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저자'가 되고 싶다

브런치라는 쓰기의 바다에서

by 낮별

오랜 블로그 생활을 중단하면서 2년의 시간 동안 학교 과제 외에는 쓰기라는 활동을 일절 멈췄다가 다시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학교 과제에 치여서 사실 다른 쓰기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도 했다. 최근에 브런치를 자주 드나들며 많은 사람들의 글을 통해 그들만의 세상을 거닐어본다.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일상 속에서 얼굴을 맞대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아픈 이야기, 내면의 이야기,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르기에 그저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작은 울림, 큰 울림이라도 전해오면 소심하게 라이킷을 누를 뿐이다. 나를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이곳이 내겐 자유이다. 그래서 나도 나의 이야기를 주저 없이 꺼내놓는다.


이십 년을 살았던 도시에서 오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했다. 코로나로 온 세계가 시름에 빠져있을 때여서 이사 온 도시에서는 새롭게 친교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계기는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동네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의 편리함을 알게 된 후 의도적으로 최소한의 인적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작은 아이의 단짝 친구 그 아이 엄마와만 유일하게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런 단출한 인간관계가 이 도시에서의 생활을 무척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다. 덕분에 이 도시를 활개하고 다니는 일이 여행지에서의 일상처럼 자유롭다.



브런치는 내게 새롭게 이사 온 도시와 같다. 발이 아닌 손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몇 꼭지의 글을 써서 업로드해 봤을 때 즉각적으로 라이킷이 돌아오는 반응도 무척 신기했다. 과연 읽고나 누르는 것일까 의심스러울 속도일 때도 있다. 이 많은 글의 바닷속에서 내게 노출되는 글과의 인연, 내 글이 노출되는 이와의 인연은 어떤 알고리즘으로 맺어지는 것일까? 그걸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나는 여전히 이곳에 적응 중이다. 그리고 차츰 낯익은 이름들이 생겨난다. 업로드를 기다리는 이름이 생겨난다. 응원하고 싶은 이름이 생겨난다.



읽는 사람들은 쓰고 싶은 사람들이다. 쓰고 싶어서 읽는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쓰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브런치를 둘러보며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 여기에서 마음을 쏟아놓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읽다가 읽다가, 결국은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니체는 '슬픈 저자'와 '진지한 저자'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고통을 옮겨 놓는 사람은 '슬픈 저자'가 되고, 고통받았던 기억과 왜 지금은 휴식 속에서 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지한 저자'가 된다고. '슬픈 저자'에서 '진지한 저자'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브런치에서 많은 '진지한 저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름난 작가도 아니고, 유퀴즈에 나올만한 인생 스토리를 가진 사람도 아닌데 '진지한 저자'들의 글은 나를 감동시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소심한 라이킷뿐이지만, 내가 누르는 라이킷은 진짜 당신의 글을 다 읽었다는 말이고, 좋은 글을 나눠줌에 감사하는 마음, 당신의 오늘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서로의 마음을 거닐며 응원할 수 있는 브런치라는 이 광대한 쓰기의 바다가 있어서 방구석에 처박혀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진심 어린 라이킷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그의 마음을 알아준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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