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03. 나도 모르는 사이 자리 잡은 러닝의 문
봄이 오는가 싶더니 하필이면 이 날 딱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내내 전례 없이 따뜻하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추위에 마음이 자꾸 흔들렸다. 전날 밤 잠들기 전까지 고민했다. 갈까 말까. 남자친구에게도 말했다. 우리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너무 추울 것 같으면 가지 말자, 다칠 수도 있잖아. 자꾸 이런 마음이 들다 보니 어차피 가기 싫었던 차에 찾아와준 추위에 마침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 날'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나의 첫 마라톤 출전 날이었다.
출전이라고 하니 좀 거창하긴 하다만 나에게는 아주 역사적인 날이다. 다들 좋다고 크루까지 만들어서 뛰는 러닝을 싫어하는 내가 돈까지 내가면서 신청한 대회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늦잠 잘 수 있는 주말 아침, 평소 회사 가는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고민했다. 아.. 추울 것 같은데. 하지만 고민도 잠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기로 했다.
간단하게 두유와 단백질바를 챙겨 먹은 후 옷을 단단히 여며 입고 집을 나섰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름하야 '한강 벚꽃 마라톤'이 열리는 월드컵 경기장이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느껴지는 대회 이름과는 달리 집 밖을 나서자마자 4월 초 아침 공기는 콧 속을 시큰하게 때렸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이게 진짜 이상기후구나 싶을 정도로 따뜻했었기 때문에 하루 사이 날카로워진 바람을 만나자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들었다. 저 진짜 큰 맘먹고 마라톤 가는 건데 러닝 초보 기 좀 죽이지 마세요, 날씨 선생님!
근데 이렇게 추워서 으슬으슬한 와중에도 참 묘한 것이.. 기분이 슬슬 들뜨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차고 올라오는 간지러운 긴장감에 자꾸만 입꼬리를 밀어올렸다. 뭘까? 첫 대회에서 오는 기대감일까 아님 이 추위를 뚫고 씩씩하게 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일까.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울렁임을 주체하지 못하고 괜히 남자친구를 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 기분의 정체는 월드컵 경기장역이 있는 6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걸어가던 중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플랫폼을 가득 채운 사람들.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 아닌 가벼운 바람막이와 러닝 쇼츠를 입고 결정적으로 알록달록한 러닝화를 신은 사람들. 바로 러너들이 그곳에 가득했다. 누구 하나 인상 찌푸린 사람 없이 건강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뿜어대고 있었다. 그 틈에 스며들어 그들의 에너지를 받고 또 내 에너지로 돌려주고.
이 맑고 힘찬 에너지의 순환 속에서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갔던 그 숱한 마라톤 대회들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비록 직접 참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자꾸만 힘이 솟아나던 그때가 말이다. 처음 가본 어느 도시의 공설 운동장 아침 햇살 아래서 아빠를 기다리던 시간들. 참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든 그 시절 러너들의 기운이 20년이 되도록 내 안에 남아 오늘 나를 이곳까지 이끈 것이다. 그렇게 러닝 재미없고 힘들고 싫다 하면서도, 왜 하필 오늘 이렇게 추운 거냐고 툴툴대면서도,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대회 장소에 가보니 가족 단위로 온 참가자들이 아주 많았다. 엄마아빠 손을 잡고는 있지만 다들 발 구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아이들까지도 경기장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생명력에 자기도 모르게 한껏 들뜬 것이 분명하다. 각자 배번표를 달고서 엄마아빠와 함께 경기장을 누비는 미래의 마라토너들은 몇 년만 지나면 곧 혼자서도 이곳에 오게 될 것이다. 아주 강한 확신으로 말할 수 있다. 왜냐면 내가 바로 그 산 증인이니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는 바로 유모차를 끌고 달리던 아빠 참가자이다. 유모차 속 아이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전혀 동요하지 않고 어디 근교에 나와 드라이브를 즐기는 어른마냥 빠르게 흘러가는 주변 풍경을 유유히 즐기고 있었다. 아이가 너무 점잖게, 아니지 약간은 심드렁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아직 달리지 못할 정도로 어린 이 아이도 나중에 반드시 러닝을 하게 될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무조건 YES.
기억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아주 오래오래 삶을 함께 동행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틀어주던 동물 다큐멘터리를 자주 봤었는데 그 기억은 10년이 지나 중학생 소녀에게 사육사라는 장래희망을 심어주었고 또 한 번 10년이 지나서는 유기견 봉사활동을 가는 어른을 이 세상에 만들어냈다. 10살의 나는 5살의 나를 기억하고, 15살의 나는 10살의 나를 기억하고. 30살의 나는 비록 15살의 내가 흐릿흐릿하지만 15살의 나는 16살, 17살, 18살.. 30살의 나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져왔다.
이렇게 기억의 연속성은 인생을 채우는 다채로운 문이 된다. 러닝의 문, 동물의 문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이름 모를 문까지. 왜 어렸을 때 내 재능을 찾아주지 않았느냐고 부모님에게 툴툴거린 적이 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미 나는 기억할 수도 없는 1개월 아기 시절부터 내 안에 수많은 문을 만들어두었다. 아직 그 문 앞에 전구가 켜지지 않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언젠간 불현듯 탁하고 그 문을 발견하는 때가 올 것이다.
예전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기들을 데리고 해외여행 가는 가족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억도 못할 텐데 뭐 하러 저 어린애들이랑 힘들게 여행길에 오르는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이젠 일찍이 에메랄드 빛의 태평양 앞에서 이국적인 향신료 맛을 본 아기는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멋진 탐험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바다에서 본 알록달록한 열대어가 오래도록 남아 20년 후에는 프리다이빙 강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첫 마라톤 대회에서 내가 열었던 문은 바로 20년 전 아빠가 매주 10km, 20km, 42.195km를 뛰며 쌓아 올린 바로 그 문이다. 이번엔 내가 스스로 5km를 뛰며 그 문을 활짝 열었다. 또 어떤 세상으로 달려 나갈 수 있을까. 유모차에 타고 있던 그 아이, 정말 심드렁해 보였지만 다음 달에 아빠한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아빠, 우리 또 언제 달리기 대회 가?'
요즘 아빠는 5km씩 달리는 나를 보며 굉장히 신이 나있다. 드디어 너도 달리기의 참맛을 알게 되었냐며 계속 페이스를 줄여보라느니, 러닝 키로 수를 더 늘려보라느니, 이따 9월에 한번 대회에 같이 참전하자느니, 러닝 얘기만 나면 신바람이 난다. 아마 본인이 뿌린 씨앗을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수확하는 성실한 농부의 심정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래, 기억이 참 무섭지. 내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줄이야. 하지만 한번 그 문을 열고 나가니 걷잡을 수 없다. 달리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첫 마라톤 대회에서 느꼈던 강렬한 에너지가 자꾸만 생각난다. 이걸 러너들 사이에서는 일명 '대회뽕'이라고 부르던데, 이 기억이 날 또 몇 살까지 뛰게 만들까. 그래, 솔직히 아주 쪼~옥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