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화려한 발레 공연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부천문화재단에 발레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지 일정 확인 차 홈페이지에 방문했다. 원하는 공연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알쏭달쏭한 공지사항 하나를 확인하게 되었다. 판타스틱 씨네클래스 ‘다큐멘터리와 인문학을 잇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상영 종료 후 명사의 강의를 듣는 형태인 것 같았다. 기존에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의 프로그램이라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 홍보문을 몇 번이나 정독했지만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평소에 관람하고 싶었던 다큐멘터리 영화인 ‘그레타 툰베리’가 상영 예정에 있었다. 상영일이 3일밖에 남지 않아 결정이 촉박한 상태였는데 밀폐된 영화관에서 관객들과 밀집된 상태로 꼭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면서 예매를 망설였다. 때마침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의 전환인 위드코로나가 시행되면서 정부에서 문화 소비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영화관 예매 시 6천 원이 할인되는 쿠폰을 뿌리기 시작했다. 할인 쿠폰을 적용하면 단돈 천 원으로 영화 관람과 명사의 강연까지 수강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니 일단 예매를 해놓고 못 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퇴근 후 곧바로 부천국제영화제를 상영했던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로 갈 생각으로 영화를 예매했다.
관람을 하루 앞둔 저녁 갑작스럽게 복지관 직원의 어머니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복지관 전 직원이 오전에 문상을 갈 예정이니 함께 가자고 연락이 왔는데 오전 시간에는 도서관에 단시간 근로자가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같이 갈 수 없었다. 퇴근 후 바로 조문을 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장소였지만 부천역 인근이라서 혼자서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 입구에서 상복을 입은 사람에게 조의금을 전달했다. 기관명의의 조의금 봉투를 보고 가족들이 직원을 불러내 주었다. 문상을 마치고 동료에게 위로를 건넸다. 원체 밝은 성격이라 그런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는데 그게 더 안쓰러워 보였다. 혼자 조문을 갔던 터라 식사를 하지는 않았고 간단하게 떡과 음료를 마시며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동료의 대학시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퇴근한 조문객들이 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비워줘야 할 것 같아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장례식장을 나왔다.
워낙 서둘러서 급하게 조문을 한 터라 시계를 보니 아직 7시가 되지 않았다. 발레나 연극 같은 공연은 중간에 관객이 입장을 할 수 없지만 영화는 상영 중간에도 상영관 안으로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반부라도 관람하자는 생각으로 부천시청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몹시 습하고 주위가 어두웠는데 장례식장보다 어두컴컴한 불 꺼진 시청 청사 안으로 들어가려니 기분이 싸했다.
상영관으로 입장하려면 판타스틱큐브 도서관으로 들어가서 표를 보여줘야 하는 것 같았는데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들어가도 되는 건지 한참을 망설였다. 도서관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니 불 켜진 사무실이 보였다.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각자 컴퓨터와 핸드폰을 하느라 사람이 왔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문을 두드려 인기척을 내자 직원이 나왔고 담당자에게 카카오톡 예매내역을 보여주자 기념품과 팜플렛을 건네받은 후 상영관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난 것 같았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 쾌적한 환경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레타 툰베리에 대해서는 뉴스에서 많이 접한 터라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녀가 결석 시위를 시작한 것인지에 대한 나의 근원적인 궁금증을 해결해 줄 영화의 시작 부분을 날려먹어 관람하는 의미가 무색해져 버렸다.
영화가 끝난 후 상영관의 딤머가 켜졌다. 관람석 끝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던 사람은 프로그램 담당자인 것 같았는데 사무실에서 직원과 강사를 데려왔다. 강사가 환경 분야에서 꽤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았다. 강사는 PPT 슬라이드를 화면에 띄우고 환경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급하게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한 상태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강사는 수강생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소통하고 싶은 것 같았는데 워낙 소수의 인원이 모인 상태였고 그마저도 몇몇은 직원이거나 관계자인 듯했다. 강의의 질은 상당히 좋았지만 강사가 기대했던 수강생과의 상호작용이 원활하지 않아 살짝 민망했다.
나는 내향적인 성향이라 군중 속에 묻어가는 것을 선호하는데 적은 인원으로 진행하는 일회성 강의에서 담화를 요구하는 상황이 조금 불편했다. 프로그램의 주제와 기획 의도는 매우 좋았지만 다시 참여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