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주 차 D-47, 새로운 독립을 다짐하다.
처음 태동을 느꼈을 때는 배 속을 누군가가 간지럽히는 느낌이었다. 그때가 한 17주 정도였을까?
뱃속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 같다는 말이 딱이었다.
20주 이후로부터는 점점 태동이 강해지더니 요즘은 배가 꿀렁꿀렁 요동치곤 한다.
정말 사람이 살고 있구나 실감이 날 정도다.
이건 무릎 같은데? 이건 엉덩인가? 방금 발바닥으로 찬 것 같아!
튀어나온 부위를 손으로 톡톡 쳐보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크기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러면 복덩이 엉덩이가 쏙 들어가기도 하고 발이 쑥 나오기도 한다.
갈비뼈나 방광을 찰 때는 움찔하기도 한다. 발차기 힘이 꽤 세다! 그래도 신나게 놀아주니 그저 감사하다.
아이의 머리가 아래로 돌아서 배꼽 아래에서는 딸꾹질이 느껴지기도 한다.
태동과 다르게 꼭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뛴다. 호흡하는 연습을 하느라 딸꾹질을 한다는데, 조그마한 아이가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면서 너무 딸꾹질을 오래 하면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배가 따뜻하면 조금 더 나으려나?"의미 없이 배를 쓰담쓰담해 본다.
최근 나를 본 친구는 내 배 크기에 이제 정말 임산부라며 신기하다고 했다.
이제 제법 만삭티가 나서 어딜 가든 임산부인 것을 알아보신다.
어제는 한 어르신께서 배가 동글동글해서 공주님 배인 것 같다며 알아보시곤 했다.
정말 딸 배, 아들 배가 따로 있나 보다..ㅎㅎ
9Kg가량 늘어난 체중 때문에 오래 앉아있기도 버겁고, 서있으면 다리가 저려온다.
저녁에 잘 때는 바로 누워도 힘들고 옆으로 누워도 힘든데, 자다가 팔을 누르고 자는지 아침이면 오른손, 왼손이 쥐가 나고 붓는 느낌이나 반지도 빼버렸다.
그리고 아이도 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자세를 바꾸는 것 같은데, 내가 옆으로 누우면 뱃속에서 스르륵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자세를 바꾸면 배가 굉장히 뻐근하다 ㅠㅠ임신 후기에는 정말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야 한다.
장기간 앉아 있기 너무나 힘들어서 4개월간 꾸준히 다니던 프랑스자수반도 그만두고, 대신 시간이 될 때마다 틈틈이 걷고 있다. 오늘은 황톳길 맨발 걷기를 하고 왔더니 1만보를 찍고 왔다. 남편과 복덩이 맞이 기념 세차도 끝내 홀가분하다! 아기 용품 세탁까지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며 아기 맞이 정리에 힘을 쓰고 있는 요즘이다.
임신을 확인하던 순간!
너무나도 설레었던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 임신테스트기를 차마 버리지 못했다.
임신테스트기를 보관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집에 굴러다니던 딸기잼 병에 임신테스트기를 넣고 생일날 남편에게 선물 받아 말려두었던 꽃을 넣어두었다.
꽃이 참 잘 말라서 버리기 아까웠는데..ㅎㅎ 만들어 놓고 나니 뿌듯하다. 의미도 있고!
출산이 다가오며 아기 물건들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
허심탄회하게 엄마랑 출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부모님과 나눌 수 있는 또 한 가지 주제가 열렸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항상 여러 가지 감정들이 쏟아진다.
'그리움, 사랑, 슬픔, 죄책감, 아쉬움'등의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오면 혼란스럽기도 하다.
육아책을 보면 아이들은 부모님께 사랑과 미움, 양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하다.
나 먹으라고 토종닭에 닭죽에, 김치,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신 아빠, 그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엄마, 오늘도 1시간 거리에 반찬을 주고 떠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별안간 복잡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 어린 시절 즐겁게 놀던 모습에 대한 그리움..
이미 나이가 들어가시는 부모님을 보며 어린 시절만큼 순수하게 즐기는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슬픔.
또, 잠깐이나마 부모님을 원망했던 시간들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아빠가 떠나며 무심히 잡아준 손에서 느껴지던 세월..
결혼하며 새 가정을 꾸리며 이미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는 아이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복덩이가 태어나며 또 다른 독립이 시작되겠지.. 다 컸다고 생각한 나도 아직 조금씩 자라고 있다.
붕붕 떠다니는 마음들을 토닥이며 진정시키고 글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