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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Mar 03. 2024

나에게 꼭 맞는 커피

취향을 찾아준다는 것

1년 만에 도쿄를 찾았습니다. 도쿄에 가면 ‘새로운 나다움’을 꼭 하나씩 발견하곤 합니다. “알고 보니 나 이걸 좋아하네?”하고 깨닫는 순간의 산뜻한 기쁨은, 취향을 찾아주는 도시 도쿄에 오면 꼭 느끼고 돌아가는 소중한 기분입니다. 오늘은 아메리카노는 서툴던 저에게도 꼭 맞는 커피를 찾아 준 공간, ‘커피 마메야(KOFFEE MAMEYA)'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25칸의 표에 따라 큐레이션된 마메야의 원두들. 달라지거나 새로운 게 추가되기도 한다. 원두를 구매하면 원두에 가장 적절한 브루잉 레시피를 손수 적어 동봉해 준다.


’커피 마메야‘는 커피 본연의 맛을 끌어내는 다양한 원두를 로스팅해 큐레이션하는 특별한 커피집입니다. 총 25칸으로 이루어진 표를 기준으로, 각 칸에는 마메야에서 전문적으로 로스팅한 다양한 원두들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약배전부터 강배전, 옅은 색부터 아주 짙은 색까지, 원두의 이름도 무척 다양해 여러모로 생소할 따름입니다. 처음 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약을 처방받는 약국처럼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바리스타와 대화하며 나에게 꼭 맞는 원두를 찾아가게 됩니다.


대화를 해 가며 추천 받은 원두를 하나씩 직접 추출해, 커피로 내어 주신다.


“산미가 강한 쪽과 약한 쪽, 어느 걸 선호하세요?”라는 질문에 “산미 없는 고소한 쪽이요”부터 “평소 산미 없는 게 좋지만 새로운 맛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까지 자유로운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스무고개를 하듯 질문과 대답을 이어 가면서 몇 가지 원두를 추천받습니다. 다크초콜릿을 닮은 가장 까만 원두, 홍차의 느낌이 나는 원두, 구운 사과 향이 나는 원두, 시나몬 향이 나는 원두 등등요. 그동안 원두라면 ‘무조건 산미 없는 것’만을 외쳤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향과 질감을 가진 원두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재미있고 신선하더군요. 각 원두에 어울리는 추출 방식을 따라 핸드드립이나 콜드브루로 내린 커피를 한 잔씩 맛보면서 취향에 맞는 원두를 하나씩 골라갑니다. 마치 커피 오마카세를 경험하는 기분도 듭니다. 마일드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이 인상 깊은 원두가 있는가 하면, 입 안에 계속 향의 여운이 남는 원두, 커피라기 보단 새로운 음료를 마시는 듯한 원두도 있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양한 커피 맛의 향연에 흠뻑 취해 동료들끼리 서로 어떤 커피가 마음에 드는지 재잘재잘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맛본 6가지 원두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Haile Selassie' 원두를 구매했습니다. 커피에 대한 견문을 넓혀 앞으로도 더 다양한 맛을 탐구해 보고 싶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나섰습니다.


집에 와서도 당시의 즐거운 경험을 되살리며, 적어주신 레시피를 참고해 직접 커피를 내려 볼 수 있다.


취향을 찾아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표준’이 아닌 ‘기준’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 마메야에서는 커피의 표준이 아니라 다양한 기준을 제안해 내게 꼭 맞는 맛의 원두를 찾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비단 이곳뿐이 아니라 일본의 많은 식당에서는 밥이나 면의 사이즈를 고를 수 있습니다. ‘츄모리(중)‘, ’오오모리(대)‘를 주문해도 금액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꼭 맞는 밥 양이 다르기에 ’표준 금액‘이라는 개념도 없는 것이지요. 한 번은 어느 라멘집에 들어가 “보통 저만한 여자가 먹을 만한 양은 어느 정도인가요?”라고 묻자 “사람마다 다르지요. 여성 분도 많이 드실 수 있으니까요”라는 주방장의 우문현답에 인상 깊었던 적이 있습니다. 올시즌즈 커피에서 아이스크림 푸딩을 먹을 때도 ‘카라멜 시럽’과 ‘에스프레소’ 두 가지 옵션을 선택할 수 있었고, BUNDAN Coffee & bar에서 주문한 셰익스피어 스콘은 무려 5종의 소스 가운데 두 가지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실은 나다운 선택을 거듭하며 발견한 ’기본의 커피’


이렇듯 도쿄에 머물다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사소한 것들을 계속해서 ‘조금 더 나다운 것’,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고르는 연습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 안에 새겨져 있던 사회의 ’표준’을 지우고 나에게 꼭 맞는 ‘기본’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매 순간 나로 다시 돌아가는 시간, 도쿄에서는 그런 순간들을 심심찮게 마주치게 됩니다. 취향을 발견한다는 것은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 더 나아가 ’표준‘에 속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쪽이 좋아? 저쪽이 좋아?‘ 질문하는 것이 아닐까요? 기본을 찾는다는 것은 나에게 꼭 맞는 커피 한 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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