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흰 물건들
여러분은 흰 물건을 몇 개나 가지고 있나요? 이렇게 물으면 '하얀색이야 셀 필요도 없이 집 안에 널려 있지'하고 어깨를 으쓱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종이나 지우개, 휴지처럼 원래 하얀 물건을 제외하면 의외로 발견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흰 물건, 자주 손이 가나요? 미니멀한 삶에 관심 있거나 깔끔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은 고개를 끄덕일 같지만, 반대로 흰 물건은 때가 타서 관리가 어렵다고 손사래를 칠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용품의 색이 쉽게 바래고 더러워지면 그것 또한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물건에는 보다 흥미로운 효용이 있습니다. 바로 얌전하고 너그럽다는 것입니다.
물건이 얌전하고 너그럽다니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함부로 우리의 의식에 침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색은 저마다 고유의 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보리나 베이지색은 따뜻함, 노란색은 즐거움, 초록색은 싱그러움과 생명력, 파란색은 시원함, 빨강은 흥분과 정열 등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들을 볼 때마다 은연중에 시시각각 감정에 휩쓸립니다. 분홍색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금색을 보며 풍요로워졌다가 회색을 보고 시크하게 가라앉기도 하고 갈색을 통해 포근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든 물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특정한 정보를 우리의 의식 속에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흰 물건은 조용합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그저 다소곳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흰 접시와 흰 컵이 놓인 따사로운 식탁을 상상해 보세요. 또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보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물건들이 흰색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봅시다. 한 순간에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지 않나요? 온갖 잡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 단번에 쾌적해지는 느낌에 짐짓 놀랄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삶과 마음가짐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스트가 괜히 흰색을 사랑하는 게 아닌 듯합니다. 깔끔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그 자리를 정화하여 더 아름답고 쓸모 있는 것을 들일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해 주는 것이지요.
흰 물건은 매 순간 사사로운 명상의 순간을 선사합니다. 흰색 자체가 지닌 깨끗하고 고요한 느낌이 공간에 여백과 숨을 불어넣습니다. 물론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일일이 의식하며 물건을 사용하진 않지만, 흰 물건은 언제 어느 상황에 손을 뻗어 사용하더라도 자기주장 없이 산뜻한 감각으로 선심껏 도와줍니다. 어떤 차림에도 흰 양말은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고, 흰 보울은 어떤 음식을 담더라도 깔끔하게 차릴 수 있으며, 흰 편지지는 귀한 사람에게 쓰더라도 품격을 갖출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삶의 모습이나 좋아하는 것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이런 물건은 흰색으로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을 듯한 물건 열 가지를 추천해 볼까요.
1. 흰 잠옷
2. 흰 그릇
3. 흰 편지지
4. 흰 양말
5. 흰 수첩
6. 흰 소창수건
7. 흰 컵
8. 흰 가방
9. 흰 찻 잔
10. 흰 이불
이유 없이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집 안이 부산스럽게 느껴진다면, 소란스러운 일상이나 공간에 단정하고 말끔한 감각이 필요하다면, 내가 사랑하는 흰 물건을 들여 보세요. 참, 흰 물건은 아기처럼 부드럽고 조심히 다루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물건과 일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한층 신중해지고 다소곳해지기 마련입니다. 경건한 마음이 조금씩 스며드는, 평화롭고 순수한 일상을 살아보세요.
추신. 여러분이 추천하는 흰 물건이 궁금합니다. 또는 '이것은 무조건 흰색으로' 하며 고집하는 물건이 있나요? 저는 아무래도 흰 양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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