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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Oct 06. 2023

나는 베를린에서 한국인이 되었다

삶의 풍경을 멀리서 지켜보기

일상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카페의 창가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 어느 여름 저녁 강변의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을 꽉 채운 사람들, 와인잔을 사이에 두고 나는 알 수 없는 대화에 세상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 강둑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 직접 풍경의 일부가 되면 똑같은 감상이 생겨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와 알맞은 각도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예뻐 보이던 카페 창가 테이블 자리에 직접 앉아 보면 예쁘다고 생각했던 그 풍경을 볼 수 없는 위치에 처한다. 강변에서는 때때로 한가하게 흘러가는 유람선을 탄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데, 벼르고 별러서 유람선을 타보제일 멋있는 풍경은 반대로 강변에서 혼자 또는 같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베를린 슈프레 강변에서 바라본 어느 파티 보트의 모습
관광객 기분 낼 겸 어느날은 베를린 도심을 가로지르는 관광 유람선을 탔다. 그러자 강변의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어떤 풍경은 멀리서 지켜만 봐야 더 아름답다. 해외 생활이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파고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곳도 모두에게 파라다이스일순 없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걱정과 고민이 있다. 그렇지만 일상의 스트레스에 잠식되면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그 어떤 풍경도 아름답게 관찰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여행자나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이는 내 삶의 풍경이 내가 서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한 번씩 일상의 도화지에서 몇 걸음 걸어 나와서 내가 있던 곳의 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감각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어디에 있든 가만히 일상의 방향만 바라보며 걸어가면 내 시야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내가 서있는 지금의 이곳이 멀리의 누군가가 꿈꾸는 아름다운 풍경일지도 모른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남의 시각에서 내 삶을 들여다볼 줄 아는 기술은 뜻밖의 깨달음을 줄지도.


내가 자란 시골 마을이 고즈넉한 멋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걸 서울에 나가 산 이후에야 깨닫게 된 것처럼, 내가 한국에서 누렸던 것들을 한국 밖에서 깨닫게 된다. 한국에선 한식이 흔해 귀한 줄 모르고 빵과 피자를 더 좋아하는 빵순이였지만 독일에서는 밥과 김치를 한동안 소홀히 하면 탈이 나는 그런 체질이 되어버렸다. 모국어로 반사적으로 뱉어냈던 빈말들, 가식이 싫어서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외국어로는 빈말과 가식이 어려워 약간 모자란 사람이 된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확실히 내가 한국의 나보다 훨씬 존재감도 연줄도 적은 '그저 아무개' 같은 신분이라 시간적 여유가 많. 일, 과제, 시험 같은 화두들이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게 하긴 하지만 가끔씩 내가 선 풍경을 뒤돌아볼 여유가 있다. 그런 순간에서 글의 첫 문장이 탄생한다. 글을 쓰며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내 삶의 무늬를 찬찬히 들여보려고 한다. 그 글 속에서 나의 한국적인 얼굴을 발견하면 놀랍고도 재미있다. 내 생각과 느낌은 결국 한국의 어떤 것과 연관되어 한국어로 표현되니 말이다. 독일 일상에서, 해외여행에서 느끼는 새롭고 이국적인 모든 것들도 한국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거울삼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내 안의 한국스러운 것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하며, 나는 베를린에서 진짜 한국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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