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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Feb 11. 2024

딱 좋은 무게의 물건들

엄마가 그릇을 바꾼 이유

설을 맞아 본가에 내려왔습니다. 며칠 내내 할머니댁을 오가며 밥을 먹다가 오늘에서야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탁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싶었더니 다름 아닌 그릇이었습니다. 여태껏 늘 써 오던 곱고 묵직한 도자 그릇은 어디 가고 여느 백반 식당에서 흔히 볼 법한 가볍고 흰 평범한 그릇들이 놓여 있던 것입니다.


"그릇 바꿨어?" 물어보니 "설거지할 때 손목 아파서"라고 하더군요. 친구로부터 좀 더 가벼운 그릇으로 바꾸라는 잔소리를 들었다고요. 플레이팅에 그렇게 목숨을 걸던 엄마가 아끼던 도자 그릇들을 포기할 정도라니, 살림의 무게감과 더불어 세월이 무서워집니다.


새삼 물건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물건들의 딱 좋은 무게감 말입니다. 매일 사용하느라 무던해진 물건 중에 생각해 보면 쓸데없이 무겁거나, 경망스럽게 가벼운 물건이 있지는 않나요?


저는 벌써 7년째 사용하고 있는 맥북이 떠오릅니다. 종종 '이걸로 머리 치면 살인미수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거나 여행을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화면이 작아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는 이보다 작은 인치의 제품을 사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휴대폰을 고르는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폰 13 미니를 쓰고 있는 저는 큰 화면이나 성능에 욕심이 별로 없습니다. 오래 들고 있어도 손목에 부담이 없고, 어떤 사이즈의 주머니에든 쏙쏙 들어가는 크기의 미니 라인이 제 생활에는 딱 좋습니다.


가벼울수록 좋은 물건이 있는가 하면, 상황에 따라 조금 묵직한 듯한 것이 좋은 물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평소 혼자 하는 식사를 위한 그릇은 가벼운 것이 산뜻하니 좋지만, 귀한 손님을 초대하거나 특별한 식사에는 조금 묵직한 그릇과 커트러리를 곁들이는 편이 훨씬 분위기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데일리하게 착용하는 시계는 가벼운 것이 좋지만, 정장을 입어야 하는 귀한 자리나 공식적인 행사에는 조금 묵직한 시계를 차는 편이 그에 따라 자세와 마음가짐도 바로서는 느낌이 납니다. 또 낙서를 하거나 기록할 때 쓰는 펜은 가벼울수록 손목이 편하지만, 중요한 싸인을 할 때나 편지를 쓸 땐 조금 묵직한 듯한 펜을 드는 것이 글씨도 날아가지 않고 보다 신중한 손가짐을 만들어 줍니다.


상황에 따라 가벼울수록 좋은 물건이 있고, 조금 묵직해야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요. 무엇보다 나에게 딱 좋은 물건의 무게감을 의식하고, 그에 알맞은 물건을 잘 들이는 것을 기본으로 둡시다. 내가 쓰는 물건의 무게감은 곧 생활의 무게감입니다. 가벼울 데는 가볍고, 묵직할 데는 묵직하게 일상의 굴곡을 부드럽게 가꾸어 한층 산뜻한 생활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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