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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일 Feb 20. 2023

만나는 사람이 나의 수준이다.

좋은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장학사에게 전화가 왔다. 밤 8시가 넘은 시간이다. ‘이 시간까지 퇴근 못하고 있구나’ 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는다. 피곤할 텐데 목소리는 밝다.  

   

올해 7월에 울산 미래 교육 박람회가 열린다. 울산교육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행사로, 예산만 몇억이 소요되는 큰 행사이다. 담당 장학사와의 인연에 박람회 준비 TF팀이 되었다. 장학사는 작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박람회를 샅샅이 훑으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TF팀 첫 만남에서 참석자들이 장학사에게 올해 7월까지 제발 건강을 잃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걱정할 만큼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다. 

    

수석선생님. 밤늦게 죄송해요.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부탁하지 말고 그냥 말씀하세요. 다 됩니다.     

 

박람회 부스 운영 관련해서 교과연구회 전문교사 2명 정도가 필요한데 추천 부탁드려요. 전화번호 주시면 제가 연락해서 부탁하겠습니다.     


제가 전화해서 허락받은 후 장학사님께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해주시면 더 감사하고요.   

  

바로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울산고에 근무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사회 선생님이다. 이분은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정규 수업 이외에 교내 심화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 대상으로 소인수 선택 수업, 온라인 공동교육과정까지 운영한다. 그러니까 보통 교사보다 거의 두 배의 수업을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중앙고에 근무하는 과학 선생님으로 거꾸로 교실의 최고 전문가이다. 가끔 거꾸로 교실 교과연구회에 참석하면 꼭 만난다. 수업 강사로도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다.  

   

두 분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자신의 수업 브랜드가 있다. 교사 혼자 말하지 않고, 학생들이 말하는 수업을 한다. 한 분은 Q&E 학습 모형(Question & Explain)으로, 한 분은 거꾸로 교실 수업 모형으로 한다.   

   

둘째, 교과연구회 활동을 운영한다. 한 분은 창의융합 교육연구회, 한 분은 거꾸로 교실 연구회이다. 항상 자기 수업을 오픈하고, 다른 교사로부터 배우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셋째, 이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삶에서 배울 게 많다. 특히, 수업 시간에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넷째, 모두 나의 네 번째 책인 <메타인지 수업>에서 자신의 수업 사례를 나눈 분들이다. 이 책에 63가지의 수업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 두 분의 도움이 컸다.  


   


두 분께 각각 전화했다. 이런저런 긴 설명 없이 금방 통화가 끝났다. 장학사에게 연락하면 된다는 내용과 연락처를 문자로 보냈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몇 명이 더 생각난다. 10분쯤 지나서 장학사에게 인사 전화가 왔다. 빨리 퇴근하시라고 말하고 끊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

나도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어 감사하다.

몇 마디에 순순히 응해준 두 분께 감사하다. 

    

요즘은 인연에 감사하는 시간이 잦다.

좋은 사람들이 내 삶에 차곡차곡 쌓인다.

대화에서 배우고, 글에서 배우고, 태도에서 배운다.

대부분 열 살 이상 차이가 난다.

내가 만약 저 나이에 저렇게 살았다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들의 몇 년 후가 정말 기대된다.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응원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의 수준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하루를 때우는 사람이 아니라, 채우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는 사람이다.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잘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꼭 하는 사람이다.  

   

함께 책 읽는 사람들

함께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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