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은 자동차 부품을 파는 E-Commerce 기업으로 시작해 현재는 3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는 베를리너 회사다. 나는 회사의 IT부서 데이터 허브팀에서 1년 7개월 차 개발자 보조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내 신분은 Werkstudentin([베어크슈튜덴틴] 일하는 대학생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Working student)이다. 이 개념이 한국에는 없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인턴 비슷한 거라고 설명하곤 했는데, 사실 한국의 인턴과는 차이가 있다.
첫째, 독일의 대학생들은 일주일에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이틀에서 이틀 반 정도 일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인력이다.
둘째, 졸업과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경험과 커리어를 쌓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 한국형 인턴이라면, 독일의 '일하는 대학생'은 저학년들에게도 길이 열려있고, 회사나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지만 졸업할 때까지 비교적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셋째, 내가 정말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독일의 '일하는 대학생'은 실전에서 필요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한다. 한국에서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나 인턴에게는 팀이 하는 업무의 핵심적인 부분을 나누어 주지 않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감사하게도 관련 분야 실무 경험이 없는 나를 고용해 백지상태에서부터 하나하나 가르쳤고 지금은 나에게 풀타임 개발자들이 하는 일(중에서도 덜 복잡한 일)을 맡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넌 아직 이렇게 어려운 건 못하니까 서류 정리나 해'가 아니라, '넌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배워 봐'라는 식이었다.
나는 다른 팀 사람들과 교류가 거의 없어서 다른 팀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의 테크 리드(팀장이라기보다는 팀에서 책임이 가장 큰 개발자다)인 닉의 마인드가 그랬다. 내가 개발자 흉내라도 낼 수 있을 수준이 되기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는데, 그 중간중간에 '이렇게 매일 팀원들의 시간만 뺏아가며 일 배우면서 월급 타 가도 괜찮은 걸까'라는 회의가 든 것은 물론이다. 초반에 닉에게 내가 일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린 건 아닌지 물은 적이 있다. 닉은 '느리고 빠른 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너만의 속도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놀라운 답변을 돌려주었다.
내 부전공인 컴퓨터공학에서는 필수 과목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고 실제 프로그래밍 실습 기회는 아주 적다. 문과 출신인 나로서는 수학과 고군분투를 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힘든데, 학교에서 그렇게 머리 터지게 배운 것들이 업계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점이 더욱 힘 빠진다. 그래서 회사에서 배우는 실전 기술이 내게 아주 중요하다. 회사에서는 약간의 압박이 있지만 기본적으론 기술을 배우며 돈을 버는 기분이다. 실무에서 접하는 개념들과 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는 너무 다르고 또 광범위해서, 진작 일하는 대학생으로서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졸업할 때쯤 먹고살 길 없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다.
아무튼 나는 이런 형태로 주 16시간을 홈오피스로 일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사무실에 갔던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우리 팀은 독일 이외 국가에 거주하는 외부 채용 팀원 2명과 독일 내 타도시에 거주하는 팀원 1명이 있어서 어차피 모두가 사무실에서 대면 미팅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무실에 점점 안 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팀원들과 업무와 관련없는 수다를 떤다거나 팀원이 아닌 사람들을 우연히 알게 되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팀원은 아니지만 나의 슈퍼바이저(부장님 정도 될 것 같다)인 톰과 대면할 기회가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당장 톰에게 할 말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간 톰이 내 얼굴을 까먹을 것 같았다.
본부의 사무직들과 오프라인 샵이나 물류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모두 합하면 6백 명쯤 된다고 한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따로 없다 보니 우리 회사는 1년에 한 번 거대한 파티를 기획한다. (우리 팀의 경우 팀회식은 아예 없다) 작년 파티는 내 휴가 기간과 겹쳐서 가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톰에게 얼굴 도장도 찍을 겸, 그리고 이런 자리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니 확인도 할 겸 참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번 파티는 토요일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베를린 시내의 대형 레스토랑에서 진행되었다. 가기 전에는 사실 많이 긴장되었다. 우리 팀의 베를리너 팀원은 나까지 세 명인데, 그중 한 명인 닉은 한 달간 필리핀을 여행하며 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만 호텔 오피스(?) 중이었고, 또 다른 팀원은 일이 있어 못 온다고 말했던 터라, 여기 가면 슈퍼바이저 말고는 다 모르는 사람뿐일 것이 분명했다.
시간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6시쯤 도착한 장소는 마당이 딸린 연회장의 모습이었다. 마당에는 탁구 테이블과 벤치, 와플과 즉석 꼬치류를 제공하는 부스가 있었고, 야외에 삼삼오오 모여 서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만 해도 꽤 많은 수였다. 연회장에 들어서자 적어도 3백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홀의 절반 정도는 긴 테이블과 좌석이 있어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앉아 있었고 한쪽 벽면엔 음식과 음료가 마련된 뷔페, 다른 쪽엔 커피와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바가 있었다. 앞쪽 절반 공간은 서서 이야기하거나 모일 수 있는 높은 원형 테이블이 깔려 있었다.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는 3백 명의 그룹이라니. 나는 어차피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려는 마음으로 온 곳이니까 용기를 내자는 다짐을 되새겼고, 홀에 들어가자마자 처음으로 눈 마주친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했다.
"안녕, 나 OO팀에서 일하는 보라라고 하는데, 여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마케팅 팀이라고 하는 이들은 다행히도 친절히 나를 그룹에 포함시켜 주었다. 나는 마케팅 팀과 와플도 먹으러 가고, 경품 추첨도 함께 구경했다. 그중 누군가가 <Bay Watch>에 나온 배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어떻게 이걸 모르냐는 표정이었다.
"Bay Watch를 안 봤어? 너... 어디서 왔어...?"
란다.
"한국. 아, 그거 프렌즈에 나오는 애들이 보던 드라마 아니야?"
나는 2020년쯤 (뒤늦게서야) 미국드라마 프렌즈를 보기 시작해 비교적 디테일을 잘 기억하고 있는데, 프렌즈의 챈들러가 흐뭇한 눈빛으로 보던 드라마가 Bay Watch였던 것 같다. 그 외에는 내가 Bay Watch를 접할 일은 없었고, 이건 한국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 이 사람에겐 놀라 자빠질 일인가 보다. 어쨌든 이 사람 말로는 Bay Watch는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최초의 대중 드라마라나. 나는 오랜만에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마케팅 팀은 이제 키커(테이블 축구)를 하고 싶어 했다. 나도 따라가서 구경했는데, 나는 이걸 보면서도 '앗, 이거 프렌즈에서 챈들러랑 조이네 집에 늘 가구처럼 놓여있던 거!'라는 생각을 해야 했다. 프렌즈를 본 게 서양의 대중문화에 대해 이렇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니. “나 이거 한 번도 안 해봤어!“라고 했더니, 베를린에는 키커가 없는 사무실이 없다고, 웬만한 직장인이면 키커를 사무실에서 해봤을 거라고, 마케팅 팀의 친절한 알리가 설명해주었다. 그들 틈에서 한 판은 구경을 하고 한 판은 나도 직접 도전했지만, 물론 졌다.
분위기가 꽤 무르익어 무대 쪽으로 나와 춤을 추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이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 회사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기서 회식이란 그냥 사람들을 한 자리에 풀어놓고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놀게 놔두는 거구나, 하는 감상.
이제 마케팅 팀과 우르르 다니는 것도 약간 피곤해져서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몇 달 전까지 우리 팀에 있다가 다른 팀으로 간 리아였다. 세상 반가운 듯 인사했지만, 리아는 몸 상태도 안 좋고 이 파티 완전 실망이라며 곧 울상을 지었다. (리아는 이탈리아인인데, 늘 솔직했다) 게다가 리아는 얼마 전에 헤어진 전남친이 이 근처 사는데 이거 끝나고 만나러 갈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나저나 넌 남자친구 있니?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다음 주에 우리 회사를 떠나는 리아의 직속상사가 사실살 해고당한 거나 다름없다는 등의 오피스 가십까지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홈오피스를 하며 아낀 체력에 비해, 놓친 것이 사실 꽤 많은 건 아닐까.
물론 톰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숙제 해결하자는 기분으로 톰을 찾아 나섰고, 생각보다 오래, 생각보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톰이 나를 아직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벌써 저녁 9시인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폭탄주도, 건배사도, 잔 돌리기도 없었던, 내 인생 첫 베를린 회식에서 나는 베를리너의 삶의 한 장면을 들여다보는 관광객이 된 기분이었다. 이게 내 삶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관광객이 된 기분. 미드에서 보던 그런 일들이 내 삶에서 일어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