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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Jul 05. 2022

잊혀진 자들의 전쟁-9. 격돌

혜수의 한강 변 아파트에서 나균은 혜수를 다시 만났다. 아파트는 여전히 한강의 멋진 전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는 어느새 저물고 거리에는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전화로 얘기했듯이 그놈들 중 하나를 S 병원에서 다시 만났어. 방송국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를 습격했던 도마뱀 놈들 말이야. 혈액을 조달하기 위해 잠입했는데 우연히 놈들 중 하나가 의사로 변장해 그 병원에 있는 걸 발견했어. 


그런데 그놈을 해치우고 보니 그 방이 병원 원장실이더라고. 그놈이 원장실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캄캄한 방에서 벌레가 가득한 유리병에서 벌레들을 핥아먹고 있었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혜수는 미간에 약간 주름을 잡으며 얘기했다. 그 모습이 나균에겐 무척 귀여워 보였다.



“렙타일(도마뱀 인간)이라면 빈스 오빠가 런던에서 오즈 씨를 만나 물어본다고 했었지. 코븐 지부의 대모님에게 렙타일에 대해 물어보니 워낙 오래전에 존재하던 생명체라서 정보가 별로 없다고 하셨어. 대모님이 아는 건 렙타일들은 오래전에 지구에 존재했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이야기 정도만 하셨어. 더 구체적으로 들은 건 없어.”



그때 마침 창밖에서 박쥐 한 마리가 후드득 혜수의 집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긴 머리를 휘날리는 빈스가 거실에 서 있었다. 천사 같은 하얀 벽지의 혜수 집과 시커먼 가죽옷을 입은 빈스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오랜만이야. 나균, 혜수.”

 


빈스는 여전히 상쾌한 미소를 띠며 인사하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다시 한번 나균에게 병원에서의 사건에 대해 듣고 빈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즈님께 들은 이야기를 해주지.”

 


“오즈님은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마성이 아주 강하시고 오래 사셔서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 벌써 1000년을 넘게 사신 분인데 렙타일(도마뱀 인간)들은 약 300년 정도 전에 지상에서 사라졌다고 하셨어. 사라진 이유는 오즈님도 명확히 모르고 계셨어. 


 그들은 지상에 존재할 때도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였고 인간의 눈에 띈다 해도 모습을 인간으로 바꿀 수 있기에 인간들은 그들이 파충류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지. 


 도마뱀 인간들은 전투에 아주 능한 종족이라서 다른 크리처(초자연적 존재)들도 도마뱀 인간들과 적이 되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피했어. 또 그들은 다른 이들의 눈을 현혹하여 환상을 보여줄 수 있어. 우리 뱀파이어들이 쓰는 최면과는 다른 종류의 최면이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크리처 중에는 이들의 시각적 현혹을 해제하거나 이들의 변신을 풀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도 있어.”

 


“어떤 크리처들이 그들의 환상을 부수거나 본래의 모습을 노출시킬 수 있죠?”



“미간의 차크라가 발달한 사람이나 크리처는 예지력을 가지거나 적이 보여주는 환상을 해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우리 뱀파이어들도 이런 능력을 가지거나 계발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단연코 이런 건 마녀의 장기야. 혜수 같은 마녀 계열이 뿜어내는 에너지 파장은 렙타일들이 변신한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게 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렙타일들이 인간으로 변신을 하고 있어도 마녀들이 정화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순간 웬만한 변신은 모두 해제되어버려. 아마 혜수와 네가 지하 주차장에서 그놈들과 싸울 때 의도하지 않았어도 혜수의 공격에서 정화의 에너지가 배어 나왔을 거야. 그래서 그 에너지에 의해 몇 놈들의 변신이 풀어져 본래의 얼굴이 노출된 것 같아. 


 그리고 애초에 지하 주차장의 습격은 혜수를 노린 걸 거야. 그들이 혜수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을 리는 없고 혜수가 마녀이기에 공격했다는 것인데 그들이 마녀를 공격할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내 생각에 마녀가 그들이 변신을 하고 음모를 꾸미는 데 가장 방해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해. 마녀에 의해 그들의 변신이 노출될 수 있으니까.  대중에게 노출된 적이 많은 혜수의 경우 이들이 어떻게든 혜수가 마녀라는 정보를 얻었다고 봐야지. 그래서 혜수를 죽이거나 아니면 생포하여 다른 마녀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마녀들을 없애려 한 것 같아. 뭔가 큰일을 벌이기 전에 말이지.


 그렇다면 렙타일들이 변신을 하여 엄청난 걸 꾸미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3백 년 전에 사라졌던 렙타일들이 갑자기 지구에 나타나 노리는 건 무얼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계인들이 등장했는데 두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도마뱀 인간들이 뭔가 큰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건 확실해.”

 


그 순간 혜수의 커다란 아파트 발코니 창문이 통째로 와장창 깨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은 복면을 하고 검은 복장을 한 괴한들 10여 명이 뛰어들었다. 그들은 옥상에서 연결한 자일을 타고 뛰어 들어온 것이다. 



또한 아래 방향에서 쇠갈고리가 여러 개 날아와 부서진 창문을 통하여 벽에 박히거나 창틀에 걸렸다. 수십 명의 괴한들이 쇠갈고리에 연결된, 자동으로 감기는 자일을 타고 지상에서부터 아파트 외벽 위를 달려서 혜수의 펜트하우스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로 뛰어든 괴한들은 빈스와 나균, 혜수를 향하여 수리검을 날렸다. 나균과 혜수는 수리검을 피해 몸을 던졌고 빈스는 어느새 웃통을 찢고 양쪽 갈비뼈에 새겨진 문신에서 기관총을 뽑아 적들에게 난사하기 시작했다. 빈스의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적들을 펜트하우스 창밖으로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창밖에서 거대한 창이 빈스를 향해 날아왔다. 빈스는 몸을 던져 가까스로 창을 피할 수 있었다. 창은 굉음을 내며 절반 정도까지 벽에 깊숙이 박혔다. 그리고 창밖에서 혜수의 집으로 세 마리의 박쥐가 날아들었다. 박쥐들은 순식간에 사람으로 변했다. 역시 검은 옷을 입고 얼굴에 복면을 두른 세 사람인데 하나는 남자이고 나머지 둘은 여자인 듯했다. 



남자는 긴 칼을 들고 있었고 여자들은 각자 양손에 쌍검을 쥐고 있었다.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긴 칼을 겨누고 빈스에게로 돌격했다. 나머지 두 여자도 각각 나균과 혜수를 향해 돌진했다.



“빈스!”  남자가 외쳤다.



어느새 자신의 문신으로부터 칼을 뽑아낸 빈스는 날아오는 장검의 일격을 막아냈다. 복면을 뒤집어쓰고 빈스를 노리는 괴한은 엄청난 속도로 빈스에게 공격을 가했다.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칼날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오랜만이군.”



“이 목소리는 기분 나쁠 정도로 낯익구먼.”



둘은 대지를 찢을 듯한 위력과 속도로 검과 검을 부딪치며 싸웠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일고 공격의 위압감은 주위의 대기를 압도했다. 그 검에 닿는 순간 어떤 물체도 잘려나갈 기세였다.



나균도 이미 영점장에서 검을 뽑아내어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는 나균 앞에서 칼을 찔러 오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나균 뒤에서 나균의 등을 노렸다. 순간 이동이었다. 이를 간신히 막아낸 나균은 등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라.. 대응하기에 너무 까다롭다. 



상대는 계속해서 순간 이동을 하면서 공격했다. 치명타를 간신히 피하고는 있지만 몇 번 칼에 얕게 베이기도 했다. 나균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자 상대는 더 흥분한 듯 세찬 공격을 퍼부었다.



혜수의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이동으로 혜수를 괴롭히며 공격했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혜수가 외쳤다. 



“눈으로 보려 하지 마! 마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야 돼. 마음이 가는 곳으로 칼을 뻗어!”



혜수는 잠시 눈을 감더니 장검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 자리로 이동한 상대는 목이 잘리며 한 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나균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본능이 이끄는 곳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의 끝에 상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상대의 오른팔이 날아가고 있었다. 뒤이어 나균의 검은 상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적은 재로 변해 사라졌다. 

 


그러나 나균과 혜수는 쉴 수 없었다. 수십 명의 괴한들이 담벼락을 타고 혜수의 펜트하우스로 계속해서 뛰어들고 있었다. 혜수는 영점장에서 긴 창을 뽑아내어 뛰어드는 적들을 향해 던졌다. 창은 적들을 꿰어 창밖으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혜수는 창밖으로 몸을 날려 외벽에 적이 박아 논 자일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영점장에서 짧은 창을 뽑아내어 연속으로 아래에서 올라오는 적을 향해 던졌다. 자일을 타고 달려오던 적들이 창에 꿰어 아래로 떨어졌다.



창을 던지는 혜수를 향해 적들도 수리검을 날리며 반격했다. 혜수는 검을 뽑아내 날아오는 수리검들을 쳐내고 자신이 잡고 있던 자일 아랫부분을 잘랐다. 자일을 타고 오던 적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자일 끝을 잡고 아파트 외벽을 뛰어다니며 연결된 주변의 자일들을 차례차례 잘라냈다. 연속으로 적들이 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적들은 혜수에게 계속해서 수리검을 날리고 혜수는 이를 칼로 쳐내어 가며 적들의 자일을 계속 잘라냈으나 새로운 갈고리들이 계속 날아와 창틀에 걸렸다. 그리고 이미 자일을 타고 끝까지 올라온 다른 적들이 검으로 공격하자 혜수는 자일을 잡은 채로 이들과 검을 부딪쳤다.

 


나균도 잠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영점장에서 활을 뽑아내었다. 적이 거실의 창문을 통해 뛰어들 때마다 화살을 적에게 꽂았다. 화살촉은 보통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나균의 화살에 맞은 적들은 창문 밖으로 나뭇잎처럼 날아가 버렸다. 때로는 집 안으로 뛰어든 적 두셋을 한꺼번에 관통하며 날아갔다. 집 안으로 뛰어든 적들을 처리하고 나서 나균은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혜수를 공격하는 자객들이 보였다. 화살을 날려 자객들을 하나하나 모두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일을 타고 올라오는 적들을 향해서도 화살을 날려 그들을 떨어뜨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상에는 아직도 백여 명의 적들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일을 타고 올라오는 적들도 있었다. 나균을 활을 버리고 영점장에서 검을 빼어 들었다. 그리고 활은 다시 에너지로 화해 영점장으로 돌아갔다. 



“제이슨이냐?”



빈스가 외치니 복면을 쓴 괴한은 복면을 벗어젖혔다. 복면 아래에 감춰진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피부가 흰 미남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빈스만큼이나 긴 머리는 금발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고귀한 혈통의 귀족 같은 품위가 흐르는 모습의 남자였다.



칼을 잠시 내리며 그 남자는 외쳤다. 



“빈스! 어째서 마녀를 보호하고 있는 거지. 우리 종족은 마녀들과 사이가 좋을 수 없잖아?”



“제이슨, 오랜만이군. 근데 넌 왜 도마뱀 인간들과 한패가 된 거냐?”



“저들이 먼저 나에게 찾아왔어. 그리고 힘을 합치자고 하더군. 마녀들에게 쫓기는 것도 지쳤고 먹이에 지나지 않는 인간들의 눈치를 보며 어둠 속을 쥐새끼처럼 돌아다니는 것도 지쳤어. 더 많은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 지구를 갉아먹는 해충 같은 인간들을 몰아낼 때가 되었어. 우월한 혈통의 우리 뱀파이어들이 이 세상을 지배할 시기가 온 거야. 


내 손을 잡아. 빈스. 너의 본능을 더 이상 억누를 필요가 없어. 영원한 쾌락을 약속 하마.”



“나는 쾌락을 좋아하긴 하지만 악당의 편이 되는 건 싫어. 갑자기 악당들의 편에 서서 정의로운 척 인간들을 단죄하는 자신의 꼴이 우습지 않나?”



“누가 악당의 편에 서 있는지 너는 자신할 수 있나?”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 다시 빈스는 검을 휘둘렀고 제이슨과 빈스는 불꽃을 튀기며 칼날을 맞대었다. 둘의 실력은 팽팽한 호각을 이루고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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