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이 좋아서

오정희 "유년의 뜰" & 하성란 "곰팡이 꽃"

by 낮별

지난 2년간 방송통신대에 편입해서 온갖 관심사를 공부했다. 그러기에 참 좋은 과가 문화교양학과였다. 전공과목으로 역사, 철학, 문학, 예술 등 그야말로 문화와 교양을 위한 학문을 접해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나는 매 학기 일반선택 과목으로 타과의 과목도 골고루 수강했는데 문학러버인 나는 국문과와 영문과 수업이 특히 좋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단 한 번의 심리학 수업에 매료되어 상담심리 대학원 진학까지 이르렀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아래 글은 국문과의 현대소설론 수업의 과제물로 작성했던 글이다. 시간이 지나 읽어보니, 그 시기의 내가 떠오른다. 쏟아지는 과제는 버겁고 힘들었지만, 공부하는 과정은 즐거웠고, 끝내고 나면 몹시 뿌듯했다. 이 무렵 짧은 호흡 긴 여운의 단편소설이 좋아서 매일 한 편씩 읽어 나갔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많은 아름다운 단편과 만났다. 다시 소설 앞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요즘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도, 읽는 독자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소설 자체가 잘 읽히지 않는 시대라지만, 여자들에게 소설을 쓰고자 하는 열망은 여전하다. 풀고 싶은, 풀어내야 하는 이야기가 더 많아서일까? 그런 의미에서 제시된 작품 중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오정희의 “유년의 뜰”과 하성란의 “곰팡이꽃”을 선택해 보았다.


(1) 오정희 “유년의 뜰”

(1-1) 줄거리 요약

전쟁 중 피난 온 마을 감나무집에서 셋방살이하는 일가족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징병되어 전쟁에 나가 가장이 부재한 가운데 노랑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일곱 살 화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힘겨운 시절을 견뎌낸 가족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한 언어로 그려낸다. 어머니는 저녁이면 화장을 곱게 하고 읍내 밥집에 돈을 벌러 나가고, 젊어 기생이었던 외할머니는 집안 살림을 하며 오빠, 작은 오빠, 언니, 나(노랑눈이), 그리고 어린 동생 이렇게 다섯 아이들을 보살핀다. 오빠는 영어책을 읽으며 학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동생들을 단속하고, 어머니가 외박할 때마다 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식으로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언니는 오빠의 눈을 피해 읍내 저잣거리에 드나들며 또래의 호기심을 채우며 지내고, 나는 틈나는 대로 무엇이든 먹어치우며 허기를 달랜다. 작은 오빠는 종일 나가 놀고 철조망이 쳐진 고아원에 사는 험한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동생은 너무나 허약하여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 한편, 마당 건너 안채 부엌에 딸린 방은 늘 시커먼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그 방안에 외눈박이 목수의 바람난 딸 부네가 갇혀있다고 한다. 미쳤다고도 하고, 어디가 아프다고도 하고, 어쩌면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만 무성하지만 부네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굳게 닫혀있는 부네의 방을 바라보는 노랑눈이는 왠지 모르게 자꾸만 부네에게 마음이 쓰인다. 어느 날, 부네는 혀를 물고 죽었다. 죽은 부네는 뱀에 물려 죽은 이웃 마을 총각 혼령에게 시집을 갔다. 부네의 여동생 서분이가 와서 오빠에게 미국에 갈 수도 있다며 한바탕 바람을 넣어 흔들어 놓기도 했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약속이었다. 전쟁이 끝나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난다. 부네 가족들도 집을 팔고 떠나고, 우리 가족도 이웃 마을로 이사한다. 온 가족이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던 아버지가 거렁뱅이같은 몰골로 학교에 찾아오는데 나는 교장실에서 훔쳐먹은 케이크를 변소에 앉아 다리 사이로 다 토해낸다. 전쟁은 끝났는데, 우리 가족 사이의 새로운 전쟁이 재연될 것임을 노랑눈이는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이다.


(1-2) 성장의 과정 – 불확실한 존재에서 확실한 존재로의 인식


어린 노랑눈이는 아버지에 대한 불확실한 기억으로 인한 그리움, 두려움, 슬픔을 느낀다. 마을을 방문한 이발사에게서 나는 머릿기름 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라는 것과 그 냄새가 전쟁에 나가고 없는 아버지의 냄새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들은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내게 연약한 넓적다리, 혹은 발목을 잡던 악력, 막연히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 보다 커다란 것, 땀으로 젖어있던 등허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억 역시 내 상상이 꾸며낸 더 먼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48 page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도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사실들은 어린 노랑눈이에게는 불안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 있던 그 긴 시간의 갈피짬마다 연기처럼 모호히 서린 낯섦은 새로운 전쟁으로 우리 사이에 재연될 것이기에 차라리 그립고 정답게 아버지를 추억하며 희망 없는 기다림으로 우리 모두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거나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변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나 아니었는지.”- 48 page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안채 부엌에 딸린 방에 갇혀있다는 부네의 존재 또한 노랑눈이에게 불안과 서글픈 마음이 들게 한다. 미쳐서, 아파서, 혹은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부네가 갇혀있는 부네의 방을 바라보는 노랑눈이의 시선을 묘사하는 부분들은 한결같이 서러움과 슬픔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네, 나는 그녀를 한 번쯤 본 듯도 하고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도 창호지 한 겹 너머 문의 안쪽에서 숨 쉬고 있는 그녀를 생각할 때면 이상한 두려움과 가슴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슬픔에 잠기곤 했다. 나는 이러한 감정을 달래듯 풋감을 또 하나 주워 씹었다. 떫고 단맛이 위로처럼 따뜻하고 축축히 목 안으로 차오르고 까닭 모르게 눈물이 고여왔다.” - 23 page


“가을 해는 짧았다. 어느새 부네의 방문은 엷은 햇빛에 눅눅히 잠겨들고 있었다. 나는 물에 잠기듯 잦아드는 부네의 방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49 page


오랜 시간 가족을 떠나 부재 상태에 있는 아버지와 있다고들 하는데 자신의 눈으로 확인 한 적 없는 부네는 둘 다 노랑눈이에게는 모호한 존재들이다. 어린 노랑눈이가 이해하기에는 버거운 어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혀를 깨물어 죽어서야 방을 나온 부네와 전쟁이 끝나고 거렁뱅이 같은 몰골로 다리를 끌며 돌아온 아버지의 실체를 확인했을 때, 노랑눈이는 차라리 모호해서 불안했던 하지만 뭔지 모르게 그리웠던 순간들이 좋았다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이란 그러한 것이다. 모호한 일들이 실체로 다가오며 어렴풋한 감정이 토하고 싶을 정도의 격한 반응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노랑눈이의 성장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1-3) 감상평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섬세하고 밀도 높은 문장으로 쓰여있는 단편소설을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편안하고 드문드문 감각적인 글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오정희 작가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허투루 흘려버릴 수 없는 밀도를 지니고 있다. 전쟁, 이산, 가난이 사람들을 옭아매어 모두가 힘들게 살던 시대, 어린 노랑눈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 역시 서글프고 불안했다. 그 불안함 가운데 저마다의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그 시대 보통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누구에게도 그렇게 살아도 마땅한 당위성을 찾지 못했다. 아울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현실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도 느꼈다. 한편으로는 “유년의 뜰”이 담고 있는 노랑눈이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그 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어린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경험하는 불안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재와 불안, 흔들리는 가족.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의미가 있는 성장소설일 것이다.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그것은 동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 타인의 삶까지 편견 없이 생동감 있게 관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2) 하성란 “곰팡이 꽃”

(2-1) 줄거리 요약

남자는 90세대가 거주하는 한 동짜리 아파트 508호에 혼자 산다. 그는 한밤중에 쓰레기장에 나가 주민들이 버려둔 종량제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와 욕조 속에 펼쳐놓고 그것들을 분석, 기록하는 기묘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었던 1995년 1월 1일, 남자가 생각 없이 버려둔 검은 봉지를 가지고 부녀회원들이 남자의 집에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부리고 간 그날 이후 생긴 취미이다. 그 봉지 안에는 남자가 회사에서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쓰고서 부치지 못했던 편지들이 온갖 쓰레기 잔해와 뒤섞여있었다. 남자는 못 견디게 화가 났다. 절대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될 부분이 발각되고 만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지난겨울부터 백 개가 넘는 쓰레기봉투를 뒤져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다. 어느 새벽 옆집에서 들리는 여자의 격앙된 목소리, 유리 깨지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남자는 507호 여자가 연인과의 갈등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술에 만취해 찾아온 그녀의 연인이 벨을 착각하여 508호를 누르는 바람에 남자와 우연히 알게 되면서 507호 여자에게 더욱 신경이 쓰인다. 본의 아니게 507호 여자와 그 연인 사이에서 이것저것 전달의 매개가 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더욱 507호 여자의 쓰레기에 집착하기 시작하는데 쓰레기를 통해서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이름이 최지애라는 것,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아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바다보다 산을 좋아한다는 사실까지도. 그녀의 연인이었던 남자는 그녀의 취향을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여자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한다며 전달해 달라고 했고, 바다를 좋아한다고 믿고 있다. 507호 여자는 호출기 번호까지 바꿔버리고 이사를 가버렸다. 남자는 그녀의 연인이었던 사내와 함께 그녀가 유리창 밖으로 던져버린 돌하르방을 찾느라 땀을 흘리며 풀숲을 뒤지고 있다. 풀숲을 뒤지며 남자는 오늘 밤 마지막으로 딱 한 개만 쓰레기봉투 뒤지고 이 일을 그만두리라 결심한다.


(2-2) 쓰레기 악취 vs 미모사향, 상반된 후각적 이미지


“남자는 쓰레기봉투를 벌리고 쓰레기들을 집어 올린다. 녹차의 티백 찌꺼기와 두꺼운 오렌지 껍질, 다이어트 코카콜라, 모두 다 저열량의 음식들뿐이다. 돌돌 말린 비닐팩을 들어낸다. 미모사향의 섬유 유연제다. 미끌미끌하게 썩은 밥풀들이 달라붙어있지만 시큼한 악취 가운데서도 비닐팩에서는 상큼한 향기가 난다. 남자가 복도에서 맡았던 그 냄새다. 쓰레기봉투 맨 밑바닥에 손도 대지 않은 생크림 케이크가 문드러져 있다. 하얀 우윳빛 생크림이 군데군데 벗겨진 사이로 포도 시럽이 잔뜩 발린 삼단 케이크가 드러나 있다. 그 위에 하늘하늘하게 곰팡이꽃이 피어 있다. 체리가 얹혔던 자리에는 생크림 위에 붉은 테두리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여자는 체리와 파인애플, 귤만 골라 먹은 것 같다. 아스피린 포장지, 작은 쪽지 하나도 꼼꼼히 펼쳐본다. 구례행 무궁화호 열차표 한 장. 지리산을 종주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여자가 신은 노란 양말에 흙물이 밴다. 전화번호로 생각되는 일곱 자리 숫자들이 적힌 쪽지. 연체된 호출기 요금청구서가 들어 있다. 생크림을 닦아내자 여자의 이름과 호출기 번호가 드러난다. 최지애. 012-343-7890”- 216~217 page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후각적 이미지이다. 쓰레기봉투에서 흘러나오는 시큼한 악취와 함께 이와 상반되는 느낌의 화사한 미모사향의 섬유 유연제 향이다. 남자가 욕조 안에 흩어놓은 쓰레기봉투에서는 견디기 힘든 악취가 나온다. 그런 악취를 견디며 남자가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런 악취, 그러니까 견디기 힘든 정도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 사실에 대한 은유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쓰레기봉투에서 발견한 여자의 취향은 남자가 그녀의 연인에게서 전해 들은 것들과 사뭇 다르다. 남자는 생각한다. 쓰레기봉투를 뒤져 자신이 알게 된 것만이라도 그녀의 연인이 알았더라면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또한 자신이 짝사랑하던 직장 동료였던 그 여자의 쓰레기봉투를 뒤졌더라면 자신도 그 사랑에 실패하지 않았을 거라고.


과연 남자의 생각이 맞을까?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다. 남자 자신이 아파트 부녀회원들의 급습에 놀라고 화가 났던 것을 떠올려보면, 남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내가 버린 쓰레기는 절대 남들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치부일 뿐이다. 상큼한 미모사향으로 가려진 악취를 굳이 되살릴 필요가 없다. 물론 누군가가 내다 버린 쓰레기를 분석하여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는 있다. 쓰레기장을 조사하여 사람들의 생활 실태를 알아본다는 ‘가볼러지’라는 사회학 수법이 있다는 사실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수사나 조사를 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남자의 이 행위는 누구에게도 납득받을 수 없다. 도시에 혼자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는 남자의 소외감이 악취처럼 다가온다. 상식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선이 있다. 봉인된 쓰레기봉투는 다시 열려서는 안 된다. 누구나 악취가 아닌 미모사향으로 기억되고 싶을 것이다.


(2-3) 감상평

508호 남자를 이해해 보려고 애를 쓰며 읽었다. 쓰레기봉투를 열어 이웃들의 취향을 알아내고, 그 취향에 대해 단정 짓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억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이 어떤 기호식품, 기차표 한 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단순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507호 여자의 쓰레기봉투를 열어봤다는 사실로 자신이 그녀의 연인보다 그녀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착각도 못마땅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이 이런 괴이한 취미활동으로 이어진다는 상상이 끔찍하기도 했다. 누군가 나의 쓰레기봉투를 열어 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몹시 불쾌해지는 기분이다. 남자는 각호의 쓰레기봉투를 열어 각호의 취향과 진실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는 이미 버려진 것들이므로 각호에서 폐기된 진실이기도 하다. 해지해버린 호출기 번호처럼 더는 의미가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폐기된 진실에 연연하며 집착하는 남자의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의미 없는 일에 연연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1947년에 출생한 오정희 작가의 “유년의 뜰”의 배경은 한국전쟁 즈음이다. 1967년에 출생한 하성란 작가의 “곰팡이꽃”의 배경은 1990년대 중반이다. 50년이 채 안 되는 시대적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분위기는 도저히 같은 나라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다르다. 전작은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삶의 애환이 주된 분위기였다면 후작은 물질적 잉여와 정신적 소외가 주된 분위기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이런 차이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소설이라는 문학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예고편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오정희 “유년의 뜰” (문학과 지성사)

20세기 한국소설 50 – 하성란 “곰팡이꽃”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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