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에 새기고 싶은 이름, 프란츠 카프카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을 돌려줄 줄 안다.
아무렇지 않게 흔하게 하고, 흔하게 듣는 말이지만 이 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성장하며 사랑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생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와 닮았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를 닮은 나를 어머니는 못 미더워했다. 어머니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엄격한 기준이 있으셨다. 부모에게 복종하는 아이, 높은 학력, 안정적인 직장. 어머니는 내가 사랑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와 거울처럼 닮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는 프라하에서 잡화상으로 자수성가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권위와 계급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에서 신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아들의 신분을 위해 아들의 결혼을 반대했으며, 자신의 바람과 달리 말단 공무원이 되길 택한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이 다정하지 못한 것은 다른 아버지들처럼 가식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강압적인 태도를 합리화하는 아버지였다.
프란츠 카프카는 세 번째 파혼 이후에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남긴다. 이 책은 카프카가 세상에 공개할 의사가 없었는데 가족과 지인들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작가가 공개하길 원하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이 맞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나와 카프카가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에 카프카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었는지 알고 싶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읽게 되었다. 카프카의 문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나와 닮은 카프카라는 인간, 그의 삶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읽었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카프카가 어린 시절부터 오래 묵혀두었던 아픔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카프카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물을 달라고 했고, 그리고 물을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났다. 물을 달라고 한 행동은 “밖으로 쫓겨나는 끔찍하게 무서운 일로 귀결”되었다. 비상식적인 아버지의 행동은 그에 그치지 않는다. 매번 그는 아버지에게 비꼬는 듯한 모욕과 욕설을 들었고, 카프카는 급기야 “말문을 닫아버리고” 만다. 아버지 앞에서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앞에서는 몸을 수그리고, 아버지의 힘이 닿지 않는 멀리에서야 비로소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때도 아버지는 다시 카프카의 앞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로 인해 저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고 그 대신에 끝없는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곳에서 사랑받지 못한 사람, 그로 인해 자기 자신까지 사랑하지 못한 사람. 그가 프란츠 카프카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을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갔다. 그런 그가 생애 마지막 순간을 앞두었을 때,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소녀는 자신이 애정하는 인형을 잃어버리고 공원에서 울고 있었다. 카프카는 소녀를 도와 인형을 찾으려 했지만, 인형은 어디에도 없었다. 울고 있는 소녀를 위해 카프카는 소녀에게 쪽지를 준다. 쪽지는, 인형이 모험을 떠났으며 앞으로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로 여러 날동안 카프카는 인형의 모험을 담은 이야기를 쪽지로 써서 소녀에게 전달했다.
쪽지 속 모험 이야기가 끝나고, 카프카는 소녀에게 마지막으로 새로운 인형을 선물한다. 소녀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인형이 아니라고 말하자 카프카는, “여행이 나를 바꿨다”는 쪽지를 남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소녀는 인형에서 카프카가 남긴 쪽지를 발견한다.
“너도 이해할 거야. 우리 언제가 다시 만날 수 없으면 그때는 마음에서 서로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네가 사랑하는 것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들은 반드시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돌아올 거야.”
어린 날 사랑을 받지 못한 프란츠 카프카는, 처음 상실을 겪는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었고, 상실의 아픔에 대한 가르침을 아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상실은 또 다른 사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의 삶을 따라가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깊은 삶의 고통 역시 사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다른 사람이 고통으로 인해 흘린 눈물에 공감하고 연민할 줄 안다. 프란츠 카프카는 고통으로 마음을 파낸 그 깊이만큼 다른 사람의 눈물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텅 빈 곳이 아니며, 그의 마음은 타인의 눈물로 채운 호수가 되었다. 그의 글이 지금까지 이렇게 읽히고 있는 까닭은, 그가 오랜 시간 외로움과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그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받을 수 있는 깊이의 글을 썼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시가 있다.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어쩌면, 사랑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처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닐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하늘이 우리를 사랑하여 슬픈 운명을 주고, 외롭고 높은 곳에서 글을 써 그 슬픔이 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눈물로 쓴 글이 다시 사랑으로 돌아간다니. 아이러니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나의 고통만큼 내가 연민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시 “다른 형태의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 나의 외로운 삶을 담은 글이 누군가의 눈물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을 주기 위해 계속 쓸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시의 마지막에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내가 아주 많이 사랑한 문학가의 이름을 새겨야지. 프란츠 카프카 그의 이름을.
참고문헌
프란츠 카프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은행나무, 2024
이수은, <평균의 마음>, 메멘토, 2021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수오서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