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체코 출신이지만 소련의 억압을 피해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고, 1984년부터는 줄곧 프랑스어로 집필했으며 2023년 7월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역시 프랑스어로 쓰인 책이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체코와 수도 프라하의 근현대사, 그 당시의 삶과 인간관계를 날카로우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모국어인 체코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쓰였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아쉬울 정도다. (덧붙이자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한국어 제목은 정확하지 못한 번역이다. 우리말로는 ‘참을 수 없는’ 대상이 ‘존재’인지 ‘가벼움’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원어로는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영어로는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니 정확한 번역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으로 접한 건 2014년이었다. 나는 친구와 생애 첫 유럽 여행인 체코 프라하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프라하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한 책을 찾다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프라하를 배경으로 쓰였다는 걸 알게 되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초반부터 매우 난해했다. 니체가 말한 영원의 회귀가 어떻고…?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한 극단적 모순…? 나는 두어 장 읽다가 포기했고 이 소설이 왜 유명한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반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프라하 여행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어느 반나절은 프라하 구시가지를 걸어 다니며 둘러보는 한국어 투어를 하기로 하고, 다른 하루는 당일치기로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소도시를 다녀오는 투어도 예약했다. 스위스보다 비교적 저렴해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프라하 탄뎀 스카이다이빙도 예약하고, 체코의 국민악파 음악가 드보르작을 기리는 <드보르작 음악 축제>가 매년 9월에 프라하에서 열리는 만큼 축제 공연도 하나 예약했다.
이렇게 떠난 2014년 프라하 여행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첫날부터 눈에 띈 것은 탁 트인 스카이라인이었다. 프라하 구시가지에는 현대식 고층 빌딩이 없어 하늘이 시야에 훨씬 많이 들어왔고 그 자체로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다. 이 풍경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고층빌딩이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시각 공해였던가를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돈과도 맞바꿀 수 없는 어떤 것을 프라하가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이곳에 고층 빌딩 몇 개를 지어 아파트나 큰 쇼핑몰을 조성하면 보통 5, 6층에 그치는 전통 유럽식 건물보다 훨씬 큰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프라하의 구시가지는 그런 계산법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고층빌딩이 적은 지역이 있지만 대체로 투자할 가치가 없어서 아무도 손을 안 대는 것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층 아파트는 높은 삶의 질을 상징하고 고층 건물을 꽉 채운 상가와 사무실은 현대 한국 성공신화의 산물로 여겨지니 말이다.
구시가지 투어에서 들은 체코 민주화 운동 역사도 정말 흥미진진했다. 체코의 옛 이름은 보헤미아왕국이다. 보헤미아왕국은 16세기부터 무려 400여 년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니 우리 민족만큼이나 한이 많이 서린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해체되면서 보헤미아는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 21년 만에 나치 독일에 합병되는 아픔을 겪는다. 1944년에 소련에 의해 체코는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소련의 억압적인 간섭과 감시로 인해 시민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1968년에는 마침내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유화 운동이 일어났다. 바로 <프라하의 봄> 운동이다. 소련의 병력 투입으로 <프라하의 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후 1989년 피를 흘리지 않은 이른바 ‘벨벳 혁명’이 바츨라프 광장에서 일어났고 체코인들은 자유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는 이렇게 뒤늦게 봄이 찾아왔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많이 넓힐 수 있었던 첫 프라하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보니 닭장처럼 오밀조밀 쌓여있는 아파트들과 형형색색의 상가 간판으로 뒤덮인 건물들이 나를 반겼고, 남의 땅인 프라하에 어쩐지 향수마저 느꼈다. 왜 우리나라 대도시는 역사와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려 하기보다 돈냄새만 풍기는가? 기와집, 초가집들을 밀어버리고 오솔길에 아스팔트를 깔면서 우리 삶은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그만큼 잃은 것도 많지 않을까?
지금 여기와 다른 삶의 형태에 관한 궁금증이 싹트게 되어서인지 몰라도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소설이 맛있는 라면 면발처럼 후루룩 삼켜졌다. 우선 새로 주목하게 된 점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사실이었다. 프라하가 소련군의 탱크로 뒤덮이게 되면서 지식인들은 도피하고, 장사꾼들은 정보를 팔아 돈을 벌고, 시위대는 광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결국 모두 프라하를 떠난다. 이 모든 비극적인 일들이 아름다운 중세도시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니, 프라하 여행에서 직접 봤던 사연 많은 골목들, 광장들을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다.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두 주인공 토마시와 테레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조된다는 점이나, 반복되는 일상이 또 반복되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맞이하는 개 카레닌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캐릭터라는 부분도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이유>는 많은 이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되었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하고 포기했던 시점부터 한참 후 다시 읽고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전의 나는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자식 뒷바라지 하다가 퇴직하고 연금 받으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핵심 내용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으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처음 읽었던 때와 달리 몇 년 후의 나는 체코와 영국을 다녀와 보고 유럽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생애 첫 이별도 경험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좀 더 분명해져 있었다. 또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내게 안 맞는 옷을 입은 기분에 대해 자주 되돌아보게 되었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지는 등 뒤늦은 사춘기를 겪은 것 같다.
그 후 2017년 봄, 나는 프라하로 또 여행을 다녀왔다.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한 번 유럽여행을 갈 때마다 드는 시간이나 비행기표값을 고려해 3년 만에 또 같은 도시로 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라하가 너무 좋았고, 여전히 좋은지 또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고나 해야 할까. 처음 갔던 프라하 여행은 친구와 둘이서 날마다 치밀하게 짜놓은 일정을 미션처럼 수행하는 컨셉이었다면, 두 번째 여행은 혼자 하는 산책이었다.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 공연 두 개를 감상한 것 외에는 중요한 일정 없이 헐렁하게 시간을 보냈다. 프라하 도시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첫 여행 때만큼 강렬한 미적 충격은 없었고, 혼자인 만큼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했다. 어쩌겠는가, 아무도 이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서 밖에 있을 때면 셀카를 엄청나게 찍었는데 그 수많은 셀카들이 내 인생에 뭘 남겨줬는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 프라하 여행 중 한 서점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체코의 서점에 서 있는, 체코어를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란,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내가 이해하건 못하건 상관치 않는 세상이 크다는 걸 느꼈다. 내 눈앞을 꽉 채운 외국어의 향연을 보며 나는 ‘이 글자 중 어떤 것들이 나를 멍청이라고 놀리고 있어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나마 익숙한 영어가 보이는 코너가 있어서 그곳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영문판을 기념으로 샀다.
늦은 오후, 새로 산 책을 들고 블타바 강변 벤치에 자리를 잡은 나는 강변에서 책을 읽기보다는 석양과 책 표지가 잘 나오도록 또 사진을 수십 장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이 여행이 나중에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현재를 편집하는 재미도 그리 길게 가진 못했다. 이거야말로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닐까. 나는 혼자하는 해외여행을 즐길 줄 아는, 하루종일 누군가와 나눈 대화라곤 음식 주문 뿐인 그런 날들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성숙한 여행자라고 스스로 여겼는데 사실 내 여행 내공은 한없이 가벼웠던 것 같다. 새로 산 책과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두기로 하고 나는 해지는 하늘을 묵묵히 지키는 강건너의 프라하성과 말없이 대면했다.
프라하는 여전히 나에게 각별한 도시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중국인 친구 챠챠와 또 다른 프라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이미 당일치기로 혼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으니 곧 네 번째 프라하 여행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또 읽고 있는 중인데, 그동안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만큼 이 이야기가 또 새롭게 다가온다. 쿤데라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명문장을 몇 구절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쪽번호는 민음사 2016년 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기준)
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17쪽)
그녀를 깨울까 두려워 그는 그 손아귀에서 차마 손을 빼지 못하고 그녀를 자세히 보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돌아누웠다. 이번에도 여전히 테레자가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난폭한 강물에 띄워 보낼 수 있다니! 파라오의 딸이 어린 모세가 담긴 바구니를 강물에서 건져 내지 않았다면 구약성서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우리 문명은 어찌 되었을까! …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20-21쪽)
그들이 산책에서 돌아오자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누구냐고 물었다.
독일어로 말하는 여자 목소리가 토마시를 찾았다. 목소리는 다급하다는 투였고 테레자는 거기에서 격렬한 기운을 느꼈다. 토마시는 외출했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자 전화선의 다른 쪽 끝에 있는 여자는 폭소를 터뜨리고 인사도 없이 끊어버렸다.
테레자는 이런 일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병원 간호원이나 여자 환자, 여비서 또는 그 누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혼란스러웠고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는 프라하에서 지니고 있었던 그나마의 힘도 상실했으며 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버텨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어릴 적부터 알아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지닌 나라, 즉 조국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이 없다.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