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선을 넘는 녀석들
"너 좀 이상해졌어.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상이 아닌 것 같았어."
친구는 내게 조심스럽게 폭탄을 투하했다. 태어나서 남편이 아닌 타인에게서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예전에 남편에게는 종종 들었고, 정말이지 그런 순간에 나는 정상이 아니긴 했다.) 친구의 말인즉 내가 기분이 나쁠 수는 있었겠지만 내 반응이 지나쳤다는 얘기였다. 어떤 대화 끝에 나는 갑자기 기분이 몹시 상했고, 내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고,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었던 순간이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 배려받지 못한다는 생각,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화가 잔뜩 났었다. 그 순간 내 눈빛과 말은 그저 내가 받은 느낌대로 표현되었을 텐데 타인의 시선에서는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보였다는 사실을 듣고 나니 그토록 마음이 상했던 원인이 되었던 일은 까맣게 잊었고, 나는 자꾸만 저 말을 되뇌었다.
'내가 이상해졌어. 정상이 아니야.'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그렇게 나는 타인에게로 향했던 방향을 돌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비정상적으로 보이도록 만든 나의 말과 눈빛을 내 앞에 데려다 두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좋아했던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 나의 비정상적 반응을 원망했다. 그 비정상적 반응이 자동적으로 나오도록 만든 나의 모든 과거와 나의 축적된 인식이 원망스러웠다. 그것들을 토닥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둥글둥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점점 더 뾰족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오랜 시간 애쓰고 눌러두었던, 그러니까 한마디로 억제되었던 방어기제가 한순간에 비정상적인 형태로 터져 나오는 건가 싶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뭘 어쨌다고? 사람들 많은 카페에서 머리끄덩이를 잡길 했니? 물컵을 끼얹길 했니? 소리소리 질러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켰니? 기분이 나빠서 표정이 다소 일그러지고 목소리가 좀 떨렸기를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이런 마음에 분하기도 했다. 뭘 기대했던 거야? 어떤 상황에서건 교양 있고 평온한 표정? 그건 나 자신에게도 내가 바랬던 모습인지도 몰라서 나를 들볶아댔다. 어쩌면 우리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워져서 서로의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함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도 같았다. 문제가 어느 쪽이든 일정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은 자명했다.
상담이론을 공부하다 보니 비합리적 신념, 인지적 오류 이런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인지 치료를 창시한 벡은 인지적 오류를 흑백논리적 사고, 과잉일반화, 정신적 여과, 의미확대와 의미축소, 개인화, 잘못된 명명, 독심술, 예언자의 오류, 감정적 추리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설명한다.
이 모든 오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그 특성들이 내 안에도 조금씩 다 잠재해 있는 것 같다.
나 편할 대로 해석하고, 나 편할 대로 판단하고 만다.
나이가 들수록 싫은 건 더 싫어지고, 못 견디겠는 건 더 못 견디겠다.
예전에는 그냥 무시했을 혹은 피하고 말았을 불쾌한 장면에서 기어이 불쾌한 티를 내고 만다.
절대 이런 고지식한 꼰대, 불통의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점점 나는 그런 사람에 가까워지고,
나도 모르게 마음은 편협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도 초라해진다.
어느 날 폭탄을 맞고서야 알았다.
나이가 이만큼 들었어도, 좋은 책을 읽고 유익한 강의를 들어도,
나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음을... 오히려 더 못 쓰게 되고 있는지도...
스스로 이런 깨달음을 얻은 순간, 나는 다시 한번의 기회를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
내가 만든 나의 틀을 깨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
요즘은 저 폭탄을 던져준 친구가 고맙다. 그 말은 들은 당시에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휘청거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고두고 되뇌어 보니 그 말에는 어쩌면 실존주의 치료기법 중 하나인 '직면'과 비슷한 효과가 있었지 싶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비로소 나는 못나고 모난 나를 직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너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어.'
나는 차마 대놓고 할 수 없어서 여기에 소심하게 남긴다.