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정 Jan 17. 2022

댄스스트리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님비> 관람 이틀 후 다시 시청을 찾게 되었다. <님비> 관람 후폭풍으로 <댄스스트리트>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는데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홍대가 떠올랐다. 영화의 주제가 딱히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요소는 없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퇴근 후 현대백화점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시청으로 향했다. 이틀 전에는 티켓 발권부터 상영관까지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어 미처 기념품을 구매하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영화제인 만큼 기념품을 사서 남겨두어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인터넷 굿즈샵에서 미리 본 리유저블컵을 판매처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환경을 생각했다기보다는 컵의 가격이 저렴했고 공식 기념품 중에 그나마 실생활에서 가장 쓸모 있는 물건인 것 같아서였다. 굿즈샵으로 들어가니 여러 명의 스텝이 나를 반겨주었다. 리유저블컵은 판매상품으로 진열이 되어있지 않아 스텝에게 문의 후 컵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손님이 별로 없었는지 내가 컵을 계산하고 뒤돌아서자마자 그들끼리 “드디어 컵 하나 팔았다.”며 안도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영화 상영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한 후 바로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지난번과 똑같은 독립영화전용상영관이었다. 제일 먼저 입장해서 관객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것을 관찰했다. 나처럼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화 관람을 하러 온 직장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VIP 초대권을 여러 기관에 다량 배부했을 거라는 나의 합리적 의심이 들어맞는 것 같았다. 일단 영화를 예매할 때의 온갖 번뇌는 잠시 잊고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감독의 인사 영상이 끝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둔탁한 비트와 알 수 없는 발음의 홍콩 랩이 흘러나왔는데 굉장히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거시설이 아닌 산업용 건물을 임대해 단속반을 피해 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예술인들에 대한 이야기인 듯했는데 부동산 문제는 한국과 홍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영화는 길거리 예술인과 연예인 지망생이 함께 찍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중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출연자들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지역의 상권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신축 상가를 홍보하는 광고까지 촬영하게 되자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면서 기존에 거주하던 예술인들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상을 다룬 것 같았다. 주목받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과 거대 자본가 사이의 욕망이 맞아떨어지면서 거리의 상업화는 가속화된다. 

  점차 예술인들이 설 무대가 사라지게 되면서 그들의 생계까지 위협받게 되는데 감독은 현재 홍콩에서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의 처지를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상업용 광고 모델로 서면서 화면에 잘 잡히도록 위험하게 바꾼 춤 동작을 소화해야만 하는 현실이 이전의 무용수로서의 삶과는 완전히 달라진 그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자신을 잃어버린 상업화된 예술가와 거대 자본의 그림자에 가려져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계속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예술가 사이의 갈등을 보며 예술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며칠 전 독립을 꿈꾸며 LH에서 모집하는 청년계층 일반공급 행복주택에 청약 신청을 했다. 무주택자이지만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입장에서 영화를 관람해서인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세입자의 이주가 아직은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며 벌어들인 소득을 꾸준히 모으다 보면 몇십 년 뒤에는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 막연하게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추세로 미래를 예측해봤을 때 상승하는 집값을 내 소득이 따라가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민간 건설사에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한 비용을 부담하기에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되어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던 차에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서 한참 건물을 올리고 있는 행복주택에 청약을 넣기로 했다. 다른 공공임대주택에 비해 청년계층 세대수가 많이 배정되어있는 사업지구라 동생에게도 접수하라고 알려주었다. 임대보증금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행복주택에 당첨되기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맞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만에 하나 청약에 당첨된다면 대출을 받을 생각이었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뒤얽힌 채 영화와 현실을 오가다가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영화 속 비트와 랩이 생각났다. 홍콩식 영어 발음이 처음에는 살짝 웃겼는데 들을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댄스스트리트> OST를 검색해봤는데 흥행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아니라서 그런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가끔 구글과 유튜브를 검색해보는데 해당 음원은 찾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며칠 뒤 LH 행복주택 청약 당첨 결과가 발표되었다. 나와 동생은 자동차도 보유하지 않았고 청년계층의 총자산 기준을 모두 만족했음에도 서류제출 대상자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탈락했다. 

이전 09화 님비: 우리 집에 오지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