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라니요
| Digitaria ciliaris (Retz.) Koeler.
| 벼과 바랭이 속에 속하는 한해살이풀
|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해마다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해마다 지자체나 사설 농장의 텃밭을 빌려서 합니다. 집에서 텃밭이 좀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자주 돌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 텃밭은 잡초를 제 때 뽑아주지 않아 덤불이 무성한 편이에요. 제 나름대로는 지조 있는 '게으른 자연주의' 도시농부입니다.
시내에 있는 텃밭을 가꾸는 해에는 잡초 걱정은 비교적 덜합니다. 대신 비둘기 같은 새들이 씨앗과 달콤한 채소잎을 먹어치우지요. 산기슭이나, 교외에 텃밭이 있는 때에는 일주일, 이주일 만에 어마어마하게 풀이 우거져 작물을 덮어버리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렇습니다.
7월 말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풀을 뽑았습니다. 고구마 모종까지 심어놓고 여행 잘 다녀와서 보자고 인사를 하였지요. 8월 중순에 돌아와서 텃밭을 보러 갔을 때, 아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풀무덤이 보였습니다. 바로 우리 집 텃밭이었습니다.
채소들은 모두 잡초에 밀려나 버린 건가? 서운하고 맥 빠지는 기분으로 찬찬히 밭을 살펴보았습니다. 키가 큰 잡초 아래로 당근, 빽빽하게 뻗은 고구마, 꽃이 진 호박 덩굴, 간간이 가냘프게 선 들깨가 보였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이는 당근을 뽑거나 모기를 피해 이리저리 달아나고, 저와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잡초. 나의 관심사가 아닌 풀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중 몇몇은 내가 심었던 작물인가 싶어 흠칫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름을 알고 있는 들풀이지만 작물이 아니어서 뽑아버리는 것도 있죠. 그런데, 풀 중에 원래 이름이 '잡초'이지 생각하고 싶을 만큼, 어디에나 번져있고 어디서나 우거져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곡식 비스무리하게 삐죽한 잎에 줄줄이 마른 이삭 같은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봄에는 땅을 타고 여기저기 뻗어나가더니, 여름이 되자 뙤약볕에 작물들 보란 듯이 키를 껑충 키워서 어른 키 반만 하게 자라는 녀석입니다. 뿌리도 단단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김 좀 맸다 하면 다음 날 근육이 뻐근할 정도입니다. 잡초의 대명사 같은 녀석. 이름은 바랭이라고 하네요.
열심히 김매기를 해 놓았어도, 텃밭을 오랜만에 찾는다 싶으면 지난 수고가 아무런 소용이 없어집니다. 어쩌면 그렇게 헛수고 같은 김매기라도 몇 번 했기 때문이 그나마 이 정도 수풀이 우거지는데 그친 걸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 오래 더운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려고 해가 저물 때 일하러 가곤 했지만, 저녁에도 그리 시원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더위가 물러갈 기미가 안 보이던 팔월 막바지, 또 풀과 한바탕 싸움을 하러 텃밭에 갔습니다.
있는 힘껏 으랏차차차.
그런데, 투두둑. 바랭이들이 지난번보다 쉽게 걷혀 나갔습니다. 이제는 억척같이 뿌리 내렸던 땅을 놓아주려는 듯이요. 물기와 햇볕을 가득 담았던 억센 물관과 이파리는 공기가 대신 찬 듯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뜨겁고 목말랐던 여름이 가려는가요...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 여유가 생기면서 열기가 한 풀 식는 것만 같았습니다. 싸우려고 했던 바랭이인데, 올 한 해 너도 수고 많았다는 애틋한 연민도 들었습니다. 한 번 더 스르륵 풀을 걷어내자, 가을의 선득함이 벌써 가슴속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설레는데, 불안하고, 그렇지만 그 속으로 계속 걸어가야만 하는 것. 새로운 계절을 또 맞이해야겠습니다.
바랭이는 웬만큼 뽑아내고 배추와 무를 심었습니다. 안녕, 바랭이 내년에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