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시 Feb 18. 2024

단순한 욕실의 풍경

미니멀리즘은 1평에서부터

6평짜리 작은 단칸방인 저희 집에서 가장 단순한 장소는 다름 아닌 욕실입니다. 물건의 개수를 하나하나 손꼽아 셀 수 있는 정도입니다. 지금 한 번 세 볼까요? 세면대에는 칫솔, 치약, 핸드워시가 전부입니다. 캐비닛에는 양치컵, 클렌징폼, 헤어밴드, 서브용 바디워시, 수건, 면도기, 여성용품, 드라이기를 둡니다. 바닥에는 샴푸, 린스, 바디워시가 하나씩. 청소용품은 청소솔, 변기솔, 수세미, 스퀴지 4가지. 마지막으로 변기 위에는 캔들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모두 합해 18개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욕실에 몇 개의 물건이 있는지 세어 보세요)



여기서 더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습니다. 예전에 마음먹고 욕실의 물건들을 한눈에 살펴보고 싹 정리한 이후로 줄곧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늘 ‘물건 사이마다 여백이 있는 서랍이나 캐비닛’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요. 욕실의 캐비닛으로 그 로망을 이룬 셈입니다. ‘수납’이라고 하면 얼마나 방대한 물건을 한정된 공간 안에 알차게 쑤셔 넣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쉽지만, 물건을 수납하는 것의 기본은 어쩌면 ‘여백’이 아닐까요?



수납이란 물건에 자리를 선물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건이 언제든 산뜻한 감각으로 손 뻗어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있게끔 적절한 위치와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도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라는 개념이 있듯이 물건에도 고유의 존재감으로 존재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주변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공간이 없을 경우, 물건을 꺼낼 때마다 그 옆의 물건까지 딸려 나오거나 떨어지고, 실컷 열심히 정돈한 공간이 흐트러지기 십상입니다. 옷과 가방의 경우에는 서로 낑겨 구겨지거나 습기가 차기도 합니다. 예쁜 소품이나 그림 액자, 화분도 물건들에 꽉 둘러싸여 있으면 고유의 아우라를 내뿜기 어렵습니다. 주변이 탁 트였을 때 물건의 아름다운 형태도 고스란히 돋보일 수 있습니다.


집이 좁거나 인원이 많아 현실적으로 늘 그렇게 여유로운 수납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면,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공간으로 욕실을 골라 보세요. 욕실의 물건들은 대개 용도가 확실히 정해져 있고 사용 유무를 고민 없이 답할 수 있어 미니멀라이프를 도전하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욕실의 물건은 용도별로 하나 또는 꼭 필요한 개수만큼만 둘 것, 치약 같은 생필품을 괜히 몇 개씩 쟁여두지 않을 것, 매일 쓰지 않는 물건은 욕실이 아닌 곳에 보관해 사용할 때만 꺼내어 쓸 것, 캐비닛이 넓다고 해서 이런저런 물건을 두지 않고 꼭 필요한 물건만을 띄엄띄엄 여백을 충분히 두어 놓아둘 것. 단순한 욕실의 풍경을 만드는 힌트랍니다. 미니멀리즘은 1평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이전 06화 딱 좋은 무게의 물건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