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층에서 단추만 누르면 삽시간에 지상으로 내려온다. ... 물론 연탄불을 갈 시간 같은 것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이렇듯 편리하게 사는 데도 뭔가 중심이 잡히지 않은 채 겉돌아 가는 것 같았다.
... 잘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우리는 보행의 반경을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차단된 시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동작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활발한 사고 작용도 따른다. 툭 트인 시야는 무한을 느끼게 한다.
그곳에는 수직 공간은 있어도 평면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이웃과도 온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흙이다. 그렇다, 인간의 영원한 향수 같은 그 흙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추상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마치 온실 속의 식물처럼. (p. 42 - 44)
인간 존재에 있어서 기본적인 구조는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는 없다. 서로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저쪽의 불행이 내게 무연하지 않다. (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