아침 걷지 못하는 일이 나에게 발생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고 디스크 시술 후 서서히 회복했다.)
이 당시에는, 신체적 통증보다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나를 더 괴롭혔다.
그러던 중 동네에 걸려있던 현수막에 클라리넷 가정방문 레슨 홍보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몸이 아팠기 때문에 집에서 레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전화를 해서 집으로 찾아오신 선생님을 만났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클라리넷을 구입해서 집에서 레슨을 받았다. 클라리넷 소리는 내 귀와 마음과 영혼에 스며들어 말 그대로, 나를 치료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클라리넷을 지도해 준 선생님이 알고 보니 내가 가르쳤던 제자였다는 것이다. 그녀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 내 옆에 온 누가 천사일지 모르니 정말 성질 죽이고 살아야 한다. (^_^)
병휴직 중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나의 강아지, 테디(우울해하던 내 옆에서 항상 함께 해주었다.)와 클라리넷이었다.
이후 나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복직했으며, 나의 클라리넷 선생님은 방문레슨을 그만두고 학원을 오픈했다. 나는 그 학원에도 다녔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도 클라리넷을 권유하여 그 학원에서 레슨을 받게 했다.
그럼 클라리넷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었냐 하면,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학여행 갔을 때, 교사 장기자랑 시간에 강제로 차출당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연습을 엄청나게 했고, 연습할 때 나의 연주는 완벽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의 클라리넷 연주 "마법의 성"을 들려주려는 흥분된 우쭐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 영어선생님인 내가 클라리넷을 너희들에게 연주해 주겠다. 하하하!"
결과는...
요즘 말로, 폭망이었다.
막상 무대에 올라서 수많은 관중들(학생들, 교사들 등등)을 바라보니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학생들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영어강의를 하지 않았는가?
호흡을 가다듬고 연주를 시작했는데...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연주의 70%가 전문용어로 '삑사리'가 났다.
분명히 혼자 조용히 연습할 때는 완벽했는데 이게 어찌 된 노릇이란 말인가?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나는 투철한 정신력으로 절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삑사리 연주를 끝까지 마쳤다.
맨 앞에서 나를 보던 한 여학생은 처음에는 불안한 눈빛을 보내다가 나중에는 데굴데굴 구를 지경으로 깔깔깔 웃어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망한 연주, 끝을 볼 때까지 삑사리를 냈고 마지막에는 뻔뻔하게 화려한 무대인사로 마무리를 했다.
나의 담임반 아이들은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으로 얼굴이 벌게졌고, 다른 반 아이들은 이 상황이 웃겨서 미칠 지경인 표정과 몸짓으로 야유를 보내면서 박수를 쳤다.
무대를 내려올 때, 나의 장기자랑을 가장 열렬히 추천했던 학년 부장선생님은 "그렇게 할 거면 때려치워~~~. 쯧!" 하며 나에게 확실히 비수를 꽂았다.(^^;)
나는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었고 동료교사들의 위로를 한 트럭 받았다.
시간은 참 모든 것을 아련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효험이 있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가 되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나 재미있고 그리운 추억들이다.
나는 그해 아이들을 졸업시키면서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그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선생님의 삑사리 플루트 연주는 정말 최고였어요!"
그 학생은 나를 두 번 죽인 것이다.
"플루트가 아니라 클라리넷이라고!!!"
그다음 해는 동료 음악선생님의 도움으로 피아노 반주를 곁들여서 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사 장기자랑(그 당시에는 왜 이런 것들이 유행이었을까?)에 다시 도전했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이전의 무대경험이 있어서 그랬는지, 낯선 외부환경이 아니라 익숙한 학교 강당이라 그랬는지, 음악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피아노 반주가 있어서였는지 연주곡, "Fly me to the Moon"을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해냈다.
마지막에는 "이 곡을, 사랑하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정말 손발이 오글거리는 상투적인 멘트로 마무리도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방방 뛰며 환호를 했고 다른 반 아이들은 부러움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며 우뢰와 같은(나의 착각일지도...)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는 영어나 잘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클라리넷 레슨은 그만두었다.
이만...
*** 나의 악기 섭렵기는 계속됩니다. 다음 악기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