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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에 대한 솔직한 고백

러닝 01. 어쩌다 러닝

by 이노랑

소신 발언합니다. 저 러닝 하기 너무 싫습니다. 솔직히 제 성향과 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휴, 말하고 나니 속이 조금 풀린다. 물론 이 브런치북이 방과 후 취미생활에 관하여 쓰는 책이라 이 말을 할까 말까 정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거짓으로 꾸며내 글을 쓸 순 없다. 오늘도 다시 한번 느꼈다. 아, 러닝 하기 진짜 싫다.


그럼 이 싫은 러닝을 왜 시작하게 된 걸까. 일단 시작은 아빠다. 아빠는 30대 중반에 점점 뱃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자 어느 날 줄자 하나를 사오더니 그 길로 바로 러닝을 시작했다. 매일 아빠의 배꼽을 기준으로 허리둘레를 재는 것이 우리 남매의 일이었다. 38인치까지 부풀었던 복부는 달리는 거리만큼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아빠는 5km, 10km 늘려나가더니 Half도 뛰고 Full 코스도 몇 번이나 완주했다. 올해 환갑인데 벌써 올해만 Half 대회에 2번이나 출전했다. 그리고 곧 4월에도 또 출전 예정이다. 그리고 허리둘레도 몇 십년째 30~31인치를 유지 중이다. 이렇게 아빠가 러닝에 진심이다 보니 러닝 자체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러닝이 좀 필요한가 싶었던건 나이 앞자리에 3을 달고 나서이다. 나 또한 30대로 접어들자 살이 찌기 시작했다. 늘 내 신체는 항상성 유지에 탁월하다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것은 그저 젊음의 특권에 불과했다. 특히 아빠처럼 뱃살이 늘어갔다. 잘 맞던 바지들이 하나 둘 나를 옥죄기 시작하니 허리가 끊어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다만 처음부터 러닝은 아니었다. 수영도 해봤고 요가도 해보고 헬스도 했다. 하지만 세 운동 모두 운동을 위해 특정 장소로 이동해야만 한다는 제약사항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이틀 거리를 핑계 삼아 합리화하는 날이 늘었다. 물론 요가는 지금도 하고 있지만 솔직히 요가가 다이어트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다.


그에 반해 러닝은 신발만 있으면 된다. 좋은 러닝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원래 신던 운동화도 충분히 괜찮다. 러닝도 집 주변에 좋은 코스가 있어야 하긴 한데, 마침 작년에 공원 주변으로 이사를 왔다. 게다가 요즘 우리나라의 운동 트렌드는 골프와 테니스를 지나 러닝으로 오지 않았던가. 나는야 유행에 잘 흔들리는 사람. 러닝붐에 집 앞 공원까지. 이제는 러닝을 좀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달리기 운동 어플인 'Runday'를 3번째 다시 깔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러닝을 밀어냈을까.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수영처럼 여러 영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요가처럼 수련 플로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헬스처럼 기구가 많은 것도 아닌, 그저 우직하게 일정한 속도로 앞만 보고 달리는 이 운동은 딱 봐도 지루했다. 원래도 진득하지 못한데 몇십 분을 똑같이 달리라니, 도무지 그럴 자신이 없었다. 달리기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계주 선수로 출전해 짜릿한 역전의 환호성도 받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러닝은 명백히 다르다.


런데이 30분 달리기

앞서 Runday를 3번 깔았다고 말한 부분에서 눈치 챘겠지만 이미 예전에 Runday의 초보자용 '30분 달리기 도전' 코스를 시도한 적이 있다. 이 코스대로 30일 동안 잘 따라오면 마지막 날엔 3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다. Day1 코스는 1분 뛰고 2분 걷고를 30분 동안 반복하는데 처음엔 만만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연 중고등학교 시절도 10년이 넘은 터라 고작 1분 뛴 건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러닝은 약간 숨이 차지만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강도로 달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단거리 선수처럼 질주를 한 것이다. 아니, 그럼 너무 지루한데 이거! 그렇게 '30분 달리기 도전' 코스를 2번이나 실패한 전적을 갖게 되었다.


3번째 다운로드. 이제는 물러서지 않으리. 독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2024년 여름. 그 무더운 한여름 밤을 부지런히 갈라놓았다. 달리다 보면 얼굴 땀구멍 열리는 느낌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 느낌이 딱 들고 나면 세수를 한 것 마냥 땀이 줄줄 흘렀다. 축축하기보단 상쾌한 느낌. 1분 연속 달리기, 3분 연속 달리기, 7분 연속 달리기. 그렇게 조금씩 늘어나다가 어느덧 10분도 거뜬히 달리게 되었다. 오, 어쩌면 맛에 러닝하는건가? 러닝을 떠나서 어떤 종류의 장기 레이스에 성공한 것이 꽤나 오랜만이라 쿨 다운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척 벅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기어코 나는 약 5km의 30분 달리기를 해냈다. Day30 코스까지 다 한 건 아니고.. 너무 찔끔찔끔 늘려가길래 답답해서 혼자 자체적으로 시간을 늘려나갔다. 장거리 달리기가 급한 성질까지 고쳐주진 못했다. 5km 완주 소식을 알리자 아빠가 당장 마라톤 대회에 나가자며 부추겼다. 어라,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나는 야매러너라 7분 30초의 페이스를 가진 느림보란 말이다. 우물쭈물하다가 겨울이 왔고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새해와 함께 어릴 적 아빠 마라톤 대회에 따라가 아빠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경품도 받고 음식도 받아먹던 것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향수에 젖어 정신을 차리니 이미 2개 마라톤 대회에 접수를 마친 후였다. 하나는 5km, 하나는 무려 10km다. 첫 마라톤 대회는 당장 이번 달 말이다. 지난 11월 이후 한 번도 러닝을 안 했기 때문에 이제는 미룰 수 없다 싶어 부랴부랴 저번 주부터 다시 러닝을 시작했다. 올해 첫 러닝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다시 5km를 뛸 수 있을까 긴가민가 했는데 그래도 기어코 완주했다. 여전히 7분 30초 거북이 페이스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심박수가 170을 기록해 다소 당황했지만 약 5달만의 첫 러닝치고는 선방했다고 본다.


문제는 오늘이다. 일찍 퇴근한 김에 러닝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많이 분 탓일까, 집에 오자마자 느껴지는 온기에 일단 나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대회가 코 앞이니 어쩌겠어하며 야심 차게 나갔다. 결과는 실패! 2.5km 뛰다가 추워서 돌아오고야 말았다. 엄청 힘들지는 않았는데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니 그제야 몰려오는 자괴감이란. 샤워 물줄기에 주룩주룩 흘려보내긴 했는데 실패의 잔흔이 마음의 응어리로 남았다. 나 대회에서 잘 뛸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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