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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Mar 17. 2024

나만의 말씨를 알아가는 일

어떤 언어를 말하고 있나요?

10년 넘게 일본어를 말해 왔지만, 어쩌다 보니 누군가에게 제가 일본어를 말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늘 혼자서만 다녀오곤 해 가족이나 친구에게 일본에서의 제 모습을 보여줄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요. 얼마 전 도쿄 출장을 갔을 때 동료 J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소원님은 한국말보다 일본어로 말할 때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는 한 번도 의식해 본 적 없었는데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어마다 목소리를 내는 층위가 다르다고 해요.“ J님은 그렇게 덧붙였지만, 저는 그때 예전에 가마쿠라에서 만났던 사야 상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원쨩의 일본어는 丁寧해.”


‘丁寧(ていねい)’란 상냥하고 공손하다는 뜻의 일본어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제 말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일본인들도 이렇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해, 라는 사야 상과 술잔을 기울이며, 저는 속으로 ’丁寧‘라는 말을 오래 곱씹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도 그 단어가 제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태도와 방식을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바로 그런 말씨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은근히 기뻤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평소의 저는 차분하고 단정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할 때의 저는 조금 더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하며 악센트도 개성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어를 말할 때의 저는 또 다른 모습이 됩니다. 일본어 특유의 발성 구조 때문일 수도 있고, 일본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이 손윗사람이거나 초면인 이유도 있을 테고, 한국말을 할 때보다는 표현에 제한이 있기에 단어를 하나하나 고심하게 되어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어쩌면 저라는 사람은 일본어를 말할 때 조금 더 평소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방식을 자연스럽게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어적 태도. 저는 그걸 종종 ‘말씨‘라고 부릅니다. 글자를 쓰는 모양새를 ‘글씨’, 마음을 쓰는 모양새를 ‘마음씨’라고 말하듯, 우리는 늘 언어를 쓰는 모양새를 빚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고유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언어마다 문장구조도, 단어도, 억양도 각기 다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언어를 갈아 끼울 때마다, 마찬가지로 그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과 기분을 주무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말해 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내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적인 언어, 나의 라이프마인드에 더욱 어울리는 언어를 무궁무진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만의 말씨를 새롭게 알아가는 일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언어를 말하고 있나요? 또 어떤 언어를 말할 수 있나요? 나도 모르게 조금 더 편해지는 언어, 조금 더 내가 바라는 내가 되는 언어, 조금 더 나를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는 언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국말을 할 때 조금 더 솔직하고 활기찬 사람이 되고, 일본어를 말할 때 조금 더 정갈하고 담백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프랑스어를 말한다면 또 어떤 느낌이 될까요?


기본을 가꾼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기분 좋고 편안한 ’모양새‘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고유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며, 나만의 말씨에 귀 기울여 보세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말씨를 발견하는 탐험이 될 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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