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시 Feb 04. 2024

좋은 펜 한 자루의 힘

펜은 칼보다 강하다

처음으로 펜을 선물 받았던 기억은 첫 회사에서 미국 여행을 다녀오신 대리님으로부터였습니다. 유명한 독일의 LAMY 사의 은색 볼펜이었는데요. 그 펜을 주면서 대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원 님은 쓰는 사람이니까, 좋은 생각을 이 펜으로 잘 적길 바라요.” 하지만 더더욱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다음에 이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좋은 볼펜이 있으면 중요한 싸인 할 기회도 많아진다고 하는데요. 소원 님에게 그런 기회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 펜과 함께 뉴욕 MOMA 미술관의 노트 굿즈를 받았던 저는, 언젠가 나도 미국으로 진출하고 마리라는 야망을 키우며 한동안 그 노트에 펜으로 영어 문장을 적곤 했습니다.


그 후로도 좋은 펜은 좋은 기회를 불러온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을 때, 펜이 불쑥 떠오릅니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의 대표이자 친구인 D님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도 광택이 좋고 조금 묵직한 볼펜을 골랐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일을 불러 올 많은 계약들이나 사인을 해야 할 순간마다 그 볼펜을 사용하길 바라면서요.


그러다 얼마 전, 저의 생일날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저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해 주었는데요. 다름 아닌 제 이름이 영문으로 각인된 PILOT 만년필이었습니다. 손바닥 크기보다 살짝 작은 아담한 크기에 살짝 와인빛이 감도는 브라운 컬러와 광택이 너무도 고급스러웠습니다. 뚜껑에 새겨진 우아한 영문 이름을 보니 가슴속에서 뭉근히 희열이 번지면서, 새삼 ‘쓰는 사람’이라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 만년필로 적는 모든 글이, 내 이름을 걸고 적어내려갈 단어이고 문장이겠구나, 하는 비장한 각오도 들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 싸인해 줄 때 쓰세요”라고 동료가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함께 받은 가죽 케이스에 만년필을 휴대하며 가방 속에 늘 넣어두고 다닙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어의 힘과 책임을 보여주는 말이지요. 그러한 귀한 언어와 말을 실어 나르는 도구인, 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CEO나 품위 있는 사람들이 만년필이나 고급진 펜을 들고 서류를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만약 그 펜이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500원짜리 볼펜이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펜이란 잉크만 잘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작은 도구가 나의 영향력과 지위를 보여주는 디테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칼을 품은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칼보다 강한 펜을, 소중히 다루며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어떠할지요.


언제 어디서 꺼내 보여도 ‘이 사람, 센스 있네’ 하고 보일 수 있는 좋은 펜 한 자루, 또는 내 이름을 각인한 하나뿐인 펜을 품 안에 고이 지녀 보세요. 내가 실어 나르게 될 단어와 문장들에 책임감이 더해질 거예요.


 

이전 04화 손을 관리하고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