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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Feb 23. 2024

다정함은 손끝에서부터

손끝이 다정한 사람이 됩시다

새삼 다른 사람의 손끝을 느낄 일이 자주 없다는 걸, 오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서 문득 떠올렸습니다. 미용실에 가면 저는 특히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한 사람의 손끝의 상냥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내맡기고 누워 샴푸를 받을 때면 기분 좋은 물의 온도와 함께 디자이너님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정확히는 손길이 아니라 손끝입니다. 머리카락을 사그랑사그랑 부드럽게 빗어 내리고 손끝에 신경을 집중해 두피를 꼼꼼히 만져주는 손끝을 오롯이 느낍니다. 가끔 너무 강하게 마사지해 주실 때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나오지만, 손끝의 강도나 속도와 상관없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마음을 쓰고 있구나’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 마음은 의외로 손끝에서 느껴지거든요. 똑같이 머리를 감겨주어도 디자이너 분마다 손끝의 감각이 사뭇 다릅니다. 조금 더 신중하고 섬세하고 상냥한, 그런 떨림이 느껴지는 손끝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은 다소 무뚝뚝해 보였던 수줍은 분일지라도, 얼마나 친절한 마음을 건네고 싶어 하는 분인지 느껴집니다.


꼭 머리를 할 때만이 아닙니다. 손케어를 받을 때나 속눈썹 펌을 받을 때도 누군가의 손끝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은 찾아옵니다. 별 다른 말을 나눠 볼 것 없이, 시술을 받는 순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이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그저 돈을 받고 해 줘야 하는 서비스를 해 준다는 느낌인지 눈앞의 사람의 손과 눈에 대한 다정한 마음을 품고 공을 들인다는 느낌인지 곧바로 느껴집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미묘한 파동이 가슴속으로 흘러 들어와 마음의 모양을 주무릅니다. 그 감각이 투박하게 느껴질 때면 저도 괜스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지 못하고 얼른 서비스를 받고 자리를 뜨고 싶어집니다. 반대로 장인이 흙을 빚듯이 조금의 촉촉함과 함께 부드럽게 주무를 때면 저도 좀 더 마음을 열고 오롯이 그분께 머리든 손이든 눈이든 믿고 내맡기게 됩니다.


가까운 사이에도 이런 순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친구가 목도리를 둘러주는 손끝, 할머니가 내 손을 연신 주무를 때의 손끝, 엄마가 신발끈을 묶어주거나 목걸이를 채워줄 때의 손끝. 살포시 잠시 닿았다 떨어지는 다정한 손끝들이 있습니다. 미용실에서 나와 근처 우동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30대 부부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처럼 보이는 분이 아내 분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는데, 그 순간 ‘이 분은 다정한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넘겨주는 손길은 종종 봐왔지만, 그러한 손끝의 아우라는 처음이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이후 계속 들려오는 대화에서도 이 분이 얼마나 상대를 애틋하게 여기고 있는지 고스란히 알 수 있었습니다. 비단 사람 사이가 아니더라도, 물건을 다룰 때의 상냥함도 손끝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나 투박하고 무신경하게 물건을 쥐고 쓰고 놓는지 혹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물건을 애용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손길은 세월을 거듭하며 물건에 고스란히 배는 법입니다. 물건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요?


한 사람의 다정함의 척도를 가늠하기란 어렵습니다. 말을 친절하게 많이 거는 사람이, 수줍어서 말을 잘 못하는 사람보다 무조건 더 다정한 사람이라 할 수 없듯이요. 하지만 때때로 그 다정함은 의외의 부분, 손끝에서 드러나 버립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순간, 조심스러워지고 연약해지는 손끝의 파동은 꾸며내고 조각할 수 없습니다. 마음 표현이 부족한 수줍은 사람일지라도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는 다정한 손끝이 있을 것입니다. 손끝을 다정하게 쓰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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