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기분 좋은 생활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은 저에게 형용사 게임 같은 것입니다. '생활'에 어울리는 형용사들을 붙여 보며, 다양한 모습의 생활을 상상해 보곤 하는데요. 그 예로 첫 번째 글에서는 쾌적한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 오늘은 윤택한 생활이라는 것은 어떤 생활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반짝반짝 잘 다듬어져 제 빛깔을 내는 모습을 보며 ‘윤택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을 생활에 빗대면 나만의 규칙과 습관으로 꼼꼼히 연마하는 생활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마디로 생활에서의 윤택함이란, ‘나다움’과도 바꿔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다움이라는 말만큼 모호하게 다가오는 단어도 없습니다. 일상 속에서 ‘나다움’은 언제 어떻게 발휘되는 걸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선택’입니다. 선택의 순간에 한 사람의 ‘그 사람다움’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말하자면 두 가지 버전의 ‘선택’입니다. 첫 번째는 ‘고민 없이 늘 오직 이것’, 두 번째는 ‘이것들 가운데 오늘은 어떤 것’입니다.
즉, 생활의 나다움은 한 가지를 고집하는 영역과 매일 다르게 고르는 영역에서 발휘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예쁜 그릇과 컵을 좋아해 취향껏 모은 컵들이 찬장에 가득한데요. 매일 식사할 때나 커피를 내릴 때, ‘오늘은 어떤 컵에 마실까’하며 그때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드는 컵을 고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특별히 아끼는 단 하나의 컵이 있어, 매일 망설일 것 없이 그 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경우도 있을 테지요. 모두 그 사람다움이 드러나는 윤택한 생활의 한 장면입니다.
이 규칙은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향수는 어떨까요? 갖가지 향수를 수집해 두고 그날의 차림에 따라 골라 뿌리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시그니처 향수가 있어 어떤 날에도 그 향수만을 집어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저에게는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꺼내어 읽는 아끼는 책 한 권이 있는데요. 다른 때에는 이 책 저 책 섭렵하다가도 겨울이 오면 다른 책을 다 제쳐두고 가장 먼저 이 책을 다시 꺼내 봅니다. 이 책만 벌써 몇 차례 읽었는지 몰라요. 저에게 있어 ‘한 가지를 고집하는 영역’은 바로 이 한 권의 책인 것이지요.
무조건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사람과 매번 여러 가지 중에서 고르기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어떤 것은 한 가지를 고집하는가 하면, 또 다른 것에는 취향껏 컬렉팅하는 재미를 느끼는 습관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물건마다 어떤 버전의 선택을 적용하는 것이 더 나다운 생활에 가까운지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미처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돌이켜 보니 난 이것은 딱 하나로 고집할 때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하고 말이죠. 반대로 ‘이것은 마음에 드는 걸 여러 개 모아 두고, 매번 골라 가며 사용해 볼까?’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설렘이 느껴지는 영역도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디테일한 선택의 순간들을 보다 나답게 큐레이션하는 것, 그 소소한 재미가 일상의 윤택함으로 이끌어 주는 게 아닐까요.
오늘 저는 찬장의 컵 컬렉션 가운데 커피를 마실 때면 유독 찾게 되는 무인양품 머그컵에 오랜만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카키모리 벚나무 만년필과 시그니처 색으로 정해 둔 풀빛 잉크로, 원고지 형식의 편지지를 골라 친구 E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겨울마다 꺼내 읽는 책을 이어서 읽었지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이 있지요. 매일매일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 선택을 보다 나답게 내리는 것. 일상 속 아주 디테일한 영역일지라도. 나다운 선택이 반복되면 하나의 규칙이 됩니다. 나만의 규칙을 기반으로 이어지는 일상은 얼마나 윤택한가요. 과연 여러분은 어떤 선택들로 오늘 하루를 꾸려 가고 있나요?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