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올라온 계절의 단맛
어쩌다 보니 ‘밤 투어’를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앙증맞고 구수한 밤 디저트를 먹고 있는데요. 가을에는 아무래도 고소하고 달달한 것이 끌리는 모양인지, 자꾸만 식탁 위에 소박하고도 탐스러운 가을 간식이 등장합니다. 주말마다 맛있는 가을 디저트가 없나, 두리번거리며 카페를 고르는 요즘입니다. 원래 디저트를 꼬박꼬박 곁들이는 타입이 아닌데도, 요즘은 라떼가 맛있는 집이나 글쓰기 좋은 탁상이 있는 집보다, 맛있는 제철 디저트를 구워내는 카페를 찾으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간식으로도 계절을 감상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얼마 전 대구로 여행을 갔다가 ‘페코’에서 가을의 화과자를 맛보았던 날이었습니다. 먼저 시원한 차로 입맛을 돋운 후, 단아한 그릇에 다소곳이 놓인 화과자 상차림을 맞이했습니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알록달록한 색감과 섬세하게 빚어낸 손길이 담긴 모양새에 혀보다 눈이 먼저 반짝였습니다. 노을 지는 하늘과 그 속을 나는 잠자리를 홍옥 사과와 앙금으로 표현한 ‘노을’, 단풍이 드는 울긋불긋한 산을 햇 밤고구마 앙금과 구수한 버터, 검정깨로 층층이 표현한 ‘가을산’, 노란 단호박 앙금 위에 우아한 꽃무늬가 아름다운 ‘국화’, 밤조림을 옥광밤으로 만든 반죽으로 감싼 ’쿠리킨톤‘까지, 바쁜 일상을 살며 잊고 있던 가을 풍경과 시적 정취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한바탕 휩쓴 후 어느새 낙엽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 위에, 잠자리가 나는 붉은 하늘과 흙내음이 나는 산의 정경이 차례차례 포개졌습니다. 식탁 앞에 앉아 차 한 잔과 디저트를 맛보았을 뿐인데, 가을을 만끽하는 여행을 훌쩍 떠나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과와 밤, 단호박의 상큼하고 구수한 맛의 매력에 푹 빠져, 이것이 가을의 맛인가... 하며 뿌듯한 마음을 조물거렸습니다.
계절이 오롯이 담긴 간식에 애틋함을 느낀 건 그때부터일까요. 그 후 서울에 올라와서도 카페에 가면 평소에 먹을 수 있는 스콘이나 케이크보다, 제철 음식이 들어간 디저트를 고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월요일에는 망원동의 ‘커피하우스’에서는 호지라떼와 함께 ‘밤만쥬’를 먹고, 토요일에는 연희동의 ‘헷키’에서는 따뜻한 드립커피와 함께 ‘밤 몽블랑’을 먹었습니다. 흙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릇 위에 놓인 작고 귀여운 밤 모양의 만쥬를 아작아작 깨물으며 책도 읽고, 바삭한 타르트 위에 얹어진 구수한 커피밤크림과 밤조림을 조심스레 쪼개먹으며 따사로운 늦가을을 보내는 나날입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사과 파이나 단호박 수프도 맛보고 싶군요.
꼭 가을이 아니어도 언제든 식탁에 계절을 오롯이 품은 달콤한 간식을 올릴 수 있습니다. 여름엔 복숭아나 무화과, 곧 다가올 겨울엔 딸기를 즐겨도 좋겠지요. 소박한 그릇에 담긴 귀여운 제철의 맛을 사랑해 보세요. 계절을 누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지 알아채고 마음을 쏟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보통날 속에서 가볍게 떠나보는 그러한 여행은 풍요로운 일상을 켜켜이 포개어 다음 계절로 나아가는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