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상담대학원?

삶의 의미를 찾다 보니

by 낮별


상담대학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아동 상담 심리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상담대학원 관심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말했다. 아동상담은 심각한 출산율 저하로 아이들이 줄어드는 추세여서 전망이 밝지 않으며, 성인상담은 요즘 AI 기반 상담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그 분야도 마찬가지이고, 그나마 권하는 분야는 노인상담 분야라고 했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초고령화 사회 속에서 노인 소외 문제가 점차 더 큰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예측됨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도 본격적으로 노인의 정신 건강문제를 관리하면 이 분야의 성장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인상담의 경우 젊은 상담자보다는 오히려 인생 경험이 풍부한 중년 이상의 상담자가 더 선호되기도 하니 나처럼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람에게 적격이고, 사회와의 물리적 정신적 소외가 가장 큰 정신적 문제가 될 테니 AI보다는 실제로 인간적인 교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담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30대부터 50대까지 주로 활동하는 지역 맘카페에서 그런 글을 봤었다. 요즘 AI심리 상담 너무 좋아서 이제 상담받으러 굳이 안 가도 되겠다, 진짜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데 눈물이 핑 돌면서 힐링이 되었다, 비밀스러운 얘기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상담자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너무 편하다, 짜증 내지 않고 내 얘기 끝까지 잘 들어주니 남편보다 친구보다 낫다... 등등등 전적으로 AI상담에 긍정적인 반응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글을 보면서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 AI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이 반응은 더욱 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령층은 일터에서 가정에서 한창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큰 시기이니 사람이 아닌 다른 대상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경우에는 상담을 어떤 대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둔 건 아니다. 교양 수준의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사람의 심리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철학과 문학의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상담 대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뒤 접한 상담이론서를 읽으며 상담 대상보다는 상담 이론에 관심이 쏠려 있을 뿐이다. 그 전에도 심리학 책을 종종 읽었었다. 자의적인 선택으로 읽지는 않았고 책 모임에서 선정된 책을 읽을 때였다. 그런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심리학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걸 보면 어떤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사람도, 관심사도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깊은 인연이 될 수도, 스쳐가는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 조언을 해준 친구의 말대로 언젠가는 어떤 대상을 상대로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현재로서는 인문학 기반의 상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런 마음으로 상담 이론서를 읽으니 정신분석 치료나 행동치료는 눈에 안 들어오고 인간중심 치료나 실존적 심리치료와 같은 부분을 읽으며 캄캄하던 마음에 불이 하나씩 켜져 가는 것을 느끼는 중이다. 상담이론서를 읽기만 하는데도 내 마음은 왜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의문이 들면서 말이다.


실존적 심리치료의 대가 빅터 프랭클과 어빈 얄롬을 알게 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저 유명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가장 참담함 가운데서도 빛나는 인간의 숭고미가 또렷이 인상에 남아있는데 그의 로고테라피(의미 치료)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심리학, 심리치료 같은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때였다. 그가 실존적 심리치료의 대가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 두는 것만 받아들인다. 빅터 프랭클은 내게 아우슈비츠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대단한 유대인 작가였는데, 이제는 실존적 심리치료 로고테라피의 창설자이다. "왜 사는지 아는 자는 어떤 비극도 견딜 수 있다"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 고통의 의미, 사랑의 의미 등등 우리는 내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발견일 수도 있고 창조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래전, 내게 "당신은 왜 사나요?, 당신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은 사람이 있었다. 영어 공부하려고 전화 영어 수업을 했던 시기였는데 절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필리핀인 강사가 그렇게 질문했다. 그때 나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이런 걸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어서 그의 질문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삶의 의미, 당신은 그걸 꼭 생각해야 해요." 그와의 수업에서 했던 대화들 거의 다 잊었는데, 이 말만 기억이 난다. 살면서 왠지 문득문득 그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어쩌면 그의 말은 신이 현현하여 내게 던져 둔 숙제같기도 했다.


어반 얄롬은 "실존적 심리치료"라는 이 분야 교과서를 집필한 사람이다. 상담 이론서를 접하기 전에는 완전히 생소한 인물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쪽 분야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분이었다. 상담치료를 소재로 한 소설도 여러 권 집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네 가지 실존적 조건이 있다. 바로 고독, 무의미함, 유한성, 자유이다. 인간과 AI의 가장 큰 차이가 이 실존적 조건에 있겠구나 싶었다. 이런 실존적 조건을 공유해 본 적 없는 AI가 어떻게 인간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AI 기술은 상담 분야에서 데이터 기반의 통찰력을 제공하며 서비스 접근성을 향상할 것에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존적 고독, 실존적 무의미, 죽음, 불안에 시달리는 인간에게는 같은 경험으로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될 수 있기에 말이다.


AI에게 물어보았다. AI 때문에 상담사라는 직업이 사양화될 거라는 데 어떻게 생각해? 나의 이 짧은 질문에 긴 답변을 피곤해하는 나를 파악도 못하고 그녀는 엄청나게 길게 대답했지만 축약시켜 말하자면 이 한마디가 그녀의 요지였다. "AI를 잘 활용하는 인간 상담사의 미래는 아주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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