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건조주의보가 내리면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의지와 선택

by 낮별

상담이론서를 읽다가 에픽테토스의 말을 만났다. "사람들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 고통을 받는다." 에픽테토스는 사고와 신념이라는 인지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EBT)를 제창한 앨버트 엘리스에게 큰 영향을 준 철학자이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는 노예출신 철학자이다. 에픽테토스라는 이름조차 그리스어로 '곁다리로 얻은', '덤으로 얻은'이라는 뜻의 형용사라고 한다. 노예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 주인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곁다리로 얻은 노예인 셈이다. 로마로 이동한 그는 네로 황제 시기 로마에서 황제의 비서의 노예 생활을 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 출신의 노예가 꽤나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았다고 하니 우리가 떠올리는 노예와는 전혀 다른 지위였을 것이다. 노예시절부터 철학공부를 할 수 있었고 노예에서 해방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해방 노예가 된 후 에픽테토스는 본격적으로 철학 공부에 매진했다. 나중에 로마에서 모든 철학자의 추방령이 내려졌을 때 그는 그리스 니코폴리스로 가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렇게 그는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철학책을 읽을 때마다 스토아학파 철학 부분에서 나는 깊이 공감했고 그들의 사상에 심취하곤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종교인들의 성서처럼 수시로 들추어보며 마음의 파고를 잠재우곤 했다. 명상록에는 에픽테토스의 말이 이렇게 인용되어 있다. "너는 시신을 짊어지고 다니는 작은 혼이다." 에픽테토스의 존재에 대한 신념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이는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에 대하여. 우리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라면 죽음은 해체이고, 우리가 하나의 통일체라면 죽음은 소멸이거나 이주다"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또한 말한다. "우주는 혼돈 및 원자들의 뒤얽힘과 해체이거나, 하나의 통일성과 질서와 섭리일 것이다. 전자라면, 모든 것이 무작위로 엉망진창이고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혼돈 속에서 내가 살아갈 이유가 무엇인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거기서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고민하고 불안해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무엇을 해도 결국 나는 원자들로 해체되고 말 것이 아닌가. 하지만 후자라면, 나는 만물을 다스리는 이를 신뢰하고 공경하며 굳건히 서게 될 것이다."


나는 특정한 종교가 없지만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종교가 없는 유신론자이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말은 증거에 의해 사실로 판명된 말이 아니고 단지 그들의 사고와 신념일 뿐이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핵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늘 되뇌는 말이 있다. "삶의 종착지는 모두가 죽음이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을 살아내는 데는 나의 의지, 나의 선택, 그리고 생존할 수 있는 행운이 다인 것이다. 행운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의지와 선택은 나의 것이다.


불안, 원망, 분노, 증오, 회환, 죄책감 이러한 부정적 정념들은 모두 지나친 집착과 과도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이런 부정적 정념들이 마음의 병을 키운다. 모두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나 밖의 일들이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적어도 내가 선택하고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부정적인 정념을 존중하고 증폭시키기를 선택할 때마다 우리는 불행하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부정적 정념들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고 끊어내는 것을 '위대한 멈춤'이라고 명명했다. '위대한 멈춤'은 내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하는 선택이다.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랜 세월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했었다. 우리 가족이 불행해진 모든 원인이 아빠라고 생각했다. 아빠로부터 받은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들을 잊지 못하고 자꾸 되뇌곤 했다. 무력했던 어린아이였던 우리 형제들,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자였던 엄마를 생각하며 그 원망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몹시 불행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누구보다 아빠를 원망하고 증오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엄마의 지갑 속 깊은 곳에서 아빠의 사진을 봤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십 년 세월 엄마의 지갑 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요?" "그럼, 보고 싶지." "아빠를 사랑했어요?" "사랑하지 않았으면 너희들 낳고 살았겠니?" 엄마는 알고 계셨다. 자신이 불행하지 않기 위해 용서하는 방법을, 위대한 멈춤을.


촉촉하게 젖어있는 산에서는 불꽃이 튀어도 쉽사리 산불로 번지지 않는다. 4월 건조주의보가 내린 대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습기를 머금지 않은 버석한 나무와 지난해 미처 흙이 되지 못한 낙엽 더미들은 작은 불꽃만 튀어도 거대한 산불로 이어진다. 아주 활활 타오른다. 모조리 태워버린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건조한 마음에는 부정적 정념이 쉽게 자리 잡고 쑥쑥 자라난다. 그것이 화력이 되어 스스로를 태워버린다.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부정적 정념들이 찾아온다. 찾아와서는 쉽사리 떨어질 생각 없이 나를 괴롭힌다. 그럴 때면 나는 내 혼을 짊어지고 다니는 내 몸을 움직인다. 내 몸에 실린 내 혼도 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출렁대다 보면 나를 괴롭히던 정념들이 차츰 멀어지거나 희미해지거나 기력을 잃는다.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좋은 사람과 담소를 나눈다. 이것이 내 마음의 건조주의보를 해제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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