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계절감을 새기다, 첫 번째 계절 봄
계절 큐레이션 제1편, 봄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라고 묻는다면 단번에 여름을 대답하겠지만서도, 봄이 오면 봄대로,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는 대로 좋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계절감'이 가장 뚜렷해서일지도 모를 정도로, 난 계절감에 심취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좀처럼 계절을 만끽하기 어렵다. 회사에 다니거나 학교에 다니면서 할 일에 치여 살거나 대부분 실내에 갇혀 있으며, 무엇보다 계절이 오고 자연물이 생동하는 이 현상을 주변 배경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 일일이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은 각기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다른 색감과 다른 냄새와 다른 소리들을 안고 찾아온다. 그 계절에 다이빙하듯 한껏 뛰어들어 우리의 일상도 한껏 물들어 봐도 좋지 않을까? 내 일상에 계절을 녹여낼 수 있는 나만의 카테고리를 정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카테고리들에 '계절다운' 변화를 주는 것이다.
계절감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계절감이라는 것은 계절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이다. 그러니 이 감각을 조화롭게 자극해주면 계절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풍부한 무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감 중 자신의 취향과 성향에 맞게 조금 더 집중하고 싶은 감각에 주목해 보는 것도 좋다.
그리하여 계절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 계절에 어울리는 나만의 카테고리로 일상을 색다르게 꾸며보는 '계절 큐레이션' 리추얼을 소개한다. 이번 편은 '봄', 봄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내가 제안하는 계절 큐레이션 카테고리와 함께, 봄을 맞아 각 카테고리 별로 변화를 주거나 실행한 일상의 모습을 공유한다.
1. 패브릭
큰돈을 들이지 않고 방 안의 분위기를 가장 즉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성비 홈데코 템, 바로 패브릭이다. 또한 컬러나 패턴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할 여지가 많아,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계절감을 가장 쉽게 반영할 수 있는 인테리어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여름 느낌이 나는 푸른 꽃무늬 테이블보를 깔고 있었는데, 봄을 맞아 분홍색 체크무늬 패브릭으로 테이블을 바꿔주었다. 햇살이 들이치면 금세 따뜻한 분위기가 방 전체를 감싸고돈다.
2. 향
양재에 있는 독립서점 '믿음문고'에 방문했다가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던 교토 기반 향 브랜드 '훈옥당'의 제품을 발견했다. 시그니처이자 전통적인 사찰의 향을 담은 '사카이마치 101'을 사고 싶었는데, 연분홍색 패키지의 '다이고의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봄을 맞아 벚꽃향으로 방을 가득 메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후자를 택했다. 일본에서 벚꽃을 보는 것이 오랜 로망인데, 간접적으로나마 방에서 일본의 벚꽃을 만끽하는 기분을 낼 수 있어 즐겁다.
3. 등산
봄은 등산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햇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선선해서, 자칫 차오르는 더위도 잔잔하게 식혀준다. 초록색 나뭇잎이라도 다 같은 초록색이 아니다. 봄에 산에 오르면, 햇살을 받아 한층 밝은 라임색으로 빛나는 나뭇잎들을 볼 수 있다. 여름과는 또 다른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다. 간간히 피어있는 꽃은 또 어떻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기운차게 등반하는 산은 평소보다 다정하게 우릴 반겨준다.
4. 산책
집 앞 불광천은 벚꽃 명소다. 벚꽃이 핀 거리를 걸으며 저마다 연인, 친구, 가족과 놀러 나온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선선하게 몸을 감싸는 바람과 얼굴로 살며시 내려앉는 햇빛이 얌전하고 부드럽다. 마치 살구빛 필터가 낀 것처럼 온 세상이 화사해 보였다. 이것이 바로 봄의 매력인가?
5. 로컬 여행
'먼슬리 트립' 리추얼과 이어지는 카테고리로, 한 달에 한 번씩 낯선 동네로 놀러 가는 리추얼이다. 평소 좋은 공간들을 이곳저곳 서치해서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서울 말고도 매력 있는 도시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코로나로 인해 마음껏 해외여행을 다니지 못하는 지금을 기회 삼아, 국내의 좋은 동네들을 다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행이라고 하여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가보지 못했던 동네들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힐링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든 좋다. 계절에 어울리는 도시를 가면 더욱 좋겠다.
5. Playlists
일명 봄플리. 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봄 느낌 물씬 나는 노래들이 있다. 혹은 곡 자체에 계절감이 묻어있는 건 아니지만 봄에 한창 들었던 노래라 자연스레 봄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도 있다. 나에게 '봄' 느낌을 줄 수 있는 노래들을 모아 나만의 '봄플리'를 만들어 두고, 방 안에서 배경음악처럼 틀어보자. 따뜻한 햇살이 들이치는 방 안에서 평화롭게 봄플리를 들으면 마음도 뭉게뭉게 부풀어 오를 듯싶다.
계절감을 느끼는 건 단순히 아, 봄이다~ 하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함께 걸어가기 위함이다. 계절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바쁘게 살다 보면 금방 한 달이 가고, 반년이 가고 1년이 지난다. 시간이 마치 나의 멱살을 끌고 가는 것 같은,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속도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시간의 흐름을 주체적으로 들여다 보고, 시간의 흐름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 속에 녹아있는 빛나는 순간들을 만끽해 봐야 한다. 분명 계절을 의식하는 일상과 그렇지 않은 일상은 다를 것이다. 비유하면 '필터' 같은 거다. 별 볼 일 없는 사진에 필터를 끼얹으면 세상이 달라 보이듯, 우리의 일상에 '계절감'이라는 필터를 씌워보자.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난 지금도 한창 봄을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